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3- 허삼관 매혈기, 정신적인 매혈과 걸쩍지근한 가족의 의미

영광도서 0 2,256

피는 곧 목숨이다. 그런데 매혈이라, 이 숭고한 피라는 것도 생존의 욕망 앞에서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다. 때문에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매혈은 결혼을 하거나 집을 장만하기 위한 큰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이용한 시대 상황을 담아, 1996년 중국에서 발간된 원작 <허삼관 매혈기>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물론 동남아로 진출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아메리카 대륙에 미국 등에 까지 소개되어 각 문단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재치 있는 해학이 담겼고, 문체는 경쾌하다는 평가를 받은 수준 높은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765556982_Q8dc2a7F_bda8c806f5c228d6d370b 

 

 

 

 

성안의 생사공장에 근무하는 가난한 노동자 허삼관, 허삼관은 별로 특징이 없는 면소재지 마을에 산다. 그 마을만이 특이한지, 아니면 당대의 삶이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매혈자들이 많은 곳이다. 피를 팔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이니, 매혈을 딱 잘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어떤 이유가 있을 터다. 어느 정도 그런 식으로 매혈을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를 안 팔아본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지 못한 남자로 본다. 매혈을 건강의 상징이자 결혼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다.

 

허삼관은 같은 마을 방씨와 근룡이를 따라 허접한 시골 병원에 매혈을 하러 간다. 최대한의 요령으로 이들은 일단 매혈을 많이 하려 한다. 매혈로 최대한 돈을 더 받으려 한다. 방씨가 가르쳐주는 요령에 따라 허삼관 역시 매혈하는 날 아침엔 밥을 먹지 않는 대신 피의 양을 늘리려 한다. 때문에 오줌보가 터질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신다. 매혈하러 나가는 길에 그들은 연못에서 물을 양껏 마신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화장실로 직행하여 찬물을 여덟 사발이나 마신다. 오줌이 나오려고 발광을 하지만 억지로 참고 오줌을 참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피가 많아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떻게든 피를 많이 팔아야 한다. 그 피를 많이 파는 결정은 의사의 몫이다. 한 번 매혈하면 최소한 3개월 후라야 한단다. 그렇다고 기한은 문제가 아니다. 의사를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편법으로 가급적 요령껏 최대한 매혈한다. 결정권자인 의사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은 적당한 뇌물을 준비한다. 이들이 준비하는 뇌물은 수박덩어리 정도다. 인지상정 그게 통한다. 그렇게 뇌물을 써서 이들은 한 사발 팔아야 할 피를 세 사발이나 쥐어짜서 판다. 그러고 나면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매혈 후 혈액순환을 위해서 반드시 돼지 간볶음과 황주 두 냥을 마신다.

 

 

765556982_aKtuEJw8_2cd93b876ffe6b39c0a0d 

 

 

 

 

허삼관이 처음으로 매혈을 한 까닭은 그 마을에서 제법 예쁜 허옥란을 얻기 위해서였다. “꽈배기 서시”로 소문난 허옥란과의 결혼, 피를 팔아서 허옥란의 환심을 얻고 장인에게도 환심을 얻는 허삼관은 결혼에 성공했다. 허옥란을 외동딸로 둔 허삼관의 장인은 자기 씨를 잇고자 하는 욕심이 컸다. 허삼관은 그것을 구실로 장인을 설득할 수 있었다. 자신은 종씨니까 확실한 허씨 혈통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는데, 그 설득이 장인에게 먹힌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허옥란이 사귀던 하수용은 찬밥신세가 되었고, 허삼관은 허옥란의 남편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결정은 남자인 장인이 할 수 있었으니까.

 

허옥란과 결혼한 허삼관은 일락, 이락, 삼락, 세 아들을 두고 십 년 가까이 살았다. 허삼관은 아들들 중에서 일락을 가장 사랑한다. 그런데 동네에 기분 나쁜 소문이 돈다. 큰아들 일락이 허삼관을 닮지 않고 하소용을 닮았다는 소문이다. 허삼관은 허옥란이 결혼 전에 하소용과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고 있으니 그 소문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허옥란과 하소용과의 관계를 의심한 그는 아내를 윽박질러 실토를 하라고 다그친다. 끝내 원했든 원치 않았든 하소용과 혼전관계가 있었음을 알아낸다. 이때부터 허상관의 인생은 배배틀린다. 허옥란이 밉고 장남 일락이 밉다. 그 미움은 두 사람에 대한 구박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친절하던 아빠, 다정하던 남편에서 냉정한 남자로 바뀐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면 허삼관은 피를 팔아 살아간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혈을 한다. 생업으로는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미우나 고우나 가정을 유지해야 하고, 미우나 고우나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허삼관은 이제 방씨나 근룡이 없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 매혈을 한다.

