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아름다운 삶을 가르치는 선생님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사람이 변한다, 이 말은 사람 자체가 변한다기보다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변하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한다면 그는 변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여기엔 긍정적인 변화가 있고 반면 부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변화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이 정당하다는 전제로, 원래는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그 목적에 부합하게 변화를 유도하는 것, 그것을 교육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교육에는 목적이 있고, 피교육자의 언어나 행동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두에 서는 사람을 선생, 이 틀에 참여하여 자신의 행동이나 언어를 바꾸려는 사람을 학생이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교육을 제도건교육이라 한다면, 그렇지 않고 이런 형식적인 규정 없이 이루어지는 교육도 얼마든 있습니다. 가정교육이라는 것도 있고, 자연스럽게 삶에 적응하도록 하는 사회교육도 있습니다. 교육은 이처럼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나 언제나 일어납나다. 다만 교육이라 할 때는 형식화된 교육만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도권교육이라는 형식을 갖춘 교육보다 형식 없이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교육이 보다 진정한 교육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테면 누군가의 규제나 강요라기보다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행동이나 언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인 진정한 교육이요, 바람직하 교육입니다.
누군가 나는 가르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 나는 배운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최소한 의도적인 교육이며 형식적인 교육일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가르친다는 사람은 없는데 그에게 배웠다면 그것은 스스로 깨달이 언행이 변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교육이 삶의 현장에서는 제도화교육보다 더 빈번하고 푹넓게 일어납니다. 때문에 교육이라 하면 이러한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며 바람직한 교육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선생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학생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선생, 누구나 학생, 이런 의식을 갖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요 바람직한 사회이며 질서로운 사뢰, 정돈된 사화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내가 강의하는 도봉문화원 수필 교실에 특별한 손님이 왔습니다. 수필1반 수강생 중에 할머니 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손자입니다. "할머니께서 수필 수업에 나오시면서 표정이 무척 밝아지셨어요. 그리고 무척 글쓰기를 좋아하시고요. 그래서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시나 글을 모아 시화전을 열어드리려고요." 이 젊은이는 마침 전시회를 하는 사업을 시작하는데 자신의 할머니 작품 전시회를 제일 먼저 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작품을 받아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출력하는 과정, 전시하는 과정 모두를 손수 책임지고 하겠다는 겁니다.
할머니가 기뻐하는 일이라서 그렇게 하겠다는 젊은이의 인상이 참 맑고 고왔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의 변화, 할머니의 기쁨의 원천을 알고, 할머니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할머니의 작품과 함께,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시화전을 열어주겠다는 생각을 한 이 젊은이가 참 기특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에게 그 안내를 직접하도록 시켰습니다. 그의 취지를 듣는 수강갱들 모두 너무 기뻐했습니다. 전시회를 열 수 있어서가 아니라 기특한 젊은이의 언어와 행동, 맑고 고운 표정이 즐겁게 한 걸 겁니다. 참 바르게 잘 자랐다, 참 성숙한 젊은이다 싶었습니다. 이게 진정한 교육이다 싶었습니다.
손자를 올바르게 교육하겠단 생각도, 교육이란 생각도 없는 저절로 교육, 할머니는 진정한 스승입니다. 그냥 80이 넘은 나이에도 글을 쓰는 공부를 하고, 기쁜 표정으로 글을 쓰는 모습, 먼 길 마다 않고 월요일이면 뭔가 설레는 표정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러 즐겁게 나서는 할머니의 밝은 표정, 그게 진정한 교육이었을 겁니다. 선생이라 나서지 않고도 삶의 모습 그 자체로 누군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 이보다 효과적인 교욱, 이보다 아름다운 교육, 이보다 진정성 있는 교육은 없습니다. 이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손자의 스승입니다. 아니 훌륭하 스승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선생들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선생이라 나서지 않고 그냥 삶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변화를 저절로 이끌어내는 생활인들, 참생활인들, 이들이 진정한 선생 아니겠어요.
나 역시 가르친다는 직업이인지만,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진정한 삶을 배웁니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변화요, 올바른 언어의 변화요, 바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아니겠어요. 선생이란 호칭을 갖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자연적인 선생 노릇을 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지요. 맑고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구상을 말하는 젋은이의 해맑은 얼굴이, 그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견하다, 착하다, 참 자랑스럽다고 말할 듯 싶은 할머니의 평화로운 표정이 이 아침에 행복한 그림 한 점으로 또오릅니다. 소리 없는 잔잔하면서 아름다운 미소가 번지는 그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나는 그들을 배우는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