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26- 간신, 왕 위의 왕, 간신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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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한 마디로 야하다. 19금이다. 성인물 좋아하는 이들은 볼만하다. 너무 볼거리에 치중하다 보니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를테면 간신에 초점을 맞출까, 채홍에 초점을 맞출까,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맞출까, 두 남 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초점을 맞출까, 권력 다툼에 맞출까, 너무 여러 가지 줄기에 왔다 갔다 하려니 큰 줄기 하나쯤 제대로 잡는 데는 실패한 영화 같다.

 

"작은 소인은 숭재요, 큰 소인은 사홍이라.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 " 이란 말이 돌 만큼1505년, 연산군은 채홍사를 파견해 팔도의 미녀를 강제로 징발하고 그 수가 1만이 넘었다 하니, 그로 인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간신>의 모티브가 된 기록이다.

 

간신과 채홍, 채홍이란 카드다. 채홍은 빨간 색을 뽑는다는 의미다. 즉 빨간 색을 상징하는 미녀를 징발한다는 의미로 오직 왕에게 바칠 미녀를 뽑아간다는 것이다. 간신은 연산군 11년,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하려 했던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에 참여한 무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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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중의 간신 임승재는 카드를 제대로 뽑는다. 한때 권력에서 내쳐진 임승재 부자는 권력에 눈이 어두워 흉계를 꾸민다. 김일손 일파에 의하여 권력에서 멀어진 그들이 이제 연산군이 권좌에 오르자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한다. 세상의 주인이 바뀌자 어제의 충신은 역적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패가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자리에 임승재 무리가 대신 들어앉은 것이다.

 

그들은 오늘의 충신이다. 그들은 비록 내일은 간신일지라도 권력의 중심을 맴돈다. 이렇게 얻은 기회를 최대한 이용한다. 혹여나 이들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없애야 한다. 권력은 피와 피가 넘쳐흐르는 곳이니까. 정적을 확실히 제거하고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쌓는다. 그래서 임숭재의 아버지는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다. 피로 얼룩진 적삼을 하나 구하여 연산군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연산군의 어머니가 비참하게 죽었다고 부추긴다. 미친놈을 더 미치게 만들기이다. 그들의 계략대로 미친 연산군은 간신들이 찍은 자들은 부관참시 당한다.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한다. 칼날에 광기가 맺히고 욕망과 적개심이 맺힌다. 그러면 그럴수록 연산군의 광기는 더 살아난다.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연산군에겐 오직 약이 있다면 환락의 늪이다. 온갖 쾌락을 만들어 내는데 골몰하는 연산군, 연산군의 속내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는 임숭재, 연산군은 간신 임숭재를 채홍사로 임명한다. 그러자 임승재는 조선 각지의 미녀를 강제로 징집한다. 이를 기회로 삼아 천하를 얻기 위한 계략을 세운 것이다. 그는 양반집 자제와 부녀자, 천민까지 가릴 것 없이 잡아들인다.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그럼에도 임숭재 부자는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원한이 있는 정적의 명단을 작성한다. 그리고는 거기 적힌 정적의 딸들을 채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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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네가 얘기하는 간신이 무엇이더냐"라는 아버지 임사홍의 물음에 임숭재는 "강한 놈은 적고 약한 놈은 적히는 것이지요. 우리를 소인이라 칭했던 놈들 모두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조금만 미모가 뛰어난 듯하면 그들은 모두 뽑아 올리기 바쁘다. 반면 당하는 백성은 딸들을 숨기기에 바쁘다. 아직 권력이 있는 자는 자기 딸을 보내지 않으려고 대신 돈으로 사서 보내기도 한다.

 

채홍사에 의해 궁에 입궐한 1만 명의 여인들, 이들을 운평이라 칭한다. 이들은 왕을 즐겁게 해줄 가무뿐만 아니라 잠자리에서 왕을 모시기 위한 기술 또한 배운다. 신체검사부터 체력 단련에 이르기까지 수 만 가지의 방중술을 익힌다. 폭군으로부터 총애를 얻어 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왕을 완전히 녹일 수 있어야 한다. 하룻밤의 꽃이다 피로 지는 꽃이 되지 않으려면. 또는 이 참에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고 수련에 임해야 한다.

