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황홀한 눈꽃 세상 도봉산 신선대

영광도서 0 1,917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나의 하나님'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파롬하니 살아나는,  연두빛으로 살아나는, 삼월이 곧 오려는 이월의 막바지입니다. 겨울과 봄 사이인 요즘은 세상이 무척이나 삭막해 보입니다. 그런데 마침 눈 예보가 있습니다.  삭막한 세상을 한방에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눈세상의 마력, 그 아름다움을 보고 싶습니다.  하여 다음날 내릴 눈내린 산에 올라야겠다 그리 마음먹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이었습니다. 목요일 밤 사이에 중부지방의 눈소식이었습니다. 마침 목요일 저녁 강의가 전주에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에서 강의를 하고 막차로 올라와서 새벽에 도봉산에 올라야겠다 계산했습니다.  물론 산행준비를 갖추고 내려갔습니다.  복장은 눈에 거스리지 않을 정도로 등산복을 입었습니다. 등산가방을 메고 등산화를 갖추어 신고, 눈이 내렸을 걸 대비하여 아이젠도 챙겼습니다.  새벽차로 올라와서 곧바로 도봉산에 오를 계산이었습니다. 

 

 

 

강의는 고전읽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강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고전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는 고전 읽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농사짓는 일,  성년이 되어서 공장살이를 하면서 공부를 겸하다 보니 책이라야 참고서 읽기가 전부였습니다. 다행히 나이들어서나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서,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랑스문학을 나름 많이 읽었습니다. 그 덕분에 책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고전 읽기를 함께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해석하는 능력, 그걸 인정 받으면서 어쩌다 고전읽기 강의도 했습니다.  그 시작이 지금은 서울에서 두 곳, 인천에 한 곳, 전주에 한 곳, 전남에 한 곳, 전체 다섯 곳에서 고전읽기 강의를 합니다.  매달 최소한 네 권 이상의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전주에서 0시 58분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 오전 4시 18분 도착입니다. 차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한 시간 남짓 잔 것 같습니다.  하차하여 전철을 기다리려면 한 시간 가량 남습니다. 전에 보아둔 역사 내의 카페로 들어갑니다. 첫 손님입니다. 커피 한 잔에 빵 두 개를 시켜 놓고, 그 틈을 이용해 독서를 하다가 전철이 도착할 시간에 나서서 전철을 타고 도봉산역까지 갑니다.  역에서 내려 보니 눈이 제법 쌓여 있습니다. 해가 뜨려면 한 시간 남짓,  눈 내린 세상에 떠오를 붉은 불덩이, 하얀 세상,  멋진 산행을 상상하면서 벌써 마음이 들뜹니다. 그럼에도 산에 올라갔다가 퍼지면 안 되니까, 도봉산 쪽으로 오르다 24시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좀 사고, 물 두 병을 사서 챙겨 담습니다. 가방이 제법 무게가 나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 몇 권 들어 있는 데다 물이랑 먹거리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다락능선으로 오를까 하다가 어두울 때는 좀 위험할 듯 싶어 마당바위로 향합니다. 이 길은 신작로 끝까지 걸어서 산으로 접어듭니다. 정상까지 가장 가까운 길이기도 합니다. 신작로에서 산으로 들어서면서 보니 두 사람이 앞서 간 발자국이 있습니다.  마당바위를 500여 미터 앞두고 만월암쯤에서 은근한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둑어둑한 산속 온통 눈으로 덮힌 세상 사이사이로 펴져가는 북소리, 사람들 마음 대신 산의 만물들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듯 싶습니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진실한 불자라도 된 기분입니다. 그만큼 해가 뜰 시간인 가까웠다는 신호입니다. 그 소리따라 마음도 급합니다. 하늘을 보니 아직 흐린 듯합니다. 해돋이 보기는 글렀다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여유롭습니다. 해돋이는 그만두고 설경이나 즐겨야겠다 싶습니다.

 

 

 

마당바위를 지나려니 이젠 온 세상이 하얗게 드러납니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건너다 보이는 산풍경도 바로 옆 풍경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잔뜩 눈을 이고 있는 늘푸른 소나무들도 도인처럼 멋지고 당당해 보입니다. 산에는 온통 눈꽃이 피고 내 마음엔 웃음꽃이 만발헤 혼자임에도 저절로 입가에까지 웃음꽃이 흘러나옵니다. 대기는 부옇게 흐려 있고, 세상은 온통 하얗습니다. 신선대 정상에서는 보다 멋진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겠다, 좌측으로 북한산, 우측으로 도봉산, 바로 앞으로 자운봉, 이 모든 것들이 눈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 상상을 하면서 걸음을 재촉합니다.

 

 

 

조금 올라가려니 날이 흐려 안 올라올 것 같던 해가 불쑥 올라옵니다. 깜짝 놀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위치로 부리나케 이동합니다. 정상에서 볼 수는 없었으나 황홀하고 멋진 해돋이를 보았습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거대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붉은 해가 무척이나 운치가 있었습니다. 의도하지 못한 행운을 얻었다 자찬하며 산행의 보너스를 받았다 생각하며 신선대를 향합니다. 신선대 바로 앞에 서니 아침 햇살을 받은 신선대는 붉은 빛을 띠고 있습니다. 하얀 모자를 쓴 녹색 소나무들이 고아하게 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곧 정상에 오르니 정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먼저 올라온 이들은 바로 아래 봉우리로 이동하여 머물고 있는 게 보입니다. 정상에서 혼자 사방을 둘러보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환상 그 자체입니다. 어쩌면 올해 마지막 눈이라서일까, 아주 환상적입니다. 신선대 정상에서 북한산, 사패산, 자운봉, 아름다운 겨울 산들이 두루두루 보입니다.  풍경에 젖어 사방을 둘러보려니 언제까지고 머물고 싶습니다. 더구나 정상 부근엔 상고대가 조금씩 피기 시작합니다.  혼자 차지한 정상을 비우고 떠나려니 애서 벙복한 지역을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쉽습니다.  정상에서 혼자 만끽하는 이런 기분 흔치 않습니다.

 

 

 

사방으로 퍼진 아침의 붉은 햇살, 그 햇살을 받은 도봉산 정상, 앞을 내려다보니 와이계곡으로는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저 길을 개척자처럼 걸어야겠다 마음먹으니 설렙니다. 물론 두려운 마음 없지 않습니다. 눈 쌓인 길, 그것도 위험지대를 러셀을 하며 걸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올겨울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아름다운 설경을 독차지 한다 생각하니 너무 좋습니다. 내려갈 일도 흥분됩니다.  번거로움을 마다 않고 시도한 산행, 졸음을 쫓으며 시작한 산행, 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남겠다 싶은 셈을 하며 외이계곡을 건너가려고 신선대를 내려갑니다. 신선대를 떠나지만 아직 여전히 나는 신선입니다.  하얀 눈 세상의 주인 신선입니다.  이 자리에 오르지 않으면 범인이었을 내가 지금은 신선입니다.  마음에도 가득 신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자요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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