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내 삶의 계절
어둠이 깊으면 깊을 수록 아침이 곧 온다는 것이 진리이듯, 겨울이 깊으면 깊은 만큼 봄도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겠지요. 아직 겨울이 한창인 듯 연일 춥습니다. 입춘이 엊그제 지났으나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렇게 추움에도 추위가 그닥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무리 춥다 해도 추위는 언젠간 끝나고 곧 따뜻한 봄이 온다는 만고의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밤이 한없이 이어진다면 그 밤에 지쳐서 더욱 힘만 들 것이며, 겨울이 한없이 이어진다면 질식해서 살아남지 못하고 삶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그 희망 하나가 우리를 살게 하고 노래하게 하고 꿈꾸게 하는 것 아닐까요?
어떤 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힘은 바로 그런 꿈, 조건이 아닌 양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은 그저 행운이나 바라고, 그 행운을 기다리는 것에 다름 아닐 겁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요행, 그 요행이란 로또에 맞는 것이거나, 벼락에 맞는 것만큼의 확률게임일 테이지요. 그러니 조건을 바라보고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겁니다. 만일 조건이 인생이라면 그건 이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일 테니, 그것은 아주 피동적인 삶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삶이란 조건이 아니라 양보라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지요. 지금의 나에게 맞추어 사는 게 아니라, 아니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겠지요. 지금의 내 꼴이란 의식이 아니라, 지금의 나는 어떠하든 간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거나 의지를 갖는 것, 그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겠지요. 지금의 조건이 어떠하든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 지금의 내가 나의 미래를 만들어갈 뿐이다 란 의식과 의지가 나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현명한 삶 아니겠어요. 이런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건 살아지는 대로가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이겠지요.
물리적인 계절과는 관계 없이 내 삶의 계절은 어떨까요? 한겨울일까요. 사계절을 따지지 않고 겨울이냐 봄이냐, 추위냐 온화하냐만 놓고 볼 때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이쯤에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면 삶을 대하는 마음 저세가 드러나겠지요. 지금 겨울이라 해도 봄을 기다려야겠지요. 이미 봄을 맞았다 생각하고 봄을 준비하며 살아야겠지요. 그 삶에 따사로운 꿈의 햇살이 비쳐들겠지요. 쨍하고 해뜰날이란 노랫말처럼 그런 믿음이 내일을 준비하게 할 테지요. 그래서 꿈은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합니다. 지나치게 허황한 꿈만 갖지 않는다면, 꿈은 망상이 아닌 도전의 힘과 도전의 의지를 줄 테니까요.
내 삶은 늘 봄입니다. 너무 이른 봄도 아니고, 한창 봄과 이른 봄 사이에서 삶을 즐깁니다. 늘 꿈의 씨앗이 아니라 쌂의 종자를 뿌리는 것이지요. 그냥 꿈만 꾸는 게 아니라 현실의 씨앗을 심는 것이지요. 요 며칠 이런 저런 강의계획서를 짭니다. 완벽하게 그 계획대로 강의할 것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입력하거나 담당자에게 보냅니다. 대학에는 홈페이지에 입력하는 것으로, 공공기관에는 원하는 횟수만큼 구상하여 보냅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왜냐고요. 계획을 정하면 그 범위가 한정되고,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강의할지의 내용이 머리속에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어 놓고, 흙속에 묻어 놓고 그 열매를 이미 기다리듯, 구체적인 삶은 희망을 넘은, 꿈을 넘은 기쁨을 줍니다. 가만 생각하면 구체적인 계획이 마음의 평온을 자져다 줍니다. 그건 꿈만 꾸는 게 아니라 꿈을 넘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꿈은 마음을 부풀게 하고 즐겁게 하지만 그게 꿈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을 겁니다. 꿈을 꿈으로 두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소박한 삶, 살아가는 삶이 기쁨을 줍니다. 그 삶은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겨울을 봄으로 바꾸는 것, 겨울 속에서 이미 봄의 씨앗을 심는 일일 겁니다.
봄이 아름답고 희망적인 것은 겨울에 이미 봄을 심었기 때문이지, 때가 되어 봄이 온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이 계절이 춥다 춥다 하지 말고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겠지요. 지금 당신의 계절은 추운가요? 그러면 춥지 않도록 몸음 움직여 현실의 종자를 준비하시지요. 그리고 현실이 딱딱하여 종자를 심을 수 없다 하지 말고 당신의 삶의 곡괭이가 무엇일까 찾아서 그 땅을 파서라도 종자를 심으려 시도해 보시지요.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지만, 삶의 봄은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서 봄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랍니다. 나는 종자를 심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봄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