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다 꺼져 이 개 새끼들아!" 이 한 마디가 마음에 든다. 얼마나 더 무너져야 하지? 사고현장에서무엇이 중요한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들은 특종을 잡으려고 난리를 친다. 상황을 제멋대로 해석한다. 그것을 세상에 알린다. 그들은 구조작업에 방해꾼이다. 정치꾼들이 온다. 생색이나 내러 온다. 말이라곤 협의해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인 듯 지시 아닌 그 한 마디만 할 거면서 마음은 딴 데에 가 있다. 자기 얼굴 알리려고 그 바쁜 사람들 일 못하게 막아놓고 억지웃음 짓는다. 기념촬영이다 뭐다 참 골고루 지 랄한다. 잘못된 일엔 나 몰라요. 뭔가 건수 생기면 나타나 사진 박는다. 기자들이나 정치꾼들이나 하등 사고처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터널에서 한 사람이 살아나온다. 의지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더럽고 치사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에 둘러 싸여 터널 밖으로 나온다. 그가 세상에 던지는 한 마디, 다 꺼져 개 새끼들이다. 그는 삶의 의지 하나로 살아나온 영웅이다. 그를 대신해 그 욕을 소리 높여 외친 구조팀장, 그는 한 생명이라도 살리겠다며 목숨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었던 진정한 영웅이다. 그가 우리를 향해 외친 한 마디는 욕이다.
이 영화는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이정수 대리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 정수 대리는 주유를 하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30,000원만 넣어달란다. 그런데 주유원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려서 만 땅을 채운다. 이 대리는 어처구니없어 한다. 하지만 사장한테 혼난다며 난처해하는 할아버지를 보자, 그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계산을 한다. 할아버지가 미안한 마음에 막 시동을 걸고 출발한 그의 차를 따라온다. 그리곤 생수 두 병을 건네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정수는 귀찮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물 두 병을 뒷좌석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뒷자리에 던져진 물 두 병? 물병은 다시 카메라에 잡힌다.
그리고 이제 정수는 터널에 진입한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상한 조짐이, 소리들이 그리곤 그는 자동차와 함께 터널 안에 갇히고 만다.
터널이 무너졌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 신고를 하려니 폰이 터지지 않는다. 이리 저리 안테나 터지는 곳 찾아 119에 신고를 하려니, 접수 받는 양반이 요식행위에 따라 별걸 다 묻는다. 정수는 안에 갇혔고, 바깥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무너졌습니다. 이번엔 터널입니다. 호도터널입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이 갇혀 있습니다.”
신고자가 한 명이니, 이제 그의 이름이 방송을 탄다. 딸의 생일 케이크 한 개를 싣고 가던 그에게 남은 식량은 그거 하나다. 그리고 아까 뒷좌석에 던져 놓은 물 두 병, 그게 전부다. 바깥세상과 그의 통화가 열린다. 그의 번호를 용케 알아낸 기자가 그에게 건화를 건다. 그리고 그를 구조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그의 목소리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특종을 잡으려 애쓴다. 기자다운 발상이다. 그들에겐 특정만이 지상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반면 구조를 해야 하는 입장의 구급팀장은 환장할 노릇이다.
"방송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끊으세요. 제발."
그럼에도 양보하지 않는 그 기자를 향해 던지는 말인 즉 “야! 이 개 새끼야.” 그래 욕먹어도 싸다. 한술 더 떠서 이번엔 현장에 장관님 납신다. 촌각을 다투는 싸움현장에 장관님 납시는 건 좋다만 이 양반 형식이 우선이다. 사진 찍겠다고 일 중단하게 한다. 죽느냐 사느냐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장관이 현장에서 남기는 말 의례 같은 말이다.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참으로 편리한 한 마디, 이 한 마디면 무엇이든 통한다. "잘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구조작업 중단시켜 놓고 없는 폼 있는 폼 재면서 바쁜 사람들 불러서 사진 찍고 그 한 마디 남기고 나리들 현장을 떠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혼자인 줄 알았는데 기척이 있다. 개다. 집에서 기르는 개, 생존자가 한 명 더 있다. 의협심 발휘하여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녀와의 만남, 그녀는 바위에 눌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는 먹을거리로 자신이 아껴둔 케이크를 가져다주려는데, 그 케이크가 아예 없어졌다. 범인은 그놈의 개다.
“야 이 개 새끼야. 야 이 XX 개 새끼야."
그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운명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이제 살아남은 건 그와 개 한 마리다. 물도 떨어져 간다. 다른 한편 정수의 아내는 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생활의 전부를 굴 앞 막사에서 보낸다. 정수를 구출하기 위한 작업은 난관의 연속이다. 설계도와 실제 구조가 달라 이제껏 파내려간 지점에서 150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17일 동안의 허당짓을 한 것이다. 엉뚱한 곳을 팠으니, 늦어도 너무 늦다.