 

그렇게 채홍 당한 여인들 중에서 임숭재가 찍은 여인 단희, 임승재는 그녀에게 왠지 마음이 간다. 이상하게 왕에게 바칠 여인이지만 왠지 마음이 끌린다. 단희의 정체는 뭐지? 분명 돼지나 잡는 백정의 딸인데, 범상치 않다. 칼춤하며, 의연한 몸짓하며, 행동거지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정체를 숨기고 대감집 딸인 양 채홍에 임한다. 이미 그것을 눈치 챈 임숭재는 그녀를 집중 훈련한다. 왕을 완전히 녹여낼 여인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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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재와 임사홍 부자는 왕을 홀리기 위해 뛰어난 미색을 갖춘 단희를 간택해 직접 수련하기 시작한다.  "대물을 한 번에 감싸 쥘 큰 입에, 희고 고운 치열, 명주 같은 검은 머리칼, 묘목이 솟듯 가는 발목, 비단 같은 살결, 후끈한 체온에, 살집은 넉넉하고, 뼈는 대쪽처럼 가는 여인이 제일이니라."

 

임숭재 부자에게 권력을 뺏길까 전전긍긍하던 희대의 요부 장녹수는 조선 최고의 명기 설중매를 불러들여 단희를 견제할 희대의 요부를 택한다. 조선 최고의 명기인 설중매다. "단 하루에 천년의 쾌락을 준비하겠나이다." 라고 호언한 임숭재는 단희를 그 주연으로 키우려 한다. "왕을 다스릴 힘이 내 손안에 있습니다! 내가 바로 왕 위의 왕이란 말입니다!"라며, 그는 누구보다 연산군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오직 쾌락으로 연산군을 쥐락펴락하려 한다.

 

반면 장녹수는 임숭재와 달리 연산군을 다룬다. 잠자리에서는 연인이지만, 요부지만, 연산군이 제 정신으로 괴로워할 때는 어린 아이를 다루듯 엄마로 행세한다. 그녀는 마더 부재 콤플렉스를 이용한다. 권력을 쥐려는 욕망은 같으면서도 왕을 다루는 방식은 서로 반대다. 그녀 역시 왕을 쥐락펴락하기 위한 병기를 마련한다. 설중매라는 아이를 훈련하여 왕의 총애를 받게하여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양쪽은 왕을 환락의 늪에 빠뜨리는 대신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하기 위한 물밑 작전을 세운다. 둘의 목표는 자기 사람을 운평의 자리에 심어놓으려는 심산이다. 이들의 팽팽한 경쟁 속에 단 한 명의 운평의 자리는 누가 차지할까? 임숭재가 훈련하는 단희일까? 장녹수가 훈련하는 설중매일까? 누가 싸도 그것을 잘 받아내는 것이 교접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설중매, 진정한 교접은 한 인간의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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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숭재는 직접 단희를 훈련한다. 몸은 뜨거워도 마음은 차가워야 한다. 몸은 뜨거워도 마음은 찬 얼음덩이요. 지금 가진 것을 진정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녀 또한 임숭재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는 이제라도 그가 간신 짓을 그만두기를 원한다. 그렇게 서로가 원수이면서 애정을 키워가려니 몸은 달아올라도 마음은 얼음덩이다. 어느 누가 미치지 않고 이 난세를 살 수 있겠느냐며 기어이 죽기를 다지는 단희,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여기서 살아나가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단희는 바로 역적의 누명을 쓰고 멸문을 당한 김일손의 여식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원수인 것, 그 비밀을 알면서도 임숭재는 그녀를 사랑한다. 때문에 임숭재는 단희를 왕에게 보내기 싫다. 그 길의 마지막은 죽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그는 그녀의 의도가 왕을 죽이기 위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공개할 수도 없다.

 

결국 최고의 운평의 자리는 단희의 몫이 된다. 운평의 자리에 올랐으니 잠자리에서 연산군을 모실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왕이 죽거나 그녀가 죽거나이다. 드디어 연산군과의 단희의 첫날밤, 연산군, 그가 복수에 칼을 가는 단희를 품기 직전, 단희는 단검을 뽑아든다. "왕은 못 돼도 제발 인간은 되시오."라며 칼을 빼어든 그녀,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끝난다. 왕의 호위대장이 달려들어 그녀를 제압한 것이다. 그녀는 감옥에 갇힌다. 이제 왕의 눈총을 받게 된 임숭재. 그는 왕에게 단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연산군은 임숭재에게 충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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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이란 왕이 잘못을 저지를 때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충신은 없고 충견만 있어. 그렇다고 주인은 주인을 물었던 개를 바로 죽이지는 않아. 내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갖다 바친 간신, 정인을 갖다 바친 간신, 이제는 정인을 죽여 피로 충견 노릇을 하면 살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 임숭재. 그는 왕을 달래기 위해 그녀의 피를 받아오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그녀가 갇힌 감옥으로 가서 그녀를 죽이고 피를 묻혀 왕에게 바친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연극, 그녀를 살려서 내보내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그는 그녀를 죽은 것처럼 꾸며 궁 밖으로 내 보낸다.

