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나는 사랑합니다. 나를

영광도서 0 1,576

해는 다시 떠오른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입니다. 내일은 해가 뜬다거나 내일도 해는 뜬다거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거나 하는 문장들을 다시 만납니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집니다. 늘 같은 해라고도 할 수 있고 내일의 해와 오늘의 해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딱히 어느 것이 맞다고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썸, 네 거인 듯 네 거 아닌 네거 같은 나,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처럼 말입니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딱 규정할 수 없는, 딱 규정되지 않는 건 인간의 독특한 생각의 구조 때문입니다. 생각의 구조가 다른 동물에 비해 아주 월등히 복잡한 인간은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겁니다.

 

 

 

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인간의 마음이 같은 것을 다르게 하고, 다른 것을 같게도 합니다.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무엇이든 복잡하게 만듭니다. 아주 복잡다기하게 살아가는 인간, 그 인간들 속에 나는 존재합니다. 그 덕분에 나는 나로 살아갑니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다르다고 말하며 나는 존재합니다. 과학적인 또는 물리적인 면에서 태양은, 구조적인 면에서나 구성성분 면에서 태양은 같을 겁니다. 그러나 존재적인 면에서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다릅니다. 아니 태양이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으므로 태양이 다르다고 말할 겁니다. 태양은 변하지 않아도 인간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인 듯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은 생장소멸하니까요.

 

 

 

그래서 복잡한 인간, 그래서 복잡하게 보는 세상, 그 덕분에 나는 세상 속에서 독특한 나로 살아갑니다. 올 한 해 나는 나로, 나 하나만의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해와는 다른 마음으로 산에 올랐습니다. 오를 때마다 산도 나도 달랐습니다. 산도 나도 시간의 지배를 받는 때문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늘 새로운 기쁨으로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다양한 산에 다양한 마음으로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하게 세상을 보는 눈 덕분에 나는 참 많은 글을 썼습니다. 시를 썼고, 수필을 썼고, 인문학적인 글을 썼습니다. 남과 다를 수 있음, 그건  나만 그런 건 아닙니다. 누구나 다릅니다. 그 다름을 이용하느냐 이용하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뿐입니다.

 

 

 

그 다양함을 말로 옮겼습니다. 그것이 강의입니다. 2017년 한 해, 참 많은 말을 했습니다. 소위 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나를 그 말들 뒤에 나를 감추고 때로는 멋진 척, 때로는 아는 척, 때로는 인간적인 척, 척하며 지냈습니다. 명목상으로 시창작, 수필창작, 소설창작, 창작이란 이름으로 강의를 했는가 하면, 인문학의 발견이거나 이해로, 그리스신화로 세상읽기라거나 인간심리로 또는 그리스신화로 읽는 에로스심리학으로, 그뿐이 아닙니다. 고전읽기라는 명목을 붙여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며, 생텍쥐페리, 세익스피어, 올더스 헉슬리, 나쓰메 소세키, 다양한 작가의 작품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니 창작, 읽기, 풀이 등 고루고루 많은 말을 보탰습니다. 

 

 

 

고상하게 말하면 강의요, 세속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말품을 팔았습니다. 비록 글을 돈으로 바꾸는 일이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으니 그건 좋습니다. 그렇게 올해 마감 작품은 <그리스신화로 읽는 에로스심리학>입니다. 더 많은 구상과 시작은 있었으나 이 책으로 마감입니다. 올해 새롭게 공부한 페미니즘을, 인류문화를, 새로운 심리학을 일부 담았으니, 그래 잘했다며 내가 나를 칭찬하렵니다. 내가 강의한 내용 중 일부라도 글로 정리할 수 있었으니 내가 나를 칭찬해야지 누가 하겠어요. 내가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내가 나는 좋습니다.

 

 

 

그래요. 말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그러면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데 차고 넘치냐고요. 그건 잘 아심시롱', 공공기관에서 강의하면서 얼마나 많이 품값을 받겠어요. 말 그대로 말품이지요.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덕분에 멀리는 제주도, 여수, 목포, 담양, 정선 등 멀리까지 다녀올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올해 마지막 강의 장소는 서울이었답니다. 26일 마지막 날 강의로는 어디라고 밝힐 수 없는 군부대에서 그리스신화로 읽는 리더십으로 장교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일종의 재능기부였으니 그것도 보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는 서울로 돌아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강의를 들은 분 중에 한 분이 "고도....의 강의는 기가 막힐 정도로 반했구요. 무한한 감사드립니다."라는 댓글로 칭찬을 했답니다. 내가 나를 칭찬하는 자화자찬도 좋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도 참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더 좋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강의를 자족할 만큼 할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말하자면 비데식 변기에 배설을 하고 모든 절차를 밟고 아주 깔끔하게 처리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웬 제 자랑을 그렇게 하느냐 물으시면, 난 이렇게 다답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세상 내가 나를 즐겁게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요.

 

 

 

한 해 나는 잘 살았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여러 칭찬을 받으며 잘 살았습니다. 명쾌한 설명이다,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깊이가 있다라는 칭찬을 받았으니 나는 잘 살았습니다. 물론 이와는 달리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분들은 들으라고 내 귀에 대고 말하지 않았으니 그건 모르는 게 아주 좋은 약입니다. 다만 나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늘 공부하는 자세로 살면 되는 것이지요. 그 대신 나는 내가 나를 칭찬하며 잘 살았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며 잘 살았습니다. 올 한 해의 나를 정리해 보니 나름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는 나를, 다양한 글을 쓰는 나를, 다양한 말품을 파는 나를,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바랍니다. 당신도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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