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 <미 비포 유>, 당신 만나기 전에 나, 당신을 만나고 난 후의 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고통 속에 눈을 뜨기 싫어요. 전에 완벽한 남자였어요. 내가 걸어 다니면 파리의 여성들은 눈이 돌아갔고, 운동을 즐겼으며, 직장도 열심히 다녔어요. 하지만 그에게 사고 뒤의 그의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지 살아있는 껍데기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난 이렇게 못살아요."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서부터 죽음일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그저 살아 있는 것 말고는 없다면, 그것도 삶일까? 안락사의 문제, 진정한 삶의 문제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덧입힌 아픈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제목 그대로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 라서 로맨스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중 때로는 짜증스러웠다. 때로는 웃었다. 때로는 슬펐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 전후좌우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연인이 침대에서 달콤한 언어를 주고받는다. "다음 휴가는 이렇게 보내자! 등산처럼 어려운 것 말고....." 휴가계획은 무산된다. 두 사람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교통사고 때문이다. 전혀 관계없는 두 연인과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 루이자가 6년이나 근무하던 카페가 문을 닫는다. 살아가기 막막하다. 루이자의 가족들, 루이자의 아버지도 일을 잃고, 누구 하나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루이자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달랑 한 달치 월급 더 얹어 받는 것으로 루이자마저 일을 잃었다.
착한 루이자, 가족들의 걱정을 나 몰라라 못하는 착한 그녀에게 부모가 손 내민다. 동생도 손 내민다. 해도 해도 너무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원망할 줄 모르는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여자다. 가족들을 보니 자신이 일자리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일자리를 애타게 찾다가 그녀가 찾은 곳, 거기에서 우리의 주인공을 만난다.
만능 운동선수에다, 인물이 훤하지, 하여 누구에게나 시선을 끌었지, 잘나가는 부모를 두어 세상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던 윌, 그가 주인공이다. 불행은 조금도 틈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의 윌, 그가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다. 윌 트레이너는 사고 이후 하루하루 우울하게 지낸다. 그런 그를 위해 엄마 카밀라 트레이너는 간병인을 고용하려 한다. 처음 보면 푼수 끼 다분한 루이자는 무난히 간병인으로 들어간다. 루이자 클라크는 활발하고 말이 많다. 처음 만난 날 루이자는 계속해서 윌에게 말을 걸지만 까칠한 윌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다.
윌이 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 만에 윌의 애인은 남자를 찾아 떠났다. 윌은 절망한다. 전신마비의 그가 자살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거나 윌의 손발이 되어주기, 그것이 간병인인 루이자가 할 일이다. 패션 일을 하고 싶었다는 루이자는 옷 입는 것은 영 촌스럽다. 그럼에도 자신이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윌을 웃게 하겠다고 우스꽝스러운 옷차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백한, 겉과 속이 같은 그녀, 바보스러운 듯한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 교통사고로 마음을 닫은, 게다가 그 원인으로 변심한 애인 때문에 마음을 닫은 윌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극과 극이어서 서로 전혀 융화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 극은 극끼리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은 서로 점차 가까워진다. 피상적으로는 극과 극인 것 같지만, 솔직하다, 착하다, 인간답다는 점에서 둘은 일치한다. 그러니 이들이 잘 어울릴 수밖에. 루이자를 만나면서 점점 밝은 표정을 찾아가는 윌, 까칠하지만 거짓이나 위선이라고는 없는 윌, 윌에게 루이자도 서서히 마음을 연다. 그냥 겉도는 말만 나누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윌은 폐렴으로 삶의 위기를 맞는다. 그때 루이자는 윌의 손목에 흉터를 알아차린다. 그 흉터의 원인은 자살 시도로 생긴 것이고, 6개월 후에는 안락사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우연히 그제야 루이자는 알게 된다. 그녀는 충격에 빠진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민하던 그녀는 일을 관두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동생이 돈 쓸 일이 많은데 어떡하냐고 사정한다. 루이자는 동생을 위해서라도 그 일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윌이 유언으로 남긴 안락사를 포기하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계획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승마장에도 가고, 윌의 전 여자친구 결혼식에도 가고, 여행도 떠난다. 여행 마지막 날, 루이자는 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밝히며 죽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럼에도 윌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윌, 만능스포츠맨, 적어도 사고를 당하기 전에 그는 신체적으로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었고 일에서도 촉망 받는 능력자였다. 사람 좋기로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그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두 사람은 사랑한다. 온몸으로 사랑할 수는 없으나 사랑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 둘은 몸으로, 마음으로 사랑한다. 아프다. 떠나려는 윌도 아프다. 사랑하는 그녀를 마음껏 사랑할 수 없어 아프다. 그녀에게 다 주지 못하는 사랑이 아프다. 루이자 역시 그 마음으로 아프다.
