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5- 국제시장, 우리 아버지세대의 슬픈 자화상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선생께서 작곡하신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 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 노래를 연상하게 한다. 질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 한 남자가 살아오면서 겪은 개인사라 하겠다. 온라인에서 정치적인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정치적인 냄새는 별로 나지 않는 영화다. 다만 이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 아버지 세대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그분들은 우리 세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반면 우리 세대는 그분들을 어떻게,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게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어떤 사상이나 정치적인 시각으로 볼 게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 지나간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국제시장에서 어렸을 때 구두닦이를 할 때 "실패는 있어도 시련은 없다."란 말을 하며, 큰 배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스쳐 간 정주영 회장, 그가 좋아하는 가수 남진, 이제 막 가게를 하면서 고객으로 들어온 앙드레 김, 중년의 나이에 식당에서 스친 이만기다. 이들 중 그가 남진을 좋아한 이유는 그가 돈을 벌려고 베트남에 갔을 때 참전용사로 있던 남진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 추억 때문이란다.
자식들이 가족여행을 간다. 덕수는 불만이다.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삶의 조건을 자식들은 이해 못한다. 얼마나 생사의 고비를 넘어가며 뼈 빠지게 이루어 놓은 현재의 조건을. 아이들은 말한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우리끼리 미안하네."
"지 랄하네, 우리는 가족 아니가?"
아이들은 빈말이다. 겉으론 부모를 위하는 척하지만 자기끼리 재미있게 놀려고 손녀를 맡기고 놀러간다. 그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부끄러운 자화상 말이다. 부모를 이해하기는커녕 원망이나 하고 빈말로나 위하는 척하며 이제는 귀찮게 여기는 우리들의 진솔한 모습이다. 우리 아이들 또한 그럴 테지만.
손녀와 시장길로 나선다. 손녀가 묻는다.
"기억이 무슨 뜻이에요?"
"옛날 막 생각나고 오래 돼도 잊히지 않는 것"
"할아버지 손 놓지 마세요. 무서워요."
그 말에 덕수는 이전 일이 떠오른다. 잊히지 않는 기억, 지금 손녀의 손을 잡고 있는 덕수, 바로 동생 말순의 손이다. "여긴 운동장 아니다, 꼭 잡으래이."
그 손 놓치고 평생 짐으로 살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게 한 그 손, 그의 트라우마다. 말순과 아버지와의 생이별을 가져다주었던 손을 놓친 일, 지금 그는 손녀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어렵게 살아온 과거를 회상한다.
덕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해야 할 때 피난민들의 무리에 끼어 미군함정에 오르려 한다. 하지만 이 배는 군함이라 연합군의 무기를 싣고 철수하는 것이 일차 의미이기 때문에 민간인을 실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함장이 무기를 포기하고 피난민들 14000여 명을 태우고 출발한다.
덕수 역시 아버지와 엄마를 따라 피난을 떠나는 무리에 낀다. 엄마, 아빠 모두 아이 하나씩 업는다. 덕수도 그중 조금 더 큰 어린 여동생 손을 잡고 부모님을 따라 나선다. 밀리고 밀리는 무리 속에서 동생 말순의 손을 잡고 "여기는 운동장 아니야. 손 꽉 잡으라이!"하면서 애써 배에 가까이 온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정에 올라탄다. 그런데 그만 해군함정에 오르는 밧줄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말순이 손을 놓친다. 달수의 등에 업혀 오르던 말순이 뒤에서 따라 올라오던 사람이 잡는 바람에 말순도 함께 떨어진다. 달수의 손에는 말순의 바짓가랑이만 남아 있다. 말순이 떨어진 쪽으로 다시 내려가면서 달수는 아들 덕수에게 “네가 이젠 가장이다. 네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란 말을 남기고 말순을 찾아 내려간다. 배는 달수를 기다릴 수 없다. 때문에 달수와 말순은 북에 남고 배는 그냥 떠난다. 가족의 생이별이다.
흥남에서 나온 덕수는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고모를 찾아간다. 고모에게 의지하면서 덕수를 비롯한 나머지 식구들은 근근이 생을 이어간다. 덕수는 늘 불안하다. 말순을 데려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어느 날 그 이야기를 하며 따지자 ‘불이 나면 불 속으로 엄마는 들어갈 수 없다, 밖에 나온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까’ 라며 그 아픔을 이야기한다.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나온다. 덕수는 지금 손녀의 손을 잡고 시장길을 걷는다. 시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발견한다. 그들을 학생들이 놀린다. 이 광경을 보자 덕수는 옛일이 떠오른다. 피난 나와 어렵게 살 던 어린 시절, 그가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일, 미군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 노동자들의 모습이 딱 그 시절 자신 같다. 해서 덕수는 분노한다. 아이들에게 달려든다.
어린 시절 덕수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씀대로, 자신이 가장이라는 의식으로 책임감으로 살았다.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미군에게서 얻은 초콜릿을 혼자 먹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동생들과 나눠 먹으려고 아껴서 돌아오다 그만 불량배들을 만났다. 불량배들이 그것을 빼앗으려 하지 그는 흠씬 맞으면서도 지켜냈고, 결국 집으로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그것을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신도 공부하고 싶었지만 동생이 덕수보다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덕수는 자신이 공부를 포기하고 동생을 뒷바라지 했다. 덕분에 동생은 서울대에 합격했다. ‘개ㅅ ㅐ끼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자, 친구 달구는 ‘공부를 잘하는데 왜 개ㅅ ㅐ끼냐’고 묻는다. “그럼 개ㅅ ㅐ끼지 미친 ㅅ ㅐ끼가!” 달구 왈 “진짜 개ㅅ ㅐ끼네. 그게 인간이가”라고 한다.
