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1- 집으로 가는 길, 사람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사람이 되는 아름다움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색깔, 붉은 색이 잘 어울린다. 그 붉은 색이 가을 풍경과는 물론 겨울 풍경, 봄 풍경과 잘 어울린다. 붉은 배색이 무엇에든 잘 어울린다. 모든 것들이, 모든 풍경들이, 모든 사람들이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참 아름다운 영화다. 풍경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예술 같은 영화다 풍경에 인생이 담기고 거기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다. 아름다운 풍경처럼 사람들의 인정이 채색되고, 아름다운 사랑이 풍경이 된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시간과 기다림,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한다. 시간이 사람들을 닮아 아름다워지고, 사람들이 풍경을 닮아 아름다워진다. 여기 안에 모인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다. 영화가 한 폭의 풍경화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참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는 공간이동을 멀리 잡지 않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보면 닫힌 공간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평화롭다. 감옥 같은 느낌도, 저 세계를 떠나 멀리 나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저 공간에 머무는 것 자체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기다림의 미학, 밖으로 부터 새로움이 찾아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그 기다림을 미덕으로 삼아 살아도 좋을 듯하다. 그러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세계 밖을 내다본다. 그러면서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수필 같은 사건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내레이터는 주인공의 아들이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위셩은 평생을 산골 마을의 유일한 선생님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집으로 향한다. 위셩은 이젠 아무도 따르지 않는 전통 장례를 고집하는 어머니를 보며 부모의 첫 만남을 회상한다.
40년 전 위셩의 어머니 쟈오 디, 붉은 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이 마을로 부임한 젊은 선생님 창위에게 첫 눈에 반한다. 쟈오 디는 창위가 지나다니는 길가를 서성이며 그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여자들은 공사현장에 갈 수도 없다. 재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멀리서 밥이나 해대며 지켜보아야 한다.
새로운 학교를 짓는 현장, 그 현장에는 새로 부임한 선생, 동네 밖에서 들어온 선생, 그 선생을 보자 동네 처녀들 모두 관심을 갖는다. 특히 그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오 디가 무척이나 창위 선생을 깊이 짝사랑한다. 하여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서 도시락을 배달한다. 물론 그 도시락을 그 선생이 먹으리란 보장은 없다. 동네 처녀들이 준비한 도시락은 한꺼번에 공사현장으로 배달되어 누군가가 먹으니까. 다만 그녀는 자기가 정성들여 싼 도시락을 창 선생이 골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히 선생님이 제일 먼저 도시락을 선택해야 한다니 가능성은 높을 거라 위안한다.
학교가 지어지는 동안 그 일은 반복되고 마을의 풍경도 변한다.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의 가을의 풍경화, 아늑하게 펼쳐지는 곱디고운 평평한 논이며 밭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렇게 계절이 곱게 익어가는 것처럼 자오 디의 사랑도 익어간다. 하지만 선생은 자오 디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자오 디는 일부러 학교가 잘 보이는 곳까지 물을 푸러 다닌다. 어쩌다 선생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만날 듯이 만날 듯이 만나지지 않는 안타까움, 그런 속에서도 계절은 가을을 물들이고 겨울로 간다. 그럴수록 그녀의 사랑도 점점 무르익는다.
드디어 선생과의 만남, 자오 디의 집에서 선생의 식사를 대접해야 할 당번이 된 것이다. 거기서 도시락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마음을 선생은 눈치 챈다. 하지만 얼마 후 선생은 그 사랑의 고백도 대답도 없이 마을을 떠난다. 그가 떠나는 날 그가 좋아하는 만두를 만들어 담아서 그에게 주려고 가지만 이미 선생은 출발한 후다. 저기 마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따라갈 수가 없다.
그녀가 달린다. 마차가 가는 길이 아닌 지름길로 그 아름다운 풍경의 산을 넘는다. 따라잡을 듯 하면 또 멀어진다. 다시 앞질러 가려고 다른 지름길로 죽어라 달린다. 사랑, 참을 수 없는 사랑으로 그녀는 달리고 달린다. 저기 달려가지만 마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그녀, 그만 그녀가 구른다. 만두를 담은 도시락은 내동댕이쳐진다. 그릇은 깨어지고, 만두는 쏟아진다. 이제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밖에. 주섬주섬 만두를 주워 담고, 깨진 그릇, 선생과의 사연이 담긴 그 그릇의 쪼가리를 다 담아서 집으로 오려니, 선생이 그녀에게 준 머리핀이 없다.
