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7- 사도, 완벽한 영화라 생각한 순간 김빠지는 느낌

영광도서 0 2,010

1. <사도>와 파에톤 콤플렉스

 

 

 

권력의 욕망이 강한 자는 오래 살아남는다. 욕망이 그를 더 살 수 있게 한다. 아들이 나보다 잘나면 아버지인 나는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오래지 않아 아들보다 훨씬 먼저 죽는다는 전제가 있을 때 그렇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다면, 지금의 나의 자리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 내 자리를 양보하지 못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지금 사랑하는 여자와 결합하면 자기보다 나은 아들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제우스는 자신이 아무리 그녀를 사랑해도 기꺼이 포기한다. 자기보다 잘난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은 자신의 왕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우스가 메티스를 사랑할 때고 그랬고, 테티스를 사랑할 때도 그랬다. 메티스는 그 예언을 듣자 통째로 삼켜서 없앴고, 자신은 포기하는 대신 테티스를 못난 인간 펠레우스와 짝을 맺게 해주었다. 신은 영원자이니, 도저히 그 자리를 내놓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들을 닮은 우리의 왕 영조 역시 그렇다. 잘난 아들에게 오히려 질투를 느낀다. 때문에 자기보다 잘난 사도세자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자신은 살아남고 아들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가두어 죽게 한다. 이 영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염려한 인간의 무의식적 전형으로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아들은 무의식적으로는 삶의 적인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너는 이오카스테와 결합하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이 너를 죽이고 너의 아내와 그가 결혼할 것이다.”그 말이 두려워 아들 오이디푸스를 죽이려 시도했던 라이오스 왕처럼 말이다.

 

 

765556982_JBAewnj6_49ec0f62e64a689b2a5dd 

   

 

 

 

칼이 비에 젖는다. 그 칼을 든 사도세자가 더는 움직이지 못한다. 아버지를 죽이러 나선 사도세자, 아버지를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그의 발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멈춘다. 아버지가 그를 상대할 만큼 힘이 세거나 무기를 잘 다루지도 못하는데, 젊은 사도세자가 늙은 왕을 죽이러 나섰다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그로 인해 자신이 죽음을 당할 판인데 그는 멈춘다.

 

그런데 왜? 영화는 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중에야 알려준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과 함께 있었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즉 영조의 아내가 비극을 그렇게 막았다. 사도세자의 아내 역시 그것을 도왔다. 세손을 살리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선택이었다. 사도세자는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칼을 놓고 반역자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영조는 좋은 일이 있으면 만안문으로 들어온다. 반대로 흉한 일이면 경안문으로 든다. 그런 식으로 영조는 사랑과 미움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처소에 들기 전 물을 떠오게 하여 귀를 씻는다. 그런 날이면 미운 사람을 불러 놓고 한 마디 한다. “가 봐!” 그리고는 처소에 든다.

 

영조에 대하여 세자비에게 설명한 이 문장들이 사사건건에 암시들이다. 이 조항에 사도세자가 하나씩 걸려든다. 사도세자가 반역을 시도했다가 결국 실패한 그 날, 영조는 경안문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사도세자는 아버지에게 불려가야 한다. 아니 왕에게 불려가야 한다. 두렵다. 아버지가 두렵다. 해서 사도세자는 "세손이라도 데려가 볼까?" 죽음이 두려우니 그 말을 한다. 하지만 세자비는 반대한다. "남편보다 자식이 먼저라, 자네 무섭구료."

 

 

765556982_F9nCEecm_ff457b17f495219ea9cc3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칼을 던져준다.

 

"자결하라!"

 

사도세자가 자결하려 칼을 든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만류한다. 죽으려 하나 더는 죽을 수도 없다. 영조가 다시 뒤주를 가져오라고 신하들에게 명한다. 뒤주로 사도세자가 자진해서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뒤주에 못을 못 박는다. 그러자 영조가 손수 못을 박는다.

 

아버지 심정이라면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 같을 것이고, 이미지대로 지독한 왕이라면, 그가 내세우는 300년 종사를 지키기 위해 아무 감정 없이 냉혹한 심정으로 못을 박았으리라.

 

그렇게 뒤주 속 첫날이 시작이다.

 

돌이켜보면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자라면서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났다. 게다가 영조는 공부만 할 줄 알았는데, 사도세자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녔다. 그러니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따를 수 없었다. 그만큼 영조는 너무 완벽했다. 그러니까 세자는 영조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아버지를 점점 원망했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애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를 유지하느니라."

 

 

765556982_cPy3DdEm_861738599c2fadf0fb28f 

 

 

 

 

완벽을 추구하는 영조는 인간적이며, 사리분별이 뛰어난 아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열등감일까? 영조는 한 번도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적이 없다. 그저 왕일뿐이다. 아버지가 아닌 비정한 왕으로만 사는 왕, 사도세자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사도세자는 세자이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아주 쌀쌀맞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라는 사도세자의 말처럼 말이다.

 

아니면 그와 반대로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 파에톤 콤플렉스일까? 완벽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에게서 나타나는 콤플렉스 말이다. 아버지를 넘어서려고 아버지보다 나은 일을 벌이려다 실패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버지를 넘어설 수 없으니 되는 대로 살아가는 아들의 심리 말이다. 이를테면 사생아로 자란 파에톤은 아버지인 태양신을 찾아갔다가 아버지가 운전하는 태양마차를 운전하려다 아버지 말을 따르지 못하고 하늘 높이 오르거나 너무 낮게 대지에 붙었다가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추락하여 죽고 만 데서 따온 심리학 이론, 사도세자는 아버지 앞에서 그만 죽는다.

 

“빗나간 화살은 얼마나 자유로우냐!” 그 말을 남기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