가족을 위해 덕수는 고민했다. 달구의 부추김으로 덕수는 독일에 광부로 나갈 생각을 했다. 덕수는 결국 달구와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 거기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만난 간호원, 바로 독일로 가서 간호사가 된 영자였다. 그녀와의 연애, 그리고 귀국하여 둘은 결혼했다.
그들 가족을 끔찍이 위하던 고모가 죽는다.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고모부가 그 가게를 팔려고 한다. 고모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한 그 가게, 덕수는 그 가게를 지키려 한다. 그래서 그는 고모의 가게를 인수하려 한다. 그런데 여동생이 결혼을 하려는데 돈이 없어서 제대로 결혼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덕수는 이번엔 베트남으로 가려 한다. 전쟁 마당에서 공사를 하는 일로 돈을 벌기다.
독일 광산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긴 달구와 동행하려 한다. 결정은 쉽지 않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참다 참다 말한다. "이제는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살아봐, 왜 당신 인생인데 당신은 없냐고요?" 그때 흘러나오는 애국가, 덕수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싸움을 멈추고 애국가를 부르며 국기를 향한다. 길 가던 다른 사람들도 애국가를 부른다. 마지못해 엉거주춤 일어난 영자도 애국가를 부른다.
친형제보다 서로 어려운 일을 돕고 해결해주며 지내는 이들, 친구를 위해 죽음의 현장인 베트남으로 간다.
"애 지나 가지 나를 끌고 가나?"
"니가 날 독일에 끌고 갔잖아."
"그래서 너 임마 여자를 얻었잖아."
"인생에 여자가 전부가 아니다."
"야 독일하고 전쟁터가 갔냐, 이 자슥아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
베트남, 돈은 돈이지만 베트콩에게 죽을 고비를 용케도 넘긴다. 해병대로 참전한 남진과의 조우, 죽을 고비에서 남진이 이들을 구해준다.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달구와 덕수,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으며 쌓은 우정은 그 무엇과 바꾸랴.
죽음의 고비의 순간, 이제 죽는구나 싶을 때 떠오르는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 “산다는 게 참 힘이 듭니다. 아버지, 그런데요. 아버지, 지금 제일 보고 싶은 건 아버지도 아니고 어무이도 아니고 영자씨입니다.” 타국에서의 설움, 고국에서 보내온 편지를 읽는 시간이면 기숙사 안은 그저 울음소리로 그치지 않는다.
돈을 위해 독일로 가자던 달구 덕분에 덕수는 독일에서 돈과 여자를 얻었다. 덕수 덕분에 덕수를 따라 베트남에 갔던 달구는 덕분에 베트남 여자를 얻었다. 이제 남은 역사는 이산가족 찾기, 결국 아버지는 찾지 못했지만 로스앤젤레스로 입양 되었던 동생 말순을 찾는다.
당신은 왜 나를 좋아했나요?
"이쁘니까"
"거짓말이라도 듣기는 좋네"
"그런 영자는 왜 내를 좋아했는데?"
"사랑하니까."
"거짓말이라도 듣기는 좋네."
하얀 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아버지의 영혼일 것이다. 인자는 모르시겄지. 너무 나이 들어서.
아버지가 헤어지면서 하신 말씀대로 그는 가장으로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그가 말한다. "아부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로 힘들었거든예"
"내가 너한테 넘 고맙데. 내가 못한 거 니가 대 해줘서."
"아버지 보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가훈으로 써 있던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그리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정주영 회장의 말, 아버지 세대는 그대로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그렇게 사는 시대가 아니다. 영자의 말대로 "남이 아니라 이젠 당신 위해 살아봐. 왜 당신 삶인데 그 안에 당신은 없어.". 이 땅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나를 돌아보기 전에 가족을 먼저 돌아보았다. 가부장제의 장은 그건 어떤 권위나 힘의 상징이 아니라 고난의 상징이자 무거운 짐, 차라리 쓰러지고 싶은 짐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들, 그 분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 짐에서 놓였다. 그걸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만, 그 만 분의 일이라도 느낄까만. 나의 아버지도 그러했다.
시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외국인 노동자, 그들을 놀리는 학생들을 본 덕수가 어린 시절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일, 미군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던 일이 떠올라서 그 상황과 겹친 일이 떠올라 분노하여 아이들에게 달려든 덕수처럼, 아버지들은 거리의 아이들로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뿌듯했다. 자기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편안하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행복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돈을 벌었다. 개돼지보다 못하게 살면서 돈을 벌었다.
덕수와 달구가 가정을 살리려고,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고 독일 광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처럼, 베트남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처럼,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인 것처럼, 지금 이 땅에 외국 노동자들이 남의 나라에 돈 벌러 와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 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나 어렸을 적엔 산에 들에 밭에 나가 탄피를 주워서, 불발탄들을 주워서 엿 바꾸어 먹었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 총알 아래서 비켜나 살았다. 총알이 위로 휙휙 지나갔을 테다. 그 공포 속에서 살아온 아버지들을 나는 이해 못했다. 그저 이기적이었다. 산에 풀이 웃자란 곳에 보면 여지없이 해골이 있었다. 그 해골을 발로 차서 산비탈로 굴리면서 놀았다. 얼마나 철없던 짓이었는지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버지, 그저 착한 아버지,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