 

왕을 제거하려는 반란군이 들이닥친다. 미리 짐작한 임숭재는 왕을 위협하여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왕을 가둔다. 바로 돼지우리다. 그는 비록 간신이지만 왕에겐 충견이기 때문에 왕을 살리려는 것이다. 그는 왕을 돼지우리에 숨기려 하면서 왕을 위협한다. "사람 잡는 백정은 여기 있어도, 왕이 어디 있느냐?"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연산군은 그를 위협하다가 결국 그에게 목숨만을 구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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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이 왕의 전으로 들어왔을 때엔 왕은 없고 임숭재가 왕의 옷을 입고 있다. 단희가 왕의 침실로 들어온다. 단희를 죽이려는 임숭재의 아버지를 임숭재가 막아선다. 아버지가 단희를 죽이려고 내민 칼을 대신 받고 쓰러지면서 임숭재는 "아버지와 같은 피로 더러워져 있는 몸이, 간신으로 살아온 우리가 왕과 뭐가 다릅니까? 할 바를 다할 뿐입니다. 권세는 잡아도 없는 것입니다. 난세를 만든 죄, 지금의 임금의 죄, 아비의 눈을 멀게 만든 죄 다 안고 가겠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반란군을 이끌고 온 친구에게 그는 "사내로서 왕을 쥐락펴락 했는데 뭐 더 여한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고 쓰러진다. 그는 죽은 것일까? 왕은 폐위 당하고 새로운 왕이 등극한다. 그리고 반정을 이끈 공신들, 그들이 간신으로 등극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임숭재는 시장을 떠돌며 칼춤을 추며 천민으로 살아간다. 그가 칼춤을 추고 있는 마당을 단희가 쓰개를 쓰고 훔쳐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러브 스토리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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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은 자신의 흥함을 위하여 나라 하나쯤 말아먹는 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간신이 되려면 왕 하나쯤은 쥐락펴락할 줄 알아야 한다. 왕의 심리를 잘 알아서 맞춰주고 정신없이 흔들어서 제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연락에 젖어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듣게 한다. 그러면 판단이 흐려진 군주,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군주, 그러면 주위엔 간신이 득실거린다. 간신의 득세, 그건 간신보다 왕의 처신이 문제이다. 정신 줄을 놓고 똥오줌 못 가리는 무능한 군주가 문제다.

 

무능한 군주 만들기, 우선 잔뜩 원한을 품게 만든다.. 그러면 그 원한에 사로잡힌 군주는 다른 데는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 다음엔 더 몰아쳐서 자신의 무능으로 그 원한을 풀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잊으려 군주는 그걸 잊으려 발악한다. 그런 것을 잊게 하는 가장 좋은 약은 환락이다. 여인네의 품에 안기든 여인네의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든 거기 빠지면 다른 게 안 보인다. 음문이란 정력 있는 사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천상굴과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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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접은 한 남자를 치유하는 것이라던 단희의 말처럼, 평생을 간신으로 살면서 칼날에 수많은 피, 원한의 피를 묻히며 살아온 한 남자, 폭군 왕을 쥐락펴락하며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냉혈한이었던 임승재를 단희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진정한 사랑의 힘은 강하다. 물론 그 막나간 한 사람 때문에 희생은 너무 크다. 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갖거나 가시를 품고 있느니, 미인은 복수를 위해 아름다움 속에 검을 품는다. 꽃이 아름다울수록 독은 더 짙고, 여인이 아름다울수록 칼날은 더 예리하니, 그 칼날을 무디게 하는 데에는 진정한 사랑밖에 더 있으랴. 왕도 사내요, 간신도 사내는 사내라, 색에 취하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으며, 가끔은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내가 또 있으랴.

 

그래 아무리 바랄 잘 날 없어도 피바람보다는 치맛바람이 나은 법이다. 먼저 흥분하면 지는 것, 아무리 흥분이 되어도 참아야 이기는 것, 그럼에도 아주 흥분하지 않으면 그 또한 지는 것, 먼저 실신하지는 말 것이라. 시대는 갔어도 권력의 주위엔 늘 간신이 있게 마련이다. 겉보기엔 충신으로 분하여 좋은 말 골라하여 듣기 좋게 만들고, 친구인 양, 충신인 양 한다. 그러면 권력은 눈멀고 귀멀고, 데신 백성은 점차 도탄에 빠진다. 진정한 충신, 권력자의 귀에 바른말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기를 불사 않는, 감옥에 가기를 마다 않는 충신, 그런 충신은 얼마나 될까, 지금도 권력에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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