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0- 검사외전, 정의인 듯 정의 아닌, 죄수인 듯 죄수 아닌 사람들

영광도서 0 1,760

평범한 시민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아내만 그런 게 아니라 딸까지도 그렇게 당하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자신은 끈으로 묶인 채 지켜봐야만 했던 평범한 시민, 그는 그 분통터지는 일을 국가에서 해결해주겠거니 한다. 그런데 한 가정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놓은 이 파렴치하고 악한 범인들을 법은 한통속이 되어 가벼운 처벌로 그 놈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더 이상 분통을 못 참은 그는 원수들을 하나씩 차례로 찾아내어 복수할 생각을 한다. 그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일부러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다음 미리 계산해서 파놓은 감옥과 연결한 굴로 바깥세상을 드나들며 원수를 하나씩 갚아간다. 미국 영화 <모법시민>이다.

 

<검사외전>을 보는 순간 구성을 다르나 문득 그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 역시 그 영화처럼 감옥 안에 갇힌 억울한 검사 출신 죄수가 자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놈들을 하나씩 복수해 간다. 다만 직접이 아니라 감옥에 들어온 아주 똘똘한 놈 하나 포섭해서, 내 사람으로 만든 후 그를 나갈 수 있도록 요령을 알려준 후에 그로 하여금 대신 복수를 해 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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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욱은 제대로 된 검사다. 진실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검사다. 다만 거친 수사 방식으로 유명하여 다혈질 검사란 별명을 얻었다. 그가 감옥에 갇힌다. 그가 취조 중이던 피의자가 변사체로 발견 되면서 살인 혐의로 체포당한 것이다.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쓰고 그는 15년 형을 받는다.

 

실제로 그가 피의자를 죽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함정에 빠진 것, 야심이 많은 정치인이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변재욱의 상관을 사주하였고, 그의 상관이 취조 중이었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상관이 피의자를 죽게 만든 것이다. 피의자는 호흡곤란을 겪는 병이 이었던지라 항상 호홉을 돕는 기구를 늘 사용해야 했는데, 그걸 빼앗아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변재욱에게 상관은 어떻게든 무죄로 빼 줄 것이라며 그를 설득하여 피의자를 죽게 한 것을 시인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빠져나오기는커녕 살인범으로 검찰에서 죄수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제야 배신당한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그를 살인자로 낙인을 찍었으니 꼼짝할 수 없다.

 

그는 꼼짝없이 감옥생활을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밖에서 그를 도울 사람도 없다. 게다가 그는 안에 갇힌 몸이다. 그런데 그에겐 무기가 있다. 검찰생활을 한 덕분에 법에 대한 풍부한 상식이 있다. 같은 죄라도 어떻게 조서를 쓰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음을 안다. 그걸 이용해 그는 간수들의 곤란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줘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죄수들 중에 법률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손해를 보고 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 감방 안에 있다면, 그들을 법적으로 조언해준다. 덕분에 비록 감옥에 갇힌 죄수라는 신분은 같으나 그 안에서 영감으로 통할 만큼 존경을 받기도 하고, 대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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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에 나타난 죄수, 파렴치한 사기꾼이다. 진실 따위 나 몰라라! 허세남발 꽃미남 사기꾼이다. 사기를 잘 치려면 머리가 팍팍 잘 돌아가야 하듯, 이 친구는 머리가 아주 영리하다. 사기꾼 중에 상 사기꾼이라 할 정도로 머리 회전이 무척 빠르다. 녀석이 그럴 듯하게 사기를 치다가 너머 꼬리가 긴 탓에 잡혀 감옥에 들어온 것이다. 그의 이름은 치원이다.

 

미국 유학파라고 설치면서 여자를 유혹한 그는 한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니 머리로는 대한민국 초고라 할 만하다. 그를 무죄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대신 그가 나가면 자신이 계획하는 일을 돕는 조건이다. 변재욱의 조언대로 법적인 대처를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는 법의 구속에서 풀려나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이제 감옥에 있는 변재욱의 복수를 돕는다.

 

아주 치밀하게 검사 노하우를 총동원한다. 그동안 쌓은 정보를 최대한 활용한다. 이를테면 검찰 인물들의 면면은 물론 습관, 취향, 성격까지도 모두 꿰고 있는 그는 그들을 공략할 방법까지 치밀하게 지시한다. 치원을 무혐의로 내보내고 반격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치원은 재욱에게서 벗어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변재욱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를 안에서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았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변재욱이다.

