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25- 연평해전, 미안한 진실

영광도서 0 1,616

대한민국! 목이 쉬도록 신나게, 목 놓아 흥에 겨워 불렀던 그 이름, 2002년 한일 월드컵, 우리가 그토록 흥에 겨울 때 한편에선 처절하게 국경을 사수하다 죽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연평해전, 그런데 우리가 처음 접한 이름은 서해교전이었다. 2002년 6월 29일 그날은 마침 대한민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전이 열린 날이다. 그런데 오전 10시경 서해 연평도에서 누구도 예상 못한 남북 간 전투가 벌어진다. 북한의 등산곶 684호가 연평 앞바다를 침범한다. 우리 해군함정 참수리 357호 고속정이 기습을 당한다. 조금 전까지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함정에서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팀의 경기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병사들이었는데, 북에서 기습적으로 우리 함정에 함포 공격을 한 것이다. 상호간 치열한 30여 분간의 격전, 전투는 끝난다. 안타깝게도 우리 해군 병사 20여 명이 목숨을 잃는다.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침몰한다.

 

 

765556982_k02O7Xhu_b9bb005697808e0342d81 

 

 

 

 

위 내용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처음엔 서해교전이었으나 나중에 이 사건은 연평해전으로 격상한다. 그래서 <연평해전>은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벌써 16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엊그제 일어난 사건인 것 같다. “이 전투로 인해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이 영화를 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애정과 사랑, 관심을 우리가 다 같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라는 김학순 감독의 말처럼 영화 <연평해전>은 잊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 국민이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지금은 남북화해 무드가 일어나고 있긴 하다. 돌아보면 아직 확실하게 믿음은 안 간다. 안타까운 건 북과 남은 화해무드인데, 우리 내부에선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남남은 갈등하고, 남북은 화해무드, 잘 이해 안 되는 그림이 그려지는 중이다.

 

 

765556982_PWe3oUc2_4ab0b2a03148eda41ef1d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이 영화, 처음엔 그랬다. 보나마나 뻔한 영화 본들 무슨 재미가 있을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망설이다 그래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봤다.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고 판단할 영화다. 여기엔 정치가 없다. 그냥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것뿐이다.

 

아프고 미안했다. 월드컵의 환호, 그렇게 호된 전투가 벌어졌는데,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는데, 교전을 벌인 시간만도 31분이었는데, 그 외의 대치시간까지 합하면 그 긴박한 시간은 엄청 길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월드컵을 즐겼다.

 

감추어야만 했던 상황이었을까? 텔레비전에서는 모든 방송이 월드컵 실황을 중계한 그 시간, 참수리호의 병사들은 그들만의 외로운 전쟁을 겪는다. 중계실황 화면 아래에 그저 속보라는 이름으로 교전 소식이 자막에 뜬다. 아주 대단한 사건이 그렇게 무심하게 짧은 알림 그뿐이다. 월드컵 실황을 중단하고 전투상황에 초점을 맞춘 방송은 없었다. 무엇이 중요했을까? 월드컵이었을까? 해전이 중요했을까? 그것을 감춘 덕분에 월드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765556982_HUXisJpm_faf4a40580979f4c5b80a 

 

 

 

 

그러고도 우리는 너무 몰랐다. 그때 연평 바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매스컴으로 결과만 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알았다.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었는지, 얼마나 비참한 전쟁이 벌어졌는지, 영화 <연평해전>을 보기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보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만, 그걸 포함해서 그때 전사한 병사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너무 소홀했다는 점이다. 그들을 위한 보상? 할 말이 없다. 그들은 소수라서, 목소리 큰 사람이 적어서, 편들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까, 나라를 지키다 그들은 헐값으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그들도 누군가에겐 둘도 없이 소중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그리고 죽거나 부상당했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말을 잃었다.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살았어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무엇 하나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고도 목소리를 죽이며 살아왔다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지금도 미안하다. 이런 게 대한민국이란 게.

 

 

765556982_5ycqwK7a_0a21ca785f7bb86ea0bb6 

 

 

 

 

박동혁, 그는 살아남아 84일을 버티다 결국 전사한다. 죽어간 아들, 결국 죽은 아들에게 달려들어 심폐소생을 하겠다며 산소호흡기를 들고 놓지 않는 동혁 엄마의 모습이 처연하다. 그의 어머니는 말 못하는 이다. 아마도 설정일 게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아 말을 잃은 연평해전 전사들의 부모들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월드컵에 가려지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연평해전을 위한 기념식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765556982_kor8VvcI_05c9c9df721210887e6ea

 

 

 

윤영하, 어떻게 북의 전함에 대적하여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하는, 그래서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그는 결국 현장에서 전사한다. 그의 장례절차가 끝나고 그가 남긴 건 해군제복이다. 모자에서 부터 상의, 하의까지 나란히 걸려 있는 그의 제복, 그의 아버지가 전사한 아들 대신 그 제복을 끌어안고 오열한다. 빈 제복을 끌어안고 참고 참았던 슬픔을 못이긴 그의 아버지의 북받치는 오열, 정말 그 제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올 것 같은 아들의 모습을 기대라도 하는 듯 애절하다.

 

원래 손에 이상이 있어서 조타를 잡을 수 없었던 한상국,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픈 손, 부상당한 손을 거기에 묶고 버티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침몰한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47일 만에 시체로 변해 세상으로 나온다.

 

우리가 신나서 대한민국, 그 이름 외칠 때 저 젊은이들은 철저하게 나라의 외면을 당한 채, 아무런 후속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그들만 피를 흘리다 죽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대한민국을 삼키며 떠났으리라. 한쪽은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선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부를 수 없어 속으로 삼키며 죽어갔다.

 

 

765556982_5K3pLFdf_3289c0d436da23cdcf3fd 

 

 

 

 

영화가 끝나고 막이 내린다. 엔딩이 이어진다. 전사한 병사들을 보내고 살아남은 병사들과의 인터뷰다. 그리고 전사한 이들의 생전의 모습과 그들의 이력이 이어진다, 그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영화가 완전히 끝나고도 자막이 다 내려가고도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모두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 역시 병사들에게 미안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냅다 대한민국만 외쳤으니까. 미안해서 일어설 수 없었다. 청소를 하는 젊은이들이 들어오고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교전, 누가 만들어낸 교전인가, 패전, 누구 때문에 당한 패전인가, 승전, 누구를 위한 승전인가. 그나마 이제는 서해교전이라 하지 않고 연평해전이라 부른다. 순직한, 이를테면 근무하다 죽었다는 칭호에서 전사, 전쟁에서 죽었다는 전사로 바뀐단다. 그게 그토록 어려운 거였나.

 

약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정말 말로만 국민을 내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려는 정치가 이 땅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제 입맛에 맞게 국민을 이용하고, 입맛에 따라 무엇은 감추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였으면 좋겠다. 네 편 내 편 따로 있는 게 아닌, 모두가 우리 편인 정치였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 네 편 내 편 나누지 말고 우리라도 우리 속에서 정치란 이름을 지웠으면 싶다. 모든 것을 정치라는 이름을 덮지 않는, 그냥 사람살이의 정치면 좋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