그녀는 머리핀을 찾아 나선다. 갔다가 돌아온 길을 되짚으며 찾기를 며칠, 드디어 머리핀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녀는 그만큼 시름시름 사랑을 앓는다. 그녀가 아파할 때 그녀의 어머니는 그릇 때우는 장수가 오자 그 그릇을 정성스럽게 때워달라고 한다. 자오 디를 위해서다. 끝내 자오 디는 선생을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다. 그녀는 용감하게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그녀는 눈보라로 몰아치는 그 속에서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그녀는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병상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 선생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글을 쓰고 셈하는 훌륭하다.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기록하자
고금을 알고 세상을 알자
1년에는 4계절이 있다
동서남북사방천리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어른을 공경하자
모든 일에는 질서가 있다
사람은 살면서 뜻을 가져야 한다
아 내용은 교과서의 내용이 아니라 창위 선생이 지어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란다. 자오 디는 이 목소리에 반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사랑한단다. 선생이 부임한 이후 학교를 배회하며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을 즐기던 그녀, 그녀가 지금 아파 누웠다가 의식이 깨어났는데, 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창위가 돌아온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아왔을 뿐, 그럼에도 사랑을 고백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정월이 되기 전에 돌아온다.”는 말과 함께 도시로 떠난 창위는 돌아올 줄 모르고 자오 디에게 남은 것은 그가 준 머리핀과 그녀가 그에게 음식을 담아주던 깨진 그릇뿐이다. 창위와 약속한 날, 그녀는 마을 어귀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남편을 여의고 그 충격으로 눈이 먼 어머니는 자오 디를 이해한다. 그녀의 사랑을, 느낌으로 안다. 눈은 멀었으나 자식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아름답다. 자식은 때가 되면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고도 늘 자식걱정만 한다는 그녀. 그녀는 자오 디를 위해 자오 디와 창위 선생의 사랑의 추억이 담긴 그릇을 정성스럽게 기워달란다. 깨어진 사랑을 기우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 사는 것이 훨씬 싸지만 의미가 담긴 물건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으니까.
그 기다림의 세월들, 그럼에도 그 기다림이 애처롭다거나 슬프지는 않다. 마을의 풍경들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풍경들이 그 슬픔을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든다. 당사자야 무척 아리고 슬프겠지만. 그렇게 3년의 기다림 후에 두 사람이 만나서 그 이후 함께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자오 디는 40년을 들어도 그 목소리를 여전히 아름답단다. 자오디, 그녀는 아들에게 전통장례를 고집한다. 자신이 기다리던 길, 창위가 도시로 갔던 길, 그리고 다시 돌아온 마찻길, 그 길로 창위의 상여를 운구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동내 밖에서 부터 학교가 훤히 보이는 공동우물 근처의 장지까지 말이다. 그렇게 하려니 돈이 제법 든다. 인부를 사야하니까. 아들은 그 일을 위해, 아름다운 부모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큰돈 5000원을 촌장에게 지불한다.
장례 행렬, 많은 이들이 줄을 선다. 창위 선생이 배출한 제자들이다. 서로가 누가 누군지 몰라도 창위 선생을 기억한다. 참 좋은 인품의 창위 선생의 부음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온 것이다. 서로 교대하며 그 추운 눈보라 속에서 운구를 한다.
장례를 마치고 촌장이 돈을 돌려준다. 인부들이 돈을 안 받겠단다.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이들의 지고지순한 사랑만큼이나 아름다운 인품으로 선생다운 선생으로 살았던 창위 선생이기에. 마을 사람들이 갹출을 하고, 그가 내놓았던 돈을 보태 마을엔 이제 새로운 신식학교가 지어진다.
호수 같은 잔잔한 마을에,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온다. 마치 우리 단편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에서처럼,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난다. 그 떠남은 사건이 되어 재회로 이어지고, 그 아름다운 사랑은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진다. 사실 우리 삶은 실제로 그러하니까.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고, 뭔가 역동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런 곳이 있다면 특별한 곳이고, 특별한 날일 것이다. 실상 세상은 습관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진다.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날들의 연속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러하다는 말이다. 다만 세상은 그러한데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들, 내적긴장이 세상을 역동적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너와 내가 바라보는 피상적인 모습은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으나 속에는 이글거리며 끓고 있는 열정이랄까, 사랑이랄까,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어 세상을 뒤집어 놓고도 남을만한 사랑이 고개를 쳐들고 있듯이. 그것이 진정한 삶의 긴장감이라고 할까.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돌 하나가 동심원을 그리는 것과 같은 파문이랄까.
우리의 실제 삶은 역동적이지 않으나 울림이 있다. 굴곡이 심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나, 그래서 그다지 긴장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마음에 일렁이는 내적 긴장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이런 우리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파고들어 가슴의 울림을 준다. 작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내는데 심혈을 다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랜 여운이 남게 만든다. 그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아니 그만의 시선, 즉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진지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이라고 해야겠다.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린 사실화라고나 할까, 마치 지난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대들의 이야기를 조금 떨어져서 추억 삼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