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상에서 가장 죄 많은 사람 엄마의 침묵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먼 길, 아주 먼 길 떠나시고 실감이 나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분명 살아 계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 구름에 숨어 계실까 싶어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뭉게 구름 더러 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구름들 마저 하늘 한 구석으로 넘어가 사라지더니 텅빈 하늘, 깨질 듯한 하늘로 변했습니다. 빈 하늘, 어디에도 아버지 숨을 곳 없어서 슬펐습니다. 그 마음을 노래한 시가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시인으로 등단한 게 1990년, 30년이 가까운 날에 어머니도 그 하늘 구름 속으로 숨으셨습니다.
세상에 가장 죄 많은 사람이 있다면, 아니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부류가 있다면 그건 엄마라 하겠습니다. 엄마는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아픔을 꾹 참습니다. 아픔을 참고 참아도, 아니 그리 참고 표현을 하지 않으니 어찌 알라고요. 그래서 괜찮은 거려니 자식들은 그냥 넘기지요. 그렇게 아픔을 말하지 않다가 더는 움직일 수 없어서 병원에 가면 그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지요. 온몸이 만신창이 되도록 참았드랬지요. 어떻게 손 쓸 수 없지요. 그러고는 떠날 날만 셈하지요. 그 셈의 날이 짧으면 짧은 만큼 편안히 가셨다지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아니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는 엄마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을까요?
그렇게 아파도 아프다 하지 않는데 누가 그걸 알까요? 자식은 아프지 않아도 아픈 척하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아픈 것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요. 아니면 전생이 있다면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승에 와서 그 말 못하고 혼자 앓다 떠나지요. 자식이 아프면 그 고통마저 대신하고 싶어 안달이면서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요.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요. 자식이 감추는 아픔은 척 보면 알면서도, 자식은 엄마가 아프다 말하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걸, 전혀 눈치도 못 채는 걸 왜 모르지요. 엄마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엄마의 아픔을 몰랐습니다. 어렴풋이 몸이 안 좋으신 것은 알았지마는 그렇게까지 만신창이로 망가지셨을 줄 몰랐습니다. 멀리 떨어져 산 죄라면 죄라하겠지요. 그랬던 울 엄마, 더는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병원에 실려 가셨을 때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더는 현대의학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무슨 죄라고, 아픈 게 무슨 죄라고 그 아픔을 혼자 앓으셨느냐고요. 자식들이 걱정하게 하면 안 된다고 신이 엄마들에게 명령이라도 하여 세상에 보낸 건가요? 탈무드에 신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보살필 수 없어 대신 엄마들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래서 아파도 아프다 말하면 안 되는 게 엄마인가요?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았을까요?
늦게 나마 엄마의 아픔을 알고,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큰형 대신 엄마의 병실을 지켰드랬습니다. 고통에 젖은 엄마의 얼굴을, 엄마의 가쁜 숨소리를, 엄마의 미세한 움직임을 혼자만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밤, 내게 주어진 사흘 밤, 엄마와 밤새도록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드랬습니다. 그 밤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습니다. 평소에 몰랐던 엄마의 아픔이 서러웠습니다. 그 밤들이 나에게 없었더라면 엄마에 관한 성찰의 시간이 없었을 텐데, 그 밤들이 있어 나를 더더욱 엄마를 떠나 보내지 못하나 봅니다. 억지로 엄마를 마음에서 마저 보내지는 않으렵니다. 마음에 기억하는 한 엄마는 살아 있으니, 그렇게 품고 살아가렵니다. 사실 기억하는 나만 나일 뿐 기억이 없는 나는 내가 아니니까요.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아파도 아프다 말할 수 없는 죄많은 엄마를 그리 보내고 나는 그냥 기억합니다. 가끔은 엄마 생각 나면 눈물 나겠지요. 남들이 볼 때는 담담한 척 그리 살다가 혼자 있는 시간엔 혼자 젖겠지요. 남들이 보면 마음만 적시고, 혼자 있으면 눈가를 적시겠지요. 그래요. 엄마, 죄가 많아서, 자식들한테 걱정하게 하고, 번거롭게 하면 안 될 죄많은 엄마, 그래서 그렇게 아프게 가셨으니, 그냥 가셔요. 아니 가시면 그냥 가시지, 마음에서마저 보내달란 말씀은 하지 마시어요. 엄마는 영원한 엄마니까요. 몸은 나보다 작아도 마음은 한없이 큰 엄마, 울 엄마, 힘은 약해도 마음은 나보다 훨씬 강한 내 엄마, 이제 쉬셔요. 신에게 죄를 지어 세상에 와서 내 엄마 되셨어도, 그래서 신에겐 죄 있다면 그건 내 몫 아니니 난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에겐 엄마는 완전 무죄니까, 편히 쉬셔요. 그냥 내 마음에 편히 계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