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34- 쎄시봉,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나

영광도서 0 1,655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히 남아 있는 저 웨딩케익 그 누가 두고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여기까지는 조금 덜 슬프다 치자.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쯤이면 사랑을 잃은 사람의 절절한 마음이 배어나와 많이 슬프다.

 

쎄시봉, 영화의 마지막 엔딩곡이다. 사랑의 슬픔을 보여주는 영화일 듯도 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상의 이름들이 아니라 실제 인물들이라서 다큐멘터리 영화일 듯싶고, 인물들이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수들이라 음악 영화이건 뮤지컬 영화일 듯도 싶은 영화, 흥미를 갖게 할 요소는 많은 영화였다. 쎄시봉은 불어로 C'est si bon이다. 참 좋다, 그런 뜻이다. 영어로 It is very good이니까. 낯익은 이름들이 영화 속으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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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의 열풍을 일으킨 자유로운 이단아 조영남, 한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스트 이장희, 달콤한 목소리의 주인공 윤형주, 저 푸른 초원위에 딱 어울릴 기타리스트 송창식, 이들을 배출한 음악감상실이 있었더란다. ‘쎄시봉’이다. 젊음이 일렁이는 거리, 이름이 딱 어울리는 무교동 거리 중 가장 뜨거운 장소였더란다. ‘마성의 미성’ 윤형주, ‘타고난 음악천재’ 송창식이 평생의 라이벌로 처음 만난다.

 

‘쎄시봉’ 운영자 김사장은 이들을 가수로 데뷔 시키려고 트리오로 구성하기를 제안한다. 이장희는 자칭 ‘쎄시봉’의 전속 프로듀서다. 어느 날 우연히 이장희는 중저음의 주인공 오근태를 만나 그의 목소리에 끌린다. 그러면서 윤형주와 송창식 둘의 빈틈을 채워줄 ‘숨은 원석’임을 직감한다. 그런데 오근태는 기타 코드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일명 ‘통영촌놈’이다. 오근태는 이장희의 꼬임에 얼떨결에 ‘트리오 쎄시봉’의 멤버로 합류한다. 그리고 그 모임에 합류하면서 당시에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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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룰 만큼 천재적인 그들, 미성으로 노래하는 윤형주, 걸걸한 막걸리처럼 구수한 송창식, 그러나 오근태는 그들에겐 실력이 아주 부족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셋이서 한 여자를 찍는다. 민자영, 그녀가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셋 중 가장 어눌한 오근태, 그는 이장희가 만든 곡을 마치 자신이 만든 곡인 양 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오근태는 천재가 아니다. 평범한 싱어다. 그럼에도 그를 위로하는 건 "진짜 잘하는 건 표 나지 않게 잘하는 것"이란 김사장의 말이다. 그 말처럼 그는 셋 중에 멋지게 민자영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평생 널 위해 노래할게" 그 말로.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민자영은 그를 떠난다. 그녀가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쎄시봉에서 그녀에게 노래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의 주일학교 시절의 오빠다. 오근태는 그날 완전히 달라진다. 이장희의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그녀가 시골까지 찾아와 같이 잠을 잘 때까지는 좋았으나 모든 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잔인하게 깨어졌다. 그는 평생 그녀를 위해 노래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노래를 접었다. 사랑이 그를 노래하게 했지만 사랑이 그로 하여금 노래를 멈추게 했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져 있다. 꿈이었을까? 꿈에서 깨어나자 내가 노래 부를 의미가 사라졌어."

 

원래 김사장은 이들 3인조를 묶어 쎄시봉 트리오로 만들려 했는데, 그 사건 때문에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하기로 한 오근태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근태는 그렇게 어디론가 잠수를 탔다. 할 수 없이 급하게 이름을 바꿔 트윈 폴리오로 이름을 바꿔 윤형주와 송창식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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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전성시대도 잠시 이들 모두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줄줄이 철창행이다. 급기야 쎄시봉은 폐업을 한다. 이렇게 쎄시봉은 가요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와 함께 우리 가요사도 텅 빈 공백을 경험한다.

 

그리고 20년 후, 미국에서의 극적인 조우로 밝혀진 건, 보다 확실해진 건 오근태가 쎄시봉 멤버를 대마초로 함께 엮어 들어가게 했던 것만 확인한다. 첫사랑에 실패한 오근태가 군대에 들어갈 때 뭔가 사회적 이슈를 만들려 한 국가권력이 타깃으로 삼은 쎄시봉 멤버들을 대마초 사건으로 엮은 것이다. 오근태도 군대에서 그 혐의를 받았는데, 그는 우연히 대마초 의심 명단에서 자신의 첫사랑 민자영의 이름을 읽는다. 그는 민자영 그녀를 살리기 위해 친구들을 줄줄이 엮어 주었던 것이다.

 

"왜 그랬어? 왜 왜."

 

눈물의 웨딩 케이크의 가사만 남기고 그 시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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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쎄시봉의 시대의 이야기일까, 어쩌면 뮤지컬 영화일까, 아니면 음악이 주를 이루는 경쾌한 영화일지도 몰라, 이러 저러한 호기심이 이 영화를 보도록 마음을 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다가 절반 넘어서면 이게 뭐지 싶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하기에도 못 이른 삼분의 일의 성공이다. 단지 그 시대에 대한 궁금증 그게 전부다.

 

시작은 좋은 용두사미격인 영화라고 할까, 러브스토리도 언뜻 나온다만 짠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그저 투정만 나오다 만다. 너무 폭넓게 다루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려면 좀 더 개인 개인의 마음깊이 파고들어야 하는데 펼친 판만 엄청 넓다. 러브스토리는 양념인지 주재료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중심을 못 잡는다. 그러니 집중이 안 된다. 소재는 좋으나 디테일의 부족, 영화의 주제의식이랄까, 이를테면 철학이랄까, 그런 것이 없어서 많이 아쉽다.

 

"한국 포크 음악계의 전설이 된 ‘트윈 폴리오’에 제 3의 멤버가 있었다?!" 궁금증을 제대로 주었으나 그걸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하나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다큐멘터리로 확실하게 그리든, 픽션으로 그리려면 픽션으로 가야 하는데 어중간한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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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주기 위해 로맨스를 살짝 입히긴 했다. 사랑이란 뭘까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새월은 흐른다. 그들의 세월도 흘러갔다.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아픔이기도 했던 그 지독한 사랑이 가요사를 바꾸기도 했을 터다.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그리고 엔딩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이 대사가 오히려 쓸쓸하다.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굴러다니는 낙엽들처럼 스토리가 산만하다. 이것도 살리고 저것도 살리고 그러려다 보니 영화에 포인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무엇 하나에 집중하여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니면 뮤지컬 영화로 만들었으면 대박이었을 터다. 대박도 아니고 쪽박도 아니고,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윤형주도 아니고 송창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리오의 숨은 비화도 아니고, 참 어정쩡하고 어중간한 영화다. 여러 마리 고기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엔딩 대사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가 본전 생각을 잊게 한다면 그렇다 치자. 기대가 큰 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라고 위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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