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가장 아름다운 아침의 선물
아무런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아주 신선한 바람을 만나고 싶나요? 아니면 아무런 때도 묻지 않아 청초롬한 하늘을 바라보고 싶나요? 아무런 가성이 섞이지 않은 순순한 삶의 찬가를 듣고 싶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행복어린 세상에서 즐겁게 삶의 노동을 즐기는 삶의 움직임을 보고 싶은가요? 이 모두를 한꺼번에 보고 싶다면, 지금 일어나세요. 지금 하루를 시작하는 바로 이 시간에 일어나세요. 그리고 집을 나서 보세요.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무가 호흡을 하고, 새들이 노래하고, 하늘이 축복하는 산, 그 산에 그냥 오르면 돼요.
엊그제 비가 오고 어제는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렇다고 산에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월요일엔 항상 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일찌감치 도봉산에 올랐습니다.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침이 선사하는 첫 선물을 받았습니다. 서쪽하늘에 해맑은 반달이 조요한 빛을 쏟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해맑은 별, 아마도 엊그제 내린 비에 깨끗이 목욕을 한 별들 하나 둘 셋, 서너 별들이 유난히 고운 얼굴을 내밀고 하늘이 참 맑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달을 보고 별을 보니 기분이 신선했습니다. 내 마음을 닮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정말로 아무런 잡타 하나 섞이지 않은 바람, 딱 기분 좋게 불어주는 바람이 지나는 길에 내 얼굴을 다정스럽게 쓰담쓰담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 아침이라기보다 새벽이 어울리는 듯한 이 시간에 벌써 영롱한 목소리로 어느 새가 노래를 부릅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로 미루어 분명 작고 귀엽게 생겼을 듯한 느낌의 새의 아침찬가입니다. 아침에 받는 두 번째 선물이라고 할까요. 밤 사이엔 아무도 다녀가지 않아서 사람의 소음이 전혀 섞이지 않았을, 그래서 아주 영롱한 목소리로 어느 새가 아주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아침의 찬가를 불러줍니다. 마치 아름다운 아침 산행을 즐기라는 응원가를 불러주는 듯 합니다. 아침 새는 울지 않으며 노래할 뿐이라고 강조하는 듯, 삶의 행복이 잔뜩 배인 노래를 볼러줍니다.
신선한 바람에 들뜬 마음으로, 아느 새의 아침 노래의 응원을 받으며, 산중턱에 오를 즈음 세 번째 아침 선물을 받습니다. 오르다 뒤돌아 보니 서ㅉ고으로 조금 더 치우친 달빛은 점차 창백해지는데, 동쪽 하늘 수락산 위가 발그랗게 물듭니다. 아침 일을 시작하려는 태양이 하루의 멋진 구상을 하며 부끄럼을 타고 있나 봅니다. 발그랗게 뒤로 따라오는 태양의 설렘을 느끼며 조금 더 오르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틀고 가만가만 세상에 선 보이는 태양을 맞이합니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보는 태양, 아니 해돋이와는 아주 색다릅니다. 몸을 드러내고 산 위로 솟는 해를 바라보다, 나뭇가지 사이로 숨어서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발그랗게 물든 노을, 가장 진한 노을 사이로 살그마니, 그러다 갑자기 우뚝 솟아나와 붉은 햇살을 퍼뜨리는 해돋이, 그냥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점차 붉은 빛을 낮색으로 바꾸기 시작하는 햇살이 등을 밀어주는 시간 도봉산 정상을 바라보며 오릅니다. 아침 햇살의 빛깔을 받은 산 풍경이 유별스럽게 곱습니다. 아침에만 볼 수 있는 색깔입니다. 풍경만 그런 게 아닙니다. 풍경이 아름다운 건 그 풍경을 아름다운 풍경화로 앉히는 아침 하늘 덕분입니다. 아침 하늘이 배경으로 풍경을 받쳐주어 아주 이상적인 풍경화를 만들어줍니다. 참 맑습니다. 아주 새파랐지도 않습니다. 녹색도 아닙니다. 그 중간쯤의 은은한 색조입니다. 만질 수 없지만 만질 수 있다면 감촉은 부드러울 것 같은 그런 색조의 하늘입니다. 이런 하늘 빛은 아침에만 가능합니다.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하늘, 이른 아침, 그것도 비가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에나 만날 수 있는 색조고운 하늘, 이 아침에 네 번째 선물입니다.
아직 배래지 않은 고운 햇살, 은은한 금빛 햇살을 머금은 산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저리도 고운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니 얼마나 더 아름다울 수 있겟어요. 아주 깨끗한 바람이 마음을 보듬어 주는 바람 덕분에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관객인 나, 게다가 전혀 때묻지 않은 은근한 하늘을 배경 삼고, 아직 아침의 색깔을 남겨 은근히 발산하는 햇살을 받으며 온전히 드러낸 장쾌한 도봉산 정상의 바윗덩이들, 그야말로 비경 중의 비경입니다. 이런 시간, 여러 박자가 잘 어우러진 이참에만 볼 수 있는 다섯 번째 선물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고운 풍경화 감상입니다. 어울리는 시간, 뒷받침해주는 자연, 바로 여기여야 하는 공간인 산, 알맞은 시간, 잘 어울리는 분위기, 거기에다 내가 중심에 있어야 감상할 수 있는 순간의 풍경화입니다.
아침의 아름다움을 찬미에 담아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을 읊조리며 하산하노라면, 아! 삶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고요한 아침을 깨우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찬 아침의 노래입니다.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몸으로 부르는 노래, 아니 몸이라기보다 부리를 부대껴 부르는 노래입니다. 딱다구리가 벌써 아침 일과를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에 벌써 삶의 노동을 시작합니다. 힘차게 쪼아대는 삶의 떨림, 삶의 움직임이 경쾌하게 산야를 울립니다. 삶이란 얼마나 역동적인지, 그리고 삶을 위한 부대낌이건 삶의 노동은 얼마나 성스러운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딱다구리의 몸짓은 여섯 번째 선물입니다.
아름답고 고운, 조용하면서 역동적인, 깨끗하면서 생기발랄한 산에서 나서면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산을 사랑하는 마음, 아침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울려 그린 아침 풍경화를 마음에 품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른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이른 아침에 산에 올라야 받을 수 있는 삶의 선물을 마음에 품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기운을 가만가만 세상에 퍼뜨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사람들과의 하루를 준비합니다. 아침이 아름다운 것처럼 종일 아름답기를, 아름다운 날은 내일도 이어지기를 가만 바라 봅니다. 어떤가요. 당신도 이 선물들을 몽땅 받고 싶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