안락사 날이 다가온다. 그럼에도 윌은 루이자의 청을 듣지 않는다. 고통 앞에서도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이유는 당신 때문이야"라던 윌, 그토록 패션 감각이 없던 루이자가 첫 외부 데이트를 나가며 빨간 원피스에 머플러를 두른 채로 나오자, 의상에 조언을 해주고, 데이트에서 돌아온 차에서 그녀를 잠시 멈추게 하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데이트 한 남자로 더 있을게요."라고 말하던 윌, 그랬는데 윌은 더 이상 살지 않겠단다. 유언장에 기록한 대로 삶을 마감하겠단다.
"당신이 원한 인생은 아니잖아요. 이제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당신은 정말 특별해요."라며 루이자가 사랑을 고백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을 해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고통 속에 눈을 뜨기 싫어요. 전에 완벽한 남자였어요. 내가 걸어 다니면 파리의 여성들은 눈이 돌아갔고, 운동을 즐겼으며, 직장도 열심히 다녔어요. 하지만 그에게 사고 뒤의 그의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지 살아있는 껍데기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난 이렇게 못살아요."
어찌 그 말을 이해 못할까. 그토록 화려했던 그의 인생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사랑하는데, 앞에 있는 사람 정말 사랑하는데,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을 줄 수도 없는데, 그는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루이자가 연민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는 것을 고백해도, "당신 덕분에 난 완전히 달라졌어요."라며 고마움을 표해도, 그것이 진실임을 알면서도 윌은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란다.
"함께 있는 이 밤, 당신이 내게 준 가장 멋진 삶이야"라던 윌, "난 내 마음을 다 보여줬는데"라고 울먹여도 윌은 제 길을 간단다.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안 루이자에게 윌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있어달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아달라고! 더는 참을 수 없는 루이자는 그의 곁을 떠나 집으로 와 버린다. 그럼에도 못내 마음이 아리다. 루이자는 윌을 위해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그랬는데, 그는 죽는다 한다. 그 죽음의 자리에 안 가기로 한 것이 후회스럽다. 아니 가기가 두렵다. 그녀에게 동생이 용기를 준다.
그녀가 달려간다. 스위스로 향하여. 윌이 죽기 전 도착한 루이자에게 윌이 묻는다. "같이 있어 줄 거죠?" 루이자가 윌에게 말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윌은 그녀를 떠났고 그녀는 안락사하러 들어간 윌을 배웅했다. 읠은 그녀에게 편지를 남겼다. 편지 내용인 즉 얼마간의 돈을 유산으로 남겼다.
