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100대 명산인 듯 명산 아닌 양주 불곡산

영광도서 0 2,080

호랑이가 없는 곳에선 토끼가 왕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름 재주가 있거나 힘이 있으나 주변에 나보다 재주가 더 좋거나 힘이 더 센 사람이 있으면 빛이 바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해당합니다. 100년 묵은 나무도 수령이 적은 나무들 가운데 있으면 주목을 받으나 수령이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에 있으면 사람들의 눈길 하나 받기 어렵습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닥 멋진 산들이 주변에 없으면 주목을 받아 명산이란 이름을 얻으나 주변에 명산이 둘러싸고 있으면 괜찬헥 생긴 산이라도 그러한 명예로운 이름 하나 얻지 못합니다. 사람이나 산이나 있는 위치가 중요합니다.

 

 

 

경기도 북쪽이자 서울의 북쪽에 있는 양주, 그 양주고을에 있는 불곡산에 대표적인 그런 산입니다. 불곡산은 불국산으로도 불립니다. 해발 47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명산이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여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으로 나와 있답니다. 양주시 유양동 및 산북동의 경계에 우뚝 솟아 유난히 높아 보입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의 규모는 작습니다. 그러나 산 정상부 주변은 오밀조밀한 바위들, 기괴하게 생긴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산세도 아름답고 눈길 줄 곳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소위 100대 명산에는 들지 못합니다.  바로 앞에 남쪽에 도봉산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봉산의 명성에 밀린 데가 높이에도 밀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전철로 갈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한데다, 서울을 둘러싼 산과 달리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언제든 가면 편안히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사시사철 언제든 괜찮습니다.  봄철이면 기암들 사이에 핀 진달래를 볼 수 있으니 풍경화요, 여름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다운 산 탄 것 같아 제격이요, 가을엔 기암들 사이에 물든 단풍들을 보면 멋진 그림 한 폭이요, 겨울이면 고생을 많이 하며 자라 마치 분재 같은 소나무들이 흰눈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풍경화입니다.  특히 유양동에는 옛 양주군 관아지를 비롯해 문화 유적들을 겸해서 볼 수 있습니다. 산 중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이 있는데, 백화암 밑에 있는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양리에는 양주목사가 4백여년간 행정을 펴던 동헌과 어사대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국가 무형문화재 제2호) 전수회관, 양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금화정, 양주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143호) 등 문화재가 모여있습니다. 감악산과 함께 의적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활동무대이기도 합니다. 상봉 470미터를 비롯 상투봉과 임꺽정봉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산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춘 산입니다. 산책길처럼 걷기 좋은 길이 있는가 하면, 암릉지대도 있습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도 여럿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양주시와 의정부시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방으로 열려 전후좌우에 있는 산들이며 마을들을 쉽게 조망할 수 있습니다.

 

 

 

산행시작은 양주역에서 시작, 시청까지 걷고 나서 산으로 접어듭니다. 평탄한 길을 걸어 상왕봉 아래, 그 다음부터는 암릉지대로 산이 우람하구나 하는 느낌을 얻습니다.  처음엔 산이 시시하다, 야산 같다 싶을 겁니다. 그러다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면 산 답구나 싶을 겁니다. 온통 암벽지대라 게절에 따라 병풍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그쯤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산의 진미를 맛보기 시작합니다. 바위 틈새에서 용케도 살아 남은 소나무들을 경탄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바위를 타는 재미를 더하며 정상에 오르면 그곳이 불곡산 제일봉 상봉으로 470미터입니다. 역시 불곡산은 명상이여 하는 마음으로 하산하듯 내려갔다가 험한 바위지대를 다시 오르면 상투봉을 만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사방을 조망하는 재미를 만끽하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하산하듯 하산하는 척 하다가 다시 앞에 산들보다 더 아찔한 바위지대를 오르면 양주시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신선처럼 걸터앉기 좋은 지대가 있는 곳, 임꺽정봉입니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하면 이쯤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하면 그만입니다. 더 길게 산행하여 20여 키로미터를 걸으려면 장곡저수지쪽으로 하산하여 둘래길을 걸으면 충분한 거리가 나옵니다. 양주시청을 원점으로 삼고 산행하면 그리 됩니다. 지난번 여름과 가을엔 그렇게 둘레길까지 포함해 걸었으나 이번 산행은 양주역을 기점으로 한바퀴 돌았습니다. 임꺽정봉에서 대교아파트 방향으로 하산하다 산발치에 이르기 전 둘레길로 접어들어 임꺽정 생가를 지나고 양주산대놀이 공연장을 지난 다음 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다음엔 도로를 건너 양주역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따라 양주역까지 걸었습니다.

 

 

볼곡산에 여러 번 갔으나 새삼 느낀 것은 바위 틈새에서 살아가는 소나무들이 많다는 것, 상상하건대 눈이 내린 바로 후라면 참 멋진 볼거리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산인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서울 주변에 출중한 산들이 워낙 많은 탓이란 생각을 하니 산도 사람들의 삶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산이 드문 평야지대나 아니면 기괴한 산들이 별로 없는 지방이거나 낮은 산들만 있는 지방에 이렇게 솟은 산이 있다면 100대명산에 들고도 남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리 할 수 없고 이처럼 뿌리박고 있으니, 사람이나 산이나 식물이나 제자리에 만족하며 자기 역할을 하면 그게 나다운 삶을 사는 게 아니겠어요. 토끼면 어떻고 호랑이면 어떤가요. 토끼는 토끼로 살고 호랑이는 호랑이로 살되, 제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게 제일 행복한 삶이지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