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남자가 화장하는 시대

영광도서 0 1,938

<그리스신화로 읽는 에로스심리학> 마지막 제목이 '남자가 화장하는 시대'입니다.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존재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을의 입장에 있다는 견해를 쓴 것이지요. 이전까지는 남성과 여성 중에 여성이 아름다움을 뽐냈습니다. 그만큼 여성이 을의 입장에서 살아왔고, 남성은 갑의 입장에서 살아왔습니다. 시몬느 보부아르의 주장처럼 '남성은 태어났으며, 여성은 만들어졌던' 셈입니다. 남과 여, 공히 신이 창조할 때는 동등했을 터인데, 남성이 신체적인 힘을 이용하여 여성을 지배해왔을 것이고, 이제는 힘의 시대는 갔습니다. 따라서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모계사회였듯이, 차후엔 여성이 우위에 서는 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 남자가 화장하는 시대, 다시 말하면 여성이 갑, 남성이 을이 되는 스대로 접어들 거란 생각을 이 책의 결론으로 내린 겁니다.

 

 

 

실제로 기말고사 답안지를 받아보니 보다 그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여학생이 글씨를 잘 씀은 물론 글도 훨씬 창의적으로 꼼꼼하게 잘 씁니다. 반면 남학생들은 우선 글씨를 잘 못 씁니다. 게다가 글도 여학생들에 비해 훨씬 못 씁니다. 똑같이 강의를 듣고, 똑같이 글쓰기 팁을 주었음에도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납니다. 성적을 매기려니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남학생들에게 동정점수를 줄 수도 없으니요. 게다가 절대평가도 아니고 상대평가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나름의 기준으로 성적을 매기면서 마음이 찜찜합니다.

 

 

 

성적을 산출하고, 입력을 하려니 두근두근 거립니다. 한 학기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음은 아직 무겁습니다. 입력을 마치고, 성적마감을 하고 나면 긴장상태로 들어갑니다.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 성적이의신청 때문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남학생 한 명이 성적에 불만을 나타냈고, 둘은 고마움을 표하면서 조금만 올려주면 고맙겠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반면 여학생은 한 명도 이의신청이 없었습니다. 그런 대로 무난히 넘어갔습니다. 이번 학기엔 어떻게 끝날지 부담스럽습니다. 

 

 

 

답이 딱 떨어지는 객관식시험을 보게 하면 성적을 매기기 쉽지만, 그것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우선 컨닝을 치지 않나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도 머뜩합니다. 또한 만일 동점자가 무더기로 나오면 상대평가를 해야 하는지라 그것 역시 곤란합니다. 명색이 대학생들인데 최소한 주관식으로 시험을 보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의를 들었으면 그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연습도 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이 있기도 하고요. 해서 시험은 간단하게 딱 두 문제만 줍니다. 오픈 북 가능합니다. 단 그대로 베끼지는 말 것, 자신만의 글을 쓸 것, 제시한 방법에 따라 쓸 것을 지침으로 줍니다.

 

 

 

이렇게 시험 규정을 정해주고,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팁을 주고 시험을 보게 합니다. 그 결과 중간고사 때보다 기말고사에 훌쩍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력향상된 학생들 대부분은 역시 여학생들입니다. 그만큼 여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주의 깊게 잘 듣습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이해를 잘합니다. 반면 남학생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주의가 산만합니다. 그렇게 지침을 주어도 이전에 쓰던 대로 그대로 씁니다. 이해를 잘 못하는 건지 실력 향상이 더딥니다. 그 결과가 고스란히 답안지에 드러납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을로 살아오면서 여성은 적자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남성들이 신체적인 힘의 우위가 언제까지난 유효하다고 생각한 반면, 여성들은 적자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자기 잠재능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디테일의 힘은 물론 관찰의 힘, 멀티플레이의 힘, 임기응변의 힘도 잠재력으로 갖추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체적인 힘의 시대의 마감과 함께 새로운 힘으로 대체되는 현대에서는 여성들이 그 잠재능력을 발휘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하기 시작한 겁니다. 따라서 세밀하게 생각하기도, 자세히 보기도, 언어구사도, 두뇌회전도 이제는 여성이 앞서기 시작합니다.

 

 

 

인문학 강의 현장에도, 어떤 공부를 하는 문화센터에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게으른 남성들이, 덜렁거리기만 하는 남성들이, 배움에 열정이 없는 남성들이 보다 분발해야 할 시대입니다. 남성이 천부적으로 여성보다 능력 있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남자나 여자 천부적으론 동등하게 창조되었음이 이제 증명되기 시작한 겁니다. 여성이 단지 남성에 비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없었을 뿐, 교육의 기회가 없었을 뿐, 사회참여나 정치참여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여성이 자만하고 게으른 남성을 능가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걸 예감합니다. 기말고사 채점을 하면서 남성인 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봅니다. 내가 화장해야 할 일은 없을 테지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