"우리가 고향이라 부르는 작은 마을을 떠날 자유를 줄 정도의 돈이에요.......“
안락사를 다룬 이 영화, 안락사가 눈물 나게 한, 누구나 눈물 흘리게 한 요소임엔 틀림없지만, 관객들의 그윽하고 진한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은 안락사 이전에 그 바탕에 자욱한 안개처럼 깔린 슬프면서 달달한 그리고 진실한 사랑 덕분이다. 사랑이 울게 한다. 인간애가 울게 한다. 그 진실하고 해맑은 마음들이 울게 한다. 그래서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주 아름다운 영화다. 아름다운이란 수식어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렇게 말한다만 다른 말로 하면 아주 아름다운 슬픔을 밴 영화다.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는 괴로움은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 하루를 살아도,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참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움직일 수 없으면서 살아 있다는 것, 삶의 의지는 있다고는 해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불구의 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고통이지만 사랑하는 상대에게도 고통이라는 것을 그는 안다. 상대는 살아만 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기어이 죽으려 한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그 선택이 서로에게 좋으리라 판단한 젊은이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 모습이, 그 장면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다가오기에 나도, 모두도 눈물을 짜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야 축복이지만, 미래의 어느 날, 가고 싶은 곳에 조금은 괴롭더라도 갈 수 있을 만큼이어야 하고, 조금은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이라면, 거기까지가 나의 삶다운 삶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그냥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은 들 진정으로 살아 있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리고 당신을 만나고 난 후에 나는, 이 또한 생각할 거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를 이끌어낸다. 아름다운 의미를 주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나와 그를 만나고 난 후의 나, 좋다. 당신을 만나기 전 나의 하늘은 흐림 그 자체로 우울 모드였다. 당신을 만나고 난 후 지금은 설렌다. 행복하다. 이런 만남들이 우리에겐 필요하겠지.
윌이 루이자에게
“미 비포 유, 당신 만나기 전에 나는.....나는 늘 절망 속에서 죽음만 생각하며 살았다. 지난날의 화려했던 날들이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죽지 못함이 고통이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가 떠났을 때, 친구들이 나를 잊어갈 때 쓰디 쓴 인간의 비애를 느꼈다. 사람이 미웠고, 세상이 저주스러웠다. 내 안에 긍정적인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미 애프터 유, 당신을 만나면서 사람이 다 같은 것이 아님을,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내게도 웃을 거리가 있음을,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 일부라도 기쁨이 있음을, 벅차오르는 마음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당신이 고맙다. 당신을 만나고 난 후 더 살고 싶다. 살고 싶은 만큼 또한 고통스럽다. 당신을 마음으로는 사랑할 수 있어도 몸으로는 마음껏 사랑할 수 없으니, 당신에게 사랑을 줄 수 없으니. 그래도 고맙다. 당신을 보내준 신이, 내 마지막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음이, 할 수 있다면 비록 죽어서도 당신과 함께 할 것임이.”
루이자가 윌에게
“미 비포 유,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는..........당신을 만나기 전에 난 의상 일을 하겠다면서 의상감각이라곤 전혀 없었고, 내가 나를 사랑한 적 전혀 없었다. 한 번도 내가 사는 이 좁은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오직 가족이 원하는 대로 살았고, 그러나 그것이 다인 줄로 알았다. 부모님을 위해 살았고, 여동생과 조카를 위해 직장을 다녔다. 실직한 뒤에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찾아 다녔다. 무엇 하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자막 나오는 영화를 본 적도 없었다.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한 적도 없었다. 진정한 사랑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미 애프터 유, 당신을 만나고 난 후 나는........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인간의 진실을 알았고 이 좁은 동네가 뭐야 더 먼 외국에도 가 보았고, 해변에도 가 보았고, 근사한 곳에서 음식도 먹었고, 경마장에도 가 보았고, 클레식 공연도 함께 보았고, 달라져도 많아 달라졌다.
당신을 떠나보내고 나는
당신이 누볐다던 파리로 간다. 거기서 근사하고 우아하게 나를 즐길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기도 할 것이다.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모습으로 활보도 할 것이다. 그게 당신이 나에게 원한 거니까.
당신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었지. 오직 남을 위해서만 살 줄 알았지. 그것만이 인생의 본분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사실 내 인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니 그 무엇보다 내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 그러니 당신이 원한 대로 이제는 내가 나를 위로하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야지. 저기 저 멀리 떠난 당신, 다시 볼 수는 없어도 당신은 내 안에 있겠지. 내가 아직도 촌스러울 때면 그럴 땐 머플러를 벗는 거라든지,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때면, 이젠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보라고 말해 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