공교롭게도 그의 휴대폰 배터리는 동이 난다. 외부와의 통신수단은 단절이다. 이제 밖에서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밖의 소식을 그나마 듣는다. 라디오를 통해서다. 그를 위로하기 위한 방송도 있다. 그 방송으로 아내가 밖의 소식을 전한다. 그가 살았는지를 확인하려고 구조팀장이 규정을 어기고라도 수직으로 뚫어놓은 굴로 다이빙 벨을 타고 내려간다. 그런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정수가 최후수단을 생각해 낸다. 자동차 크락숀 울려대기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아내의 마지막 방송을 듣는다. 죽으려면 죽으라고 아이와 자신도 죽을 거라는 아내의 방송을 아프게 듣는다. 죽겠다던 그가 살기 위해 움직인다. 무너지는 터널, 개를 따라 구멍을 찾아 헤맨다. 한편 구조팀장이 굴로 내려온다. 결국 정수는 쓰러졌고, 팀장이 돌무더기 아래서 그를 찾아낸다.
그가 개와 함께 살아 나온다. 눈을 가린 채 들것에 실린 그를 향해 그에게 접근할 수 없는 기자들이 소리쳐 묻는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가 작은 소리로 구조팀장에게만 들리게 말한다. 궁금한 기자들이 구조팀장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묻는다. 구조팀장이 작게 말한다. 좀 크게 말해달라고 기자들이 다시 요청한다. 구조팀장이 목청을 돋우어 크게 소리친다.
"다 꺼져! 이 개 새끼들아!"
생방송을 타고 팀장이 대신한 이 정수의 말은 여과 없이 전파된다. 마침 기적적인 구조 소식을 듣고 현장에 폼 잡으러 오던 장관 일행, 그 욕지거리의 주인공들은 누구랴? 장관이 손사래를 친다. 자신을 대신해서 소리쳐준 구조대장을 향해 정수는 엄지를 치켜 올린다. 그 해석도 가지가지다. 모두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이제 마무리다. 정수가 아내와 차를 달린다. 터널이 앞에 있다. 터널을 보자 금방이라도 터널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그럼에도 다행이다. 그와 아내가 터널을 통과한다. 이제 다른 터널은 그대로 안녕이겠지.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찌그러진 단면들을 터널붕괴라는 소재를 가지고 상징적으로 다루었다. 꼼꼼하게도 잘 만들었다. 하필이면 30000원 넣으려 했던 주유를 만 땅으로 하고, 할아버지한테 물 두 병 받은 것, 요긴하게 쓴다는 설정, 딸 선물로 주려고 산 케이크가 그 차 안에 있었다는 설정이며, 그 음식이 그의 유일한 먹을거리인데, 그것을 개가 먹는다는 설정, 그래서 개 새끼란 욕을 유발한다는 것, 착착 들어맞게 잘 짜인 각본이다. 그 안에 개를 집어넣음으로써 그 개 새끼란 욕이 아주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비극 속에 갑자기 터져 나오게 하는 웃음이다.
케이크는 사라졌지만 그 개는 끝내 동물적인 감각으로 탈출로를 알아내게 하는 역할을 하여 그를 살려내는데 도움을 준다. 그 개는 나중에 딸의 선물로 변할 것이니, 케이크 대신이다. 터널 안에서의 인간애와 정수의 아내를 돕는 이웃들의 순수한 사랑이 살아나오려는 인간의 의지와 소박한 이들의 삶의 애환을 그렸다면, 터널 밖에서의 진풍경은 우리 사회의 모순들이다. 특히 기자들과 정치인들,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비웃음들이 가득 찬 복잡한 바깥세상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사회에 살고 있는 동시에 터널 밖에 있는 존재들처럼 우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개 새끼, 아니었을까? 첫 번째 개 새끼는 구조팀장이 기자들에게 또는 정치인들에게 한 욕이다. 구조하는데 방해만 하는 그들, 특종 잡으려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건 아랑 곳 않고 취재를 위해 덤벼드는 기자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나타나면 폼부터 재고, 일 중단 시키게 만들고 기념촬영이나 하고 생색이나 내고 한 마디 툭 던지고 가버리면 그만인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개 같은 새끼들이다. 두 번째, 그건 인간이 개에게 던지는 진짜 개 새끼다. 그가 먹으려던 유일한 식량 케이크, 같이 안에 갇힌 소녀와 나눠 먹으려던 그 케이크를 개 같은 놈, 아니 진짜 개가 먹어 버렸으니, 참 아주 깨끗이 먹어버렸으니 개 새끼다. 세 번째, 정수가 터널을 빠져나와 구급차로 실려 가야 할 판인데 역시나 기지들이 방해한다. 다음엔 한술 더 뜨는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그에게 소감을 묻는 기자들을 향해 정수가 작은 소리로 읊조린 욕, 다 꺼져 개 새끼들아! 욕먹을 짓 하는 이들에게 던진 욕이다.
정수를 대신해서 구조팀장이 큰 소리로 퍼부어 댄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진 욕 한 마디, 개 새끼들, 하긴 우리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니 욕도 아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다시 터널을 지나야 한다. 저 터널 무너지는 거 아냐. 이번엔 무엇이 무너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터널을 지나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탄다. 안전지대는 없다. 더구나 모든 게 부실공사고 설계도와 실제공사하곤 맞지도 않는다. 그뿐이랴. 그렇게 엉터리 공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사를 한다. 부실은 부실을 낳고, 개 새끼는 개 새끼를 낳으리니,오호 통재라. 너 그리고 나, 참 못한 이기적인 놈들, 세상에 던지는 통쾌한 욕, 다 꺼져 개 새끼들아! 나는 영화 터널을 보았다. 그리고 기억한다. 세상에 던지는 욕 한 마디를. 다 꺼져 개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