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엄마의 침묵

영광도서 0 2,140

툭!

 

느슨하게 늘어졌던 줄이 어느 순간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끊어지는 느낌, 그런 느낌, 천정에서 물은 쏟아지는데, 폰 안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 우리 엄마 안녕이었습니다. 프랑스어로 아듀는 풀어 보면 신에게로란 뜻이니, 영원한 안녕을 의미합니다. 그 안녕이었습니다. 마음 준비는 다 되었다고, 그냥 담담할 거라고 자신했는데, 천정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주책 없이 눈물이 흥건히 솟습니다. 당장 가야 하는데 속절 없이 천정에서는 물방울이 나를 비웃으며 점점 드세게 떨어져 내립습니다. 윗집은 비었는데 그 집에 보일러가 터져서 우리집으로 흘러내려오는 겁니다.

 

 

 

이럴 때를 진퇴양난이라고 하겠지요. 지난 밤 밤새도록 엄마의 병실을 지켰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지 못할 거라며 간호원이 직계가족들을 부르라기에 혼자 고민 많이 했습니다. 모두 잠들었을 시간, 가족들의 잠을 깨울 것이냐 그냥 좀 더 지켜볼 것이냐, 그걸 결정해야 하는 선택이 나의 몫이었습니다. 이미 말을 잃고, 시력을 잃으신 상태라 모두 마음의 준비는 했다고들 했는데, 이미 돌아가신 거나 다를 바 없다고도 했는데, 그럼에도 그 순간엔 많은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라며, 개인차가 있다고 간호원이 그리 말하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습니다. 혼자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며 밤을 지샜습니다.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기적을 주시든 아니면 고통 없이 데려가시라고. 그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기력이 슬펐습니다. 숨을 쉬실 때마다 가슴이 들썩거릴  만큼 힘겹게 숨 쉬시는 모습을 지켜보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신 할 수 없음이, 나의 숨은 편안히 고르니 그걸 조금이라도 나누어 몸이 움직일 만큼 들썩거리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서로 나누어 덜 어렵게 숨을 나누어 쉴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침침한 병실, 엄마의 숨소리 외엔 고요뿐, 그 흐트러진 고요속에서 소리내어 몇번이나 엄마를 불렀으나 드센 호흡소리 외엔 아무 반응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큰 숨쉬기로 가슴만 들썩거리실 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새벽을 지나고 여섯시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호흡 소리가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 했습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엄마의 뒤를 봐야 했습니다. 몸을 이리 누이고 저리 눕혀도 숨만 쉬실 뿐 몸을 내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딱딱하고 거무칙칙한 듯 아주 작은 변을 남기셨습니다. 아홉시에 큰형에게 병실을 인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준비를 해서 다시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집 식구들을 미리 보내고, 준비를 하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 사건이 터졌지 뭡니까. 마음은 엄마에게 가 있는데, 속절없이 물줄기는 군데군데 퍼집니다. 마음은 급한데 관리실에서 온 이들은 우왕좌왕합니다. 스위치를 분명 내렸는데, 전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두꺼비집을 내립니다. 전구를 뺍니다.

 

 

 

그리고 관리실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합니다. 이러다가 화재라도 나면 이건 한두 집의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단지 전체의 문제니까 중앙밸브를 막으라고. 그럼에도 뭔 절차가 그리 복잡한지, 관리과장에게 보교를 하고야 부랴부랴 일을 찾습니다. 지하실에 함께 내려가 중앙 밸브를 잠급니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이들이 관리를 하고 있으니, 이게 뭡니까. 세 시간째 난리를 치다가 엄마의 부음을 들은 겁니다. 툭 팽팽하게 당겨진 끈이 끊어진 듯한 소리가 내 심장에서 나는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물줄기가 멈추기를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 이 얼마나 야속했겠어요. 내가 몹쓸 죄를 지어서 그런 건가, 가슴이 내려 앉았습니다.

