▣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소요산에서 인자요산을 연습하다
인자요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선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덧붙여진 말 지자요산은 지적인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를 합쳐 인자요산지자요수로 씁니다. 물고기를 미끼로 유혹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낚시를 좋아하는, 소위 머리를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자요수요, 제 힘으로 애써 산을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자요산이니, 지자에 비해 인자가 좋다는 의미로, 인자요산지자요수라 하겠지요. 그만큼 산을 좋아하기를 권함이라고 인자요산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선할까요? 글쎄요. 적어도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좋아보이긴 합니다. 하긴 인자요산이라 함은 선한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기보다 산을 좋아해서 선해진다가 보다 합리적인 풀이일 것입니다. 제 발로 걸어야만, 제 발로 올라야만 오를 수 있는 게 산이니,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산에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원리를 몸에 체득하여 선해지는 것이겠지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려는 마음, 그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 산행일 테니까요. 이런 약간의 고통, 나는 이 고통을 좋아하여 산을 찾습니다.
엊그제는 소요산에 다녀왔습니다. 산 이름이 소요라, 일 없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어떻게 오르느냐에 따라 여유 있게 오를 수 있기도 하지만, 힘든 기억만 안고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 소요산입니다. 속살 파듯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입구 산들머리에서 일찌감지 좌측의 작은 산길로 들어서서 오르면 소요소요하면서 오를 수 있습니다. 갑작스레 깔딱깔딱 하지 않고 오를 수 있습니다. 반면 일주문을 들어서서 오르려면 어느길이든 가파릅니다. 그러니 좀 서서히 오르고 싶다면 조금 우회하더라도 일찌감치 산으로 접어드는 게 좋습니다.
초입에서 길을 잡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들어섰습니다. 일기예보로는 무척 춥다는데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았습니다. 다운자켓은 안 입고 바람막이만 입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하백운대까지는 가끔 깔딱고개가 있다만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아 걷기 알맞습니다. 그다지 특징은 없으니, 산에 왔으니 산을 즐기면서 마음의 소요를 그냥 즐기며 걷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걷기에 딱 알맞습니다. 이 생각 긂어내어 산에 버립니다. 저 생각 긁어내어 반성합니다. 요 생각 끌어내어 마음을 빚습니다. 생각과 생각을 겹쳐 마음의 산을 빚고, 다시 그 산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렇게 야금야금 음식 먹듯이 소요하며 걷가보면 어느새 하백운대입니다.
절에서 올랐으면 무척이나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야 할 곳입니다. 이쯤 올라오면 산 봉우리들이 그리 멀지 않게 다가와 있습니다. 다음에 만날 봉우리가 중백운대로 가깝습니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제법 가파른 길이 앞에서 꾸불거릴 겁니다. 그래도 그리 길지 않으니 아 힘들다 싶을라하면 그쯤이 중백운대입니다. 중백운대엔 멋진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서 있습니다. 벼랑 끝에 자리잡은 소나무들이라 속살들이 아주 다부질 듯한 소나무들, 고생고생하며 살아서 야무진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벼랑 끝에서 허공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멋진 운치를 자아냅니다. 고상한 선비들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바위틈에 뿌리 내리고 사느라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려 힘겹게 살았을 소나무들,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엔 멋지다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더구나 눈이 내려 쌓이면 아주 멋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지금 울의 상징 눈이 바닥에 쌓이긴 했으나 나뭇가지엔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고도가 높아질수록 쌓인 눈의 양은 많아집니다. 이내 상백운대가 나오면 백운대의 시절은 가고 칼바위능선으로 길은 잇습니다. 전에는 길이 험했으나 이제는 정비되어 길이 명확해서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칼바위를 우회해서 가다 싶이 하여 내려와서야 칼바위 능선이 지났구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름이라면 산행로를 버리고 칼바위를 오르내리는 재미도 볼만 합니다. 칼바위 능선 중간쯤에 국사봉과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나갈 수 있는 갈래길이 있고, 조금 내려가면 고개입니다.
여기서 하산해도 되지만 한 바퀴 돌려면 그대로 직진입니다. 언젠가부터 계단을 만들어 놓아 안전합니다. 이전에는 가파라서 위험했는데 계단이라 안전합니다. 그 대신 지겹도록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야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봉우리는 네 번째 봉우리 나한대입니다. 여기서 잠시 내리막을 걸어서 다시 오르막,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그곳에 올라서면 소요산 최고봉 587미터로 의상대입니다. 생전에 명성이 엇비슷해서인지 원효대사를 딴 이름 원효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의상봉이 함께 있습니다. 북한산에도 운효봉과 의상봉이 서로 마주보듯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내리막, 그리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그렇게 올라서면 둥그스럼하니 소요스러운 봉우리 공주봉입니다. 역센 봉우리들도 한 바퀴 둘러선 소요산에서 원만하게 생긴 봉우리, 여성스러운 봉우리라서 이름을 그리 지었나 봅니다. 물론 원효대사를 사랑한 요석공주의 전설을 안고 있는 봉우리입니다. 넉넉한 봉우리, 여기서 이제 하산입니다. 봉우리는 둥그스럼하니 원만하지만 하산하노라면 가파른 내리막을 한참 걸어야 합니다. 절이 있는 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길게 우회하면 주차장으로 이어집니다. 그쯤이면 전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산행 마무리입니다.
소요산은 입구에서 들어서면 조금만 힘든 산보를 하는 기분이지만, 들어서서 걸을수록 험한 지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있을 만한 것들은 고루 갖춘 산입니다. 물론 소요산만 그렇겠어요. 산이란 산은 작으나 크나, 높으나 낮으나 적어도 한두 번쯤은 숨을 할딱거려야 오르고, 그만큼 조심하고 긴장해야 오를 수 있지요. 그 힘듦과 긴장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그만입니다. 그런 산행을 자주하면, 습관처럼 계속하면 나도 모르게 나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래서 산행습관이 몸에 배이면 배일수록 나는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덕분에 인자요산의 경지에 드는 것이니, 내가 선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선해지기 위해 산을 좋아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악하고 위선적이기에 인자가 되어보려 산을 찾곤 합니다. 지자에서 인자로 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산 냄새가 나는, 산처럼 사람을 품어 살고 싶습니다. 기왕 한 세상 사는 것, 외사촌 말씀처럼 남에게 득이 되게 살지는 못해도 피해는 주지 않는 그런 삶, 산을 닮고 싶습니다. 인자요산,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이번주에도 어느 산이든 다시 오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