 

 

765556982_GFs05bce_52a083b8299a4105ec494 

 

 

 

 

그런데 이번엔 그 미운 일락, 하소용의 아들 일락이 동생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리를 박살낸다. 당연히 방씨는 아들 입원비를 삼관에게 물어내란다. 그러자 허삼관은 방씨 아들의 입원비를 하소용에게 ‘일락이는 네 아들이니 네가 입원비를 대라’고 하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허삼관은 일락이 밉긴 하지만 자신이 매혈을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뿐 아니라 이번엔 이락이 다니는 공장의 생산대장이 집을 방문하자, 그 접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또 매혈을 한다.

 

딸밖에 없는 하소용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입원한다. 살 가망이 없단다. 하소용의 아내는 점쟁이를 찾아간다. 점쟁이 노파는 아들이 지붕에 올라가서 굴뚝을 깔고 앉아 서쪽 하늘을 향해서 “아버지 가지 마세요.”라고 한 시간 동안 외치면 떠나려던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일러준다. 전에 방씨 아들 사건 때 나 몰라라 했으나 이제 일락밖에 아들이 없으니 어쩌랴, 하소용의 처가 허삼관에게 와서 통사정을 한다. 결국 일락을 타일러 그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일락이 마지못해 시키는 대로 “아버지 가지 마세요.”라고 외쳤지만 하소용은 끝내 숨을 거둔다.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비판받을 사람들의 대자보가 겹겹이 나붙는다. 평소에 미워했거나 증오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대자보로 올라온다. 허옥란의 혼전 불륜이 대자보에 붙자 무자비하게 비판당한다. 그러자 허삼관도 자기가 임분방과 저지른 과오를 털어 놓으면서 가족들과 화해를 주도한다.

 

 

765556982_wNd2cibG_105e380f7b47d1d61bab8 

 

 

 

 

이제 매혈의 정점으로 향한다. 남의 아들을 10년이나 거두었다며 억울해 했는데, 이번에도 그 일락이 당사자다. 끈질긴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일락이 간염이란다. 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없자, 상하이 큰 병원으로 옮긴다. 문제는 그 병을 고칠 돈이 없다. 할 수 없이 아내와 일락을 상하이 병원으로 먼저 보낸다. 그리고 허삼관은 온 동네를 돌며 병원비를 조달한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고도 모자라는 돈은 매혈로 충당한다. 삼 개월은 보혈해야 매혈이 가능하지만 속이고 속이며 그는 일삼아 매혈한다. 그 바람에 결국 병원에서 졸도한다. 애써 매혈해 번 돈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혈을 해야 한다.

 

천신만고의 노력에 와중에 이런 저런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에 힘입어 드디어 병원비를 마련하여 상하이 병원에 도착한다. 그런데 일락이의 병상이 비어 있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죽은 줄로 알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다행히 일락은 회복된 모습이다.

 

이제 나이 육십이 넘은 허삼관, 일락, 이락, 삼락, 세 아들 모두 결혼을 하고 제 살만큼 산다. 그러니 이젠 피를 팔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데 돼지 간볶음과 황주가 생각난다. 그 생각을 하며 매혈을 생각한다. 이제까지는 가족을 위해 매혈을 했으나 이제는 자신을 위한 매혈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늙은이의 피는 죽은피가 많아서 살 수 없단다. 그러면서 돼지 피를 먼저 바르는 칠장이한테나 가보란다. 허삼관은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울먹인다. "이제 늙어서 아무도 내 피를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칠장이라면 모를까...."

 

 

765556982_pefnJDs6_4a7bf86f09a800d0497c1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올 때 감독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그 작품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우선 원작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매혈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다. 피는 아주 소중한, 생명과도 같은 숭고한 것이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그 숭고함이 사라지고 엉뚱한 수단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숭고한 정신이 물질로 바뀌었고, 하나의 생계수단, 힘의 수단,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매혈을 통해 해체 위기의 가족이 다시 화해하고 하나로 묶이는 모습을 통해, 매혈로 인한 가족애의 부활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일락은 자신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다. 그러니 내 자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내 피를 일락에게 수혈할 수 없다. 때문에 간접수혈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를테면 자신의 피를 팔아 일락을 살려내면 그는 진정 자신의 장남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니까. 물론 작가가 이 계산까지 했을지는 모른다. 원형비평으로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765556982_UVucQM4N_d90f11ba6d7c357734160 

 

 

 

 

마지막 장면에서 허삼관이 아제는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뭉클함이 새어나온다. 우리 가장들, 가부장제에서 가장은 권위의 상징이며, 힘의 상징으로 가족들을 윽박지를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 허삼관이 피를 파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짐이다. 가장이란 출세의 자리도 아니고, 지배자의 자리도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생의 자리고, 고독한 자리고, 무거운 자리다. 그렇게 평생을 산다. 그러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가족이란 짐을 벗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땐 이미 자신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제는 누구를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 인생이 섧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이런 생각들을 담아냈으면 참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아쉽다.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 웃겨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이 이 영화를 5% 부족하게 만든 게 아닐까. 웃기지 않아도, 그저 원작의 스토리대로 매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다 타당성을 고려하여 연출했으면 더 좋았으리라. 유머보다는 눈물샘을 파러 들어갔으면 이 영화가 더 감동을 주었으리라. 아쉬움이 남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