 

그렇게 사기꾼 치원은 변재욱의 지시대로 움직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복수할 증거를 수집한다. 그런데 안에서 아무리 다시 재판을 받으려 하나 그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믿었던 선배이자 상관이 계략을 꾸민 것이다. 때문에 번번이 그가 시도한 재심을 받지 못한다. 다행히 밖으로 나간 치원이 그의 지시를 따라 그대로 하니 드디어 재심을 받을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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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안 악의 무리들이 그대로 있을 리 없다. 그가 재판정에 나오지 못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재욱이 누구보다 믿었던 옥중 심복이 그를 배신한 것이다. 그가 법원으로 출두하려고 채비를 하려고 감방의 복도로 걸어나오다 불시에 놈에게 복부를 칼에 찔린 것이다. 재판은 열렸으나 정작 주인공은 재판정에 참석하지 못하고 시간만 간다. 그를 돕기로 마음먹은 검사가 그의 출두를 기다리나 그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것은 끝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응급조치를 하고 아픈 몸으로 재판정에 나타나 드디어 진실을 밝힌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그를 감옥에 갇히게 한 상관도 현장에서 체포당한다. 정치적인 야심을 위해 꾸민 그의 상관들, 죽은 피의자를 그들이 죽일 수밖에 없었던 비밀이 드러난다. 그들은 부정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건설업자와 결탁한 것이다. 건설업자는 데모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내쫓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한다. 변재욱이 죽인 것으로 되어 있는 피의자는 바로 그 조직폭력의 멤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정의를 외치는 검사 변재욱에게 걸려들었으니 그가 불면 모든 비밀이, 뇌물을 받은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피의자를 죽이고, 그 죄를 변재욱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마침 치원도 그 조직폭력에 형식적으로 가담한 적이 있었던 덕분에 그들의 비밀은 하나씩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해결되었고 변재욱은 출옥하고, 치원도 이제 사기 치던 머리를 달리 써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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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치고는 아주 디테일이 돋보인다. 통상적이면서 아이디어 하나 만큼은 그럴 듯하다. <모법시민>을 조금 닮은 점도 없지 않다만 오락 삼아 보기엔 딱 좋다. 허술한 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변재욱이 살인 누명을 쓰고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다는 설정도 무리가 있다. 아무리 우리나라 법체계가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현직 검사가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고 살인 누명을 쉽게 쓰고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상관처럼 야비하고 비열하고 야심 넘치는 파렴치한 검사는 있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15년 형을 받는다는 설정은 무리인 것 같다.

 

한치원을 이용해 안에서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재미있긴 하다만 그렇게 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물론 사기꾼이니까 그렇다쳐도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허술한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변재욱을 감옥에 집어넣을 때엔 그토록 치밀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허술하게 당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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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범죄영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새로울 것은 없다. 대부분 범죄 영화가 그렇듯이, 정의로운 법집행자가 있게 마련이고, 정의로운 자는 누명을 쓴다, 누명을 쓴 그는 누명을 벗으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누명 벗기가 무척 어렵다, 관객은 그가 억울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안타깝다, 그런데 누명 벗기가 쉽지 않다, 벗을 듯이 벗을 듯이 벗지 못하고 시간만 간다, 희망이 없어진다, 가까스로 기회를 얻는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를 돕는다, 그의 도움으로 그가 디디어 누명을 어렵사리 벗는다, 대부분 이런 식인데, 이 영화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실제 우리 사회구조다. 야심 많은 법집행자, 소위 정치검찰은 항상 존재하니까. 그걸 이렇게 희극삼아 고발한다만 여전히 정치검찰은 존재한다. 늘 개혁한다고 한다. 늘 그래왔다.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일단 일반인들보다 욕심이, 야심이 많아야 한다.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질이 다르다. 그래야 그 마당에서 제몫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인류의 역사, 역사시대가 열린 3000년 이래로 돌고 도는, 반복되고 반복되는 정의와 불의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사기꾼인 듯 사기꾼 아닌 사기꾼 같은 정치인, 애국자인 듯 애국자 아닌 애국자 같은 모략꾼, 그들이 정치인이다. 겉으로야 모두 위대한 애국자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라지만 누구보다 야심이 많다. 욕심이 남다르다.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아야 나중에 실망이 덜하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  그들을 정치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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