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우이암에서 도봉산으로 홀로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은가요? 그러면 산으로 오세요. 잘 부르지 못하지만 정말 홀로 걸을 땐 가끔 혼자 이 노래를 읊조리며 걸으니까요. 평소에는 거의 노래를 잊고 사는데, 산에서 혼자 걸으면 이런 노래 저런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혼자 걸으면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지루한지 생각이 잠시 쉴 때면 생각을 이어 나도 모르게 입가를 슬며시 노래가 빠져나오지요. 그러다 누군가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멎지요. 그런데 평일에 산에 오르면 사람 만날 일, 어니 평일에 이른 아침 산에 오르면 거의 사람 만날 일 없으니 노래가 나올 때 종종 있으니 내 노래가 듣고 싶으면 산에 오르세요.
오늘은 도봉산을 한 바퀴 돌아볼까요. 눈채를 챘나 모르겠으나 대부분 산 이야기로 글을 쓰겠다 마음먹고 시작한 이번 여행은 200일로 정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곧 산 이야기를 접거나 줄이고 다른 이야기를 할 거란 말이지요. 그리고 오늘이 190번째 글이니까요. 10여 차례 남은 이야기 중에 자주 오르는 도봉산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하여 이번엔 도봉산을 한 바퀴 돌기로 하자고요. 도봉산을 그럴 듯하게 한 바퀴 돌려면 다락능선에서 출발해서 보문능선으로 하산하거나, 역으로 보문능선으로 올라서 다락능선으로 하산하거나 합니다. 그러다 더 뻗어나가 오봉까지 포함헤서 돌아오면 좀 더 길게 탈 수 있고, 밖으로 더 길게 나오면 우이암을 넘어 방학능선까지 포함시켜서 타면 좋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길게 시작합니다. 집 앞에서 1119번 버스를 타고 방학동 신동아아파트 앞에서 내립니다. 아직 어둑어둑합니다. 주택가를 지나고, 택시 종점을 거쳐 산으로 접어듭니다. 길은 알아보기 충분할 만큼 먼동이 터옵니다. 산 초입에 들어서서 잠깐 걸으면 쉽사리 능선에 오릅니다. 방학능선입니다. 공원을 산책하듯 걸어도 좋습니다. 완만한데다 육산이라 걷기에 좋습니다. 능선만큼은 눈도 없어서 걷기에 딱 좋습니다. 험하지도 않지 눈도 녹은 상태지, 육산이지 편안히 걸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니, 이런 길, 이런 상황에 걸으면 사색에 잠기기 딱입니다.
깊은 산길이라기보다 공원길을 연상하게 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사색에 젖다가 산짐승이라도 나타날까 싶으면 사색이 끊기고 노래가 흘러나오지요. 홀로 아리랑이지요. 능선을 따라 그리 걷는데, 걷다가 뒤돌아보는데 동쪽하늘이 발그랗게 물들지요. 곱다 곱다 참 곱다 그렇게 읊다가 생각지 않은 해돋이를 봐야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지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동쪽을 보니 숲이 활호라 타오르는 듯 붉음 속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뼈대들처럼 솟지요. 이렇게 보는 해돋이도 나름 생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네요.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그렇게 해맞이를 하고 다시 길을 가지요.
원통사로 가는 길과 위험지대임을 알리는 갈랫길에선 위험하다는 그 길로 걷지요. 이때부터는 좀 긴장을 해야 하므로 사색도 잠시 휴가요, 노래도 잠시 휴가입니다. 바윗길로 오릅니다. 때로는 바위를 올라야 하기도 하고요. 암릉지대, 어쩌다 멋진 바위에 오르면 전망이 아주 좋지요. 뒤돌아서서 우측을 보면 북한산 정상부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 성을 보여주지요. 좌측을 보면 도봉산 정상부가 금빛으로 빛나지요. 이 길의 장점이 그런 것이지요. 북한산과 도봉산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쪽 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좋지요. 게다가 이 곳 자체도 아름답지요. 바위들이 많으니 벼랑 틈새에서 살아난 단아한 소나무들의 모습이 경이롭지요.