 

엄마!

 

위에서 부터 비어오는, 내려누르는 물들이 얼추 빠지기 시작하는 듯 했습니다. 다섯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건은 종료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사방에 늘어 놓은 물받이 양동이를 그대로 둔 채 엄마에게 갔을 땐 더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이미 엄마를 장례식장으로 옮긴 후였습니다.  

 

엄마!

 

엄마한테 할 만큼은 했다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는 못 뵌다 생각하니,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두더쥐잡기 놀이처럼 나의 흠들이 불쑥불숙 생각을 휘저으며 나를 놀렸습니다. 이미 포기한 것이라, 이미 마음의 준비는 다 되었다, 마음의 정리는 다 했다,  엄마의 병실을 홀로 지키며 생각했는데, 참으려 해도 참으려 해도 울음이 샘처럼 솟습니다. 후회의 눈물도 아닌데, 사실 만큼 사셔서 그게 아쉬워서도 아닌데,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마음의 단련도 되어 있는데, 그 눈물의 의미, 아니 울음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합니다. 이별에는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잡으려해도, 아무리 마음 정리를 잘해도, 완벽하게 준비된 이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흘 밤을 꼬박 새고도 잠은 오지 않는데 정신은 멀쩡합니다. 이렇게 또 하룻밤을 지나고 사람들이 옵니다. 느긋하게, 담담하게 웃어줍니다. 농담으로 순간을 잊습니다. 지난 이야기 꽃으로 순간을 죽입니다. 그런데 친척을 보면 주책 없이 울음이 솟구칩니다. 눈물이야 닦아 감추면 그만인데, 인사를 하려니 목이 메여 그게 어렵습니다. 외삼촌을 보니, 누나들을 보니, 왜 참을 수 없나요? 3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이렇게까지 섧지 않았는데, 철이 들어설까요. 엄마를 내가 모시지 못해서일까요?

 

 

 

엄마도 나에게, 형들도 나에게, 누나들도 나에게, 넌 할만큼 했다고, 넌 효자라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더 슬프고 서러운 건 남이 보기에만 그런 척했지, 그 행동에, 그 언어에 진심이 없었다는 부끄러움 같은 것, 위선이란 것이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착한 척한 것뿐, 순종 잘하는 척한 것뿐이었습니다.  엄마에게 기꺼이 얼마나 진심으로 마음 다해 잘 해드렸나 그게 없었습니다. 단지 형식을 사랑한 것뿐이었습니다. 마음에 없는 전화를 드렸고, 귀찮은 마음 있었으나 어쩌면 남을 의식해서, 엄마를 의식해서 찾아뵈었드랬습니다. 온 마음을 드리지 못한 게 설웠습니다. 늘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ㄷ해드려야 했는데, 그저 의무 정도로, 형식적으로 엄마를 대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호상이라 말하며 괜찮은 표정으로 문상을 받는 이들의 미소가 얼마나 슬픈 건지, 때로는 농담으로 담담한 척 하는 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감춘 눈물이 흐르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세상에 시원한 이별이란 없다는 것을, 이별은 몰라도 영원한 이벌은 그 누구의 것이든, 어떤 것이든, 슬프지 않은, 가슴이 무너지지 않은 그런 이별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열여섯에 시작된 시집살이, 76년을 남의 집에 시집와서 평생 고생이란 고생, 그것도 고약스러운 고생만 골라서 하시다, 말 잃고 눈 잃고 귀 잃고 침묵하신 엄마, 세상에 대고 큰소리 한 번 못하신 엄마, 그냥 침묵하시네요.

 

 

 

엄마, 아듀!

 

 

 

 

 

느슨하게 늘어졌다가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지 듯

 

날숨 후

 

들숨 없는

 

무서운 고요

 

그리고

 

사흘 못 넘겨

 

잔디 덮은 

 

엄마의 영원한  침묵

 

 

 

타악

 

 

 

엄마, 이제는 안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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