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9- 사도,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의 의미
-3- 허공으로 날려 보낸 화살의 의미/ 최복현
어쩌면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다 보니 수를 잘못 둔 것은 아닐까?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을 주면 제대로 타격을 못하는 것처럼, 투수가 욕심을 내면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것처럼, 이 영화의 옥의 티라면 길이를 늘인 것일 게다. 아쉽다. 거기서 끝났으면 아직도 긴 여운이 내게 남아 있을 텐데. 물론 그럼에도 이 영화는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 암시를 주고, 그 암시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거나, 결과를 먼저 보여주었으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원인을 설명해준다. 타당성이나 구성을 아주 꼼꼼히 챙겼다는 의미다.
참 여운이 남게 잘 만들었구나 하면서 영화가 끝났구나 하는 순간, 아주 완벽한 결말이구나 싶은 순간, 이어지는 결말은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린다. 영조가 뒤주 쪽으로 걸어 나오며, 아들에게 말하고, 아들은 대답한다. 하지만 이건 실제 대화가 아닌 설정이다. 이심전심으로 부자가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를 연출한다. 아들과 아버지의 멀고도 멀었던 날들, 그래서 서로 아프고 아팠던 긴 시간들, 이제 서로 이해하면서 한 사람은 저승으로 떠나고, 한 사람은 비록 왕이지만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갈 것 듯한 느낌, 영화는 이렇게 마무린 줄 알았다. 만일 영화가 여기서, 딱 거기서 끝났다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냉혹한 왕으로 돌아간 그는 아들이 죽은 날, 개선가를 부르며 경희궁으로 환궁을 명한다. "독하네, 자식 죽이고 개선가라니!" 라는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여덟째 날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감독이 정말 하고 싶은 말, 이 영화의 주제가 완성되는 건 여덟째 날이다.
여덟째 날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思悼世子)라 하라” 아들의 죽음을 직접 확인한 영조는 회한의 시호를 내린다. 어른이 된 정조, 왕이 된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어주고 춤을 춘다. 흑룡부채를 들고 부채춤을 춘다. 사도세자가 허공으로 날려 보내던 활을 쏘던 시늉을 하는 부채춤. 거기에 진한 의미를 부여한 감독의 의도, 어쩌면 그 허공으로 날려 보낸 화살이 감독이 의도한 주제일 터이다.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이제 다리 쭉 펴고 편히 주무소서."
그랬다. 이 영화는 일곱째 날, 영조가 결국 죽은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다. 비정하기만 했던 아버지, 아니 아버지라기보다 그저 왕으로만 있던, 300년 종사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던 왕이 드디어 아버지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는 여덟째 날로 넘어왔다. 그리고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이미 어른이 되어 왕좌에 오른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에 춤을 추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대부분 관객들이 감성적으로 부자간의 갈등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감독은 그 이상에 의도를 두었던 것 같다. 아들 앞에서 화살을 허공으로 날려 보낸 사도세자의 마음, 세자와 달리 세손은 공부를 즐긴다. 그런 자기 아들 앞에서 활을 쏜다. 그가 쏘는 화살들은 목표에 백발백중이다. 그러다 그가 일부러 허공으로 멀리 화살을 날린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그 화살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원하는 모습이리라. 이 암시를 결과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늘렸을 수도 있을 터.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고, 공부가 있는 것이다."
인간적이었던 사도세자, 그는 왕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사람을 앞세우며 살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관계지향적인 그가 살아내기엔 너무 버거운 세상이다. 왕이기보다 한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그는 목표물에 꽂히는 화살이기보다 허공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반면 영조는 오직 목표만을 향해 산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표다. 목표지향적인 인간형이다. 목표를 위해서는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 버릴 수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의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왕과 인간, 인간이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 사람과 관습에 얽매이고 300년 종사를 지키기에 모든 걸 건 두 사람의 조화는 불가능하다.
하여 영화는 우리가 기대한 대로, 관객들이 좋아할 영화보다는 감독이 원래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향해 영화를 연장한 것 같다. 결국 감독은 허공으로 날려보낸 화살에 자신의 영화의 의도를 담아냈다.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에서 춤을 추면서 보내는 춤사위, '허공으로 날려보낸 화살'의 의미, 감독은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살아서는 얻지 못한 인간다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처럼 자유로운 영혼, 사도세자에 그 의지를 담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 모두는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고, 그렇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렇게 보면 우리 관객은 인간다운 결말로 끝나기를 바랐고, 그럼에도 감독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목표를 지향했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든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