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5- 어린왕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준 좋은 친구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거야.”
수많은 상징들, 책 전체가 상징으로 가득 찬 <어린왕자>, 참 아름답고 위대한 책이다.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어디에서 읽어도, 반복해서 읽어도 감동을 준다. <어린왕자>는 제목으로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지만, 실제로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이들이 읽을 수는 있으니 이해하기는 어렵다. 책 전체가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어른이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엔 어렵다. 물론 아이들이 읽어서 나쁠 건 없다. 오히려 권할 만하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든 이해 못하든 상관없이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떠오를 테니까.
제목이 어린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해서, 어른들이 읽기엔 유치하거나 읽을거리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다. 어른들이든 아이들이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읽기를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대단한 명작, 성서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팔린 책 <어린왕자>, 이 책을 재해석한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어린왕자>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한 <어린왕자>를 영화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애니메이션이라 아이들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른들은 많지 않았다. 그 아이들 틈에 끼어 영화를 보았다. <어린왕자>를 많이 읽은 탓일까, 졸리기도 했다. 영화가 재미없었거나. 명성에 걸맞을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실망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원작 책을 넘어서는 영화는 많지 않기도 하겠지만.
주인공은 어린왕자라기보다 전형적인 요즘 아이다. 온갖 공부라는 짐을 짊어질 대로 지고 생활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엄마는 소녀에게 오로지 공부만을 하게 한다. 소녀의 생활계획표를 엄마가 짠다. 엄마는 소녀에게 자신이 짠 생활계획표 대로 생활할 것을 강요한다. 소녀는 엄마가 짜놓은 인생계획표대로 생활한다. 빡빡한 하루의 계획표에 맞추어 소녀는 그대로 하루하루를 숨 막히게 살아간다. 어른들보다 오히려 더 빠듯한 일정이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게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공부가 끝나면 학원에 간다. 그리고 진학을 위한 리허설로 바쁘다.
면접시험에서 묻는 말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소녀는 달달 외워댄다. 예상한 질문이 안 나오면 그때부터 헤매기 시작한다. 엄마는 소녀에게 인생계획표를 아주 치밀하게 짜준다. 그대로 살면 그런 대로 잘살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어른들이 원하는 사람은 될 테지만.
정말 중요한 건 뭐지?
소녀의 옆집에는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소녀는 우연히 조종사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부터 소녀는 자주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한다. 순수한 소녀와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순수하기로는 소녀 못지 않은 할아버지는 나이를 떠나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자신이 젊었을 때 만난 적인 있는 어린왕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녀는 할아버지다 들려준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곤 책 <어린왕자>에 빠져든다. 어린왕자는 다른 별에서 왔는데 그곳에서 장미를 키운다는 이야기. 어린 왕자에게는 그 장미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뿐인 장미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린왕자는 할아버지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일을 계기로 어린왕자와 젊었을 적 할아버지는 함께 다닌다. 그런데 그만 어린왕자가 뱀에 물린다. 그걸로 할아버지의 어린왕자 이야기는 끝난다.
소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사실로 여긴다. 어린왕자가 어딘가에 있을 걸로 믿는다. 그러나 소녀는 어린왕자와 장미가 어느 별에 있는지, 함께 있는지 모른다. 소녀는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장미와 함께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슬퍼한다. 할아버지는 어린왕자는 항상 함께 한다지만 소녀는 그 말로 위로를 얻지 못한다. 소녀는 그 다음부터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할아버지의 집에 있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다. 그리고는 드디어 어린왕자를 만난다. 그렇게 현대의 어린 소녀는 어린왕자를 만난다. 소녀가 어린왕자는 더 이상 순수하지도, 귀엽지도 않다. 어린왕자가 아니라 어른왕자, 후하게 평하면 청년왕자다. 게다가 순수했던 어린 시절도 기억 못한다. 소녀와 만나면서 어린왕자는 다행히도 어린왕자의 기억을 되찾는다.
그 즈음 할아버지는 아파서 누워 있다. 소녀는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린, 할아버지가 쓴 어린 왕자 이야기를 책으로 묶는다. 그리고 소녀는 그 책을 할아버지에게 선물한다. 엄마는 더 이상 딸이 공부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고스란히 어린왕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어린왕자가 전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어린왕자>를 차용해서 장미를 만나러 돌아간다면 행방을 감춘 어린왕자의 뒷이야기라고 할까, 어른이 된 어린왕자라고 할까, 발상은 매우 좋았으나 어린왕자가 갖고 있는 신비를 오히려 깨고, 아름다운 환상을 사정없이 무너뜨린 영화라고 평하면 너무 모진 평일까, 그만큼 내가 어린왕자에 갖고 있는 애정을 파괴한 듯한 마음의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에 언급했던 어른들의 삶, 이를테면 찌든 삶을 상징적으로 현대에 옮겨다 놓았다는 점,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새롭다면 새롭긴 하다. 나름 평을 한다면 어린왕자에서 언급한 길들여짐이 없는 건 아니다. 여우에게 배운 길들여짐의 미학이 영화에선 어른들의 세계, 즉 어른들이 짜놓은 계획에 길들이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문제이니, 부정적인 길들임이라고나 할까?
정말 중요한 게 무언지 모르는 어른들의 무분별한 아이들을 향한 폭력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아이라면 아이답게 살아가야 하는데, 때에 맞는 놀이도 즐기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표기도 하고, 자유롭게 놀기도 하며 생활해야 하는데, 기계처럼 또는 로봇처럼 생활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길들임을 넘어 기계로, 로봇으로 살아간다. 어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때문에 순수가 사리진다. 어른들의 길들임으로 아이들이 순수마저 사라진다. 삶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건 마음의 눈으로 상대의 마음을 보는 것인데, 어른들은 그걸 생각 못한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춘 중요한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산다.
이 영화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영화다. 물론 <어린왕자> 원작을 읽는 만큼의 감동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이참에 <어린왕자>를 읽은 적이 없는 이들에겐 원작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중요한 건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