눈이 온 바로 다음에 이곳에 오르면 참 멋지겠다 생각합니다. 눈 쌓인 북한산과 눈 덮인 도봉산을 동시에 볼 수 있겠다, 그 풍경을 상상하니, 올해 그런 날이 있을지 모르나 그 날이 온다면 지체 없이 기왕이면 해돋이도 볼 겸 그 풍경도 볼 겸, 이 능선으로 올라야겠다 생각합니다. 그 풍경을 상상하면서 암릉지대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어느덧 우이암정상입니다. 우이암, 아주 여러 번 보았으나 볼 때마다 멋진 바위입니다. 소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위에서 보면 소귀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나 반대 방향에서 보면 남자의 거시기처럼, 멀리 오봉이나 신선대에서 보면 수녀님처럼 보입니다.
우이암에서 잠시 머물러 요기를 하고 도봉산 신선대로 향합니다. 이 길로 가다 보면 곧 보문능선과 만납니다. 방학능선에서 보문능선이 겹치면서 주능선으로 잇습니다. 다시 오봉으로 가는 교차점에서 직진하면 신선대로 향하는 길입니다. 아침 풍광을 지대로 즐기며 혼자 신나게 걷습니다. 북한산을 바라보다 오봉도 바라보고 저 앞에 도봉산 정상부도 바라보고 골고루 바라보는 재미를 느끼며 걷다 보면, 암릉지대를 아기자기한 산행의 즐거음을 느끼다 보면 도봉산에서 제일 높에 오를 수 있는 신선대입니다. 아찔하게 솟은 신선대 정상에 서면 마치 신선이 된 양 기분 좋습니다. 거기 홀로 서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요.
신선대를 내려와서 다시 앞으로 능선을 따라 아찔아찔한 암을지대를 조심조심 걸으면 소위 와이계곡에 당도합니다. 계곡이라지만 물이 흐러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암릉지대입니다. 암릉지대의 모양이 마치 영어의 알파벳 와이자 모양을 세운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릅니다. 이 지대를 통과하려면 급경사 암릉지대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지요. 설악산 공릉지대를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상상하면 되려나요. 물론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갈 수 없는 지대지요. 쇠줄을 잘 움켜잡고 걸으면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조금 겁이 있는 이들이라면 현기증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와이 계곡을 건너면 포대능선입니다. 포대능선으로 계속 걸으면 사패산을 향하고, 그리 가지 않고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려면 거기가 다락능선입니다. 도봉산 산행의 참맛은 와이계곡을 통과하는 것, 그리고 이어서 포대능선에서 다락능선으로 하산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다락능선 역시 암릉지대라 팔에 힘을 주어야 할 곳들이 더러 있지요. 그렇게 하산하다가 뒤돌아 도봉산 정상부를 바라보거나 망월사쪽을 바라보면 경치가 아주 그만입니다. 직접 밟는 즐거움보다 바라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걸 느끼게 하는 곳이 다락능선이랄까요. 물론 다락능선 중간에 만월암으로 빠져 내려갈 수도 있고, 그 곳 역시 볼만합니다. 북한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가 만월암이지요.
어때요. 도봉산 한 바퀴 잘 돌아오셨나요. 이렇게 한 바퀴 돌아내려오노라면 오전 아홉시 경입니다. 그러면 그때쯤 사람들이 등산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오르고 나는 하산합니다. 이른 아침 산행, 왠지 뿌듯합니다. 남들이 잠든 시간에 많은 일을 한 것 같아 말이지요. 오늘은 특히 두어 가지 보너스를 받았네요. 뜻하지 않은 해돋이를 받았고요. 북한산과 도봉산을 동시에 바라보는 재미를 얻었고요. 암릉지대로만 골라 걷다 싶이한 셈이지요. 그러면서 호연지기도 생기는 것 같고요. 이 정도 걸으면 무리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런 기분입니다. 이런 즐거움이 나를 자꾸 산에 가게 합니다. 오늘도 보람 있는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