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무등산 작은 봉 바랑산에서 인생을 생각하다

영광도서 0 1,896

하얀 눈, 온통 하얀 눈, 하얀 세상,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길, 그 길에 섭니다. 하늘은 긴 장대를 들어서 휘저으면 쩍 갈라질 듯 아주 파랗습니다. 휜색과 파란색의 대비에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환상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저 안에 들면 분명 기다릴 것 같습니다. 이런 설렘과 함께 숭덩숭덩 빠지는 제법 많이 내린 눈밭에 첫길을 내며 걸어야 한다는, 그것도 처음 가 보는 길을 첫사람으로 첫길을 열어야 한다는 묘한 기우 같은 걱정도 함께 따릅니다. 설렘과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아무도 걸은 흔적 없는 하얀 눈길, 무등산 줄기를 거머쥐려 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무등산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은 영하 15도, 광주는 영하 9도, 서울에 있는 산에 가기보다, 마침 다음날 광주에서 고전읽기 강의가 있는 터라 하루 미리 내려가 무등산 등산을 할 생각을 했습니다. 꽤 여러 번 무등산에 다녀왔으나, 이번엔 가 보지 않은 코스로 길게 산을 타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단지 지도로만 소태역에서 바랑산으로 잡아서 매봉, 마집봉을 지나 전에 가 보았던 서인봉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좀 낯이 익은 길이니까, 거기서 중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고, 입석대로 하산을 시작해 장불재에서 타원형을 그리며 내려가서 원효사주차장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물론 무등산 산행 계획을 잡은 것은 호남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도 한몫했습니다.

 

 

 

소태역 4번 출구로 나가서 200여 미터나 동네로 걸어들어갔을까, 거기에 바랑산임을 알 수 있는 길이 우측 경사로로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바랑산은 생각도 않았고, 전에 하산할 즈음에 만난 교차점, 마집봉 가는 길이 궁금했습니다. 마집봉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면 어떤 길일까, 어디로 하산하는 길일까,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무등산에 오를 생각으로 지도를 검색하여 보았더니 소태역에서 바랑산은 걸어서 잠깐, 그 길 따라 오르면 무등산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보라곤 지도에 표시된 길밖엔 아는 게 없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길, 아주 낯선 길이라 더 걷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길은 늘 설렘을 주니까요.

 

 

 

나름 산에 자주 올랐으니 두려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제법 많은 눈, 눈길을 열면서 걸어야 한다는, 눈에 감추어져서 위험지대가 있을지 모른다는, 소위 러셀하며 걸으려면 체력이 많이 소진될 거라는 염려도 좀 있습니다. 신발에 눈이 안 들어가게끔 난생처음 발에는 스패치를 찹니다. 눈이 풍덩풍덩 빠질 정도로 20센치는 될만큼 쌓여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아이젠도 찹니다. 게다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지면 가방이 젖을 수도 있어 가방 카바도 덮습니다. 준비를 완료하고 기온을 감으로 잡아보니 서울에 비해 전혀 춥지 않습니다. 하여 다섯 꺼풀 중에서 두꺼운 겉옷 두꺼풀을 벗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생눈길이라 아이젠을 찼어도 경사가 급한 길은 미끄럽습니다. 초행길, 지도만 믿고 방향을 잡습니다. 가파른지 평탄한지 위험한지 전혀 모를 앞길, 지도엔 그런 거 안 나와 있으니까. 인생하고 같지머. 항상 인생도 초행길 같잖아. 단지 나보다 먼저 살아간 인생 선배들을 기준 잡아 살아가는 거니까, 그런 거창한 생각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길이 뚫리겠지. 누군가 앞서 가겠지, 그렇게 내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으며  바랑산으로 오릅니다. 정상이라야 300고지 좀 넘는가 싶습니다. 눈길이란 점도 있지만 산이란 게 그렇습니다. 높으나 낮으나 산이란 이름을 가지려면 가파른 고개 최소한 한 번쯤 있어야 하고, 가파른 내리막 한 번쯤 있어야 합니다. 

 

 

 

멀리로 무등산 정상이 보입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정상을 보니 설렙니다. 그 위에 떠서 오락가락이동하는 흰구름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더없이 고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낮은 산이긴 하나 가파른 경사를 따라 길을 내며 걷다보니, 산은 역시 오르려면 숨이 차는 건 당ㅇ녀하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싱긋 웃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와 체력의 여유가 충분하다는 마음의 신호입니다. 바랑산 정상은 특별히 표적은 없으나 감으로 여기가 정상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내리막이 시작이니까요. 내리막에선 러셀작업도 어렵지는 않습니다. 가파른 만큼 저절로 내려가는 기분이니까요. 사정 없이 내려가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닙니다. 무등산 정상은 아직 멀고 높이는 훨씬 높으니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야 하니 달갑지 않습니다.

 

 

 

하얀 눈길, 많이도 내린 눈길을 걸으려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그만큼 체력이 많이 소진 될 생각을 하니 길이 좀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풍경 하나는 그야말로 끝내줍니다. 파란 하늘이 유난스레 곱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전혀 춥지 않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이 정도 추위라면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우니, 힘든 것도 잊습니다다. 비교적 길은 평탄합니다. 눈이 덮여서인지 모르나 길이 한없이 좋습니다. 그 길에서 생각하느니 등산이란 인생과 닮았다 그 생각을 낳습니다.

 

 

 

초행길이란 인생과 닮았다는, 우선 나보다 앞서 산 사람들을 보며 나의 미래를 가늠할 뿐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닌 것이 인생이듯이, 초행길 역시 그렇습니다. 편한 길이라 믿은들 반드시 편할지는 모릅니다. 경험자들의 인생을 보고 내 인생을 잘 안다 생각하듯이, 등산 지도를 믿고 이 길을 가면서도 전혀 별 다른 걱정이 없니다. 그렇지요. 처음 가는 이 길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길이라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체력이 버텨줄까, 험하지는 않을까, 갑자기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멧돼지라도 갑자기 위협하며 나서지 않을까 그런 염려도 있으니까 초행길은 마치 인생길과 같습니다. 인생이란 게 항상 초행이니까요.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초보자로 사는 것이니까요. 경험을 통해 또는 다른 사람의 생을 통해 인생을 배우며 사는 거니까요.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 매일 매일 관습에 젖어 별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난관을 만나는 인생처럼, 초행길에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생눈길을 걷는다는 건 고스란히 인생을 닮았습니다. 초행길이지만 미리 아름다움을 그려봅니다. 하얀 눈꽃에 파란 하늘의 배경, 인생의 꿈을 키우듯 내 산행의 설렘을 그려보며 다시 시작되는 급경사에서 인생을 생각합니다. 산행과 인생을 견주어 봅니다. 오르려니 산에서 깨닫는 인생 하나에 기쁨을 안고 이 날의 즐거운 산행을 예감합니다. 산은 곧 인생이다, 인생은 곧 산과 같다를 마음으로 외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인생이 이어지듯 이 산길은 또 더 어름답게 이어질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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