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7- 닥터 지바고-2- 그림 같은 운명적 사랑

영광도서 0 1,660

아무런 약속 없이 우연히 만난 한 번의 만남은 우연이라 하자. 어쩌다 스치고 스친 두 번째 스침도 우연이라 하자. 아무런 약속도 의도도 없이 구름처럼 떠돌다 다시 만난 만남은 인연이라 하자. 일부러 만나려 해도 어긋나거늘 우연한 세 번의 만남은 운명이라 하자.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우니, 작의적인 것도 같고, 운명인 것도 같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운명은 아프면서 어름답다.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냐! 사랑이라는 말 범람하여 비좁은 가슴에 담기도 부끄러우나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냐 누군가를 판단하며 미워하기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 따뜻해지는 것은 또 얼마나 좋으냐. 대지 적시는 빗방울처럼 윤기 없는 가슴 촉촉이 적셔 주기에 내 그리움 턱없이 부족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누군가를 향하여 '감사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랑은 얼마나 좋으냐. 빈 가슴 지는 노을에 묻고 돌아서는 발걸음 함께 이우니 섧다마는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또 사람으로 인하여 치유를 받지만, 한 세상 살아가면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냐.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걸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나는 이토록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요.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딛지도 낙오하지도 않고 오류를 범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좋아할 수 없소 그런 사람의 미덕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단 말이요 ." - 닥터 지바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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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일까, 그의 아내 토냐가 남편의 처지를 생각하여 유리아틴에 다녀오란다. 그곳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빌려다 보라는 것이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유리아틴이란 이름에 떠오르는 얼굴 라라, 그녀를 생각하며 못이기는 척 그는 길을 나선다. 유리아틴에 이르렀을 때 활짝 핀 꽃밭들, 라라를 떠올리게 하는 노란 꽃들이 밭에 가득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나오던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라라와 재회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 더는 남편을 찾지 않는 그녀는 이제 이전의 그녀가 아니라 유리 지바고의 연인으로 다가선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신적 사랑을 넘은 육체적 사랑은 농익는다. 이때부터 유리 지바고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라라와의 사랑을 더욱 키워간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을까. 토냐가 임신한 것이다. 임신한 토냐의 모습을 본 그는 부성애의 발로일까, 라라와의 관계를 청산할 생각으로 즉시 라라에게 간다. 그리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별을 고한다. 정말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느냐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집을 나선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는 적군의 무리들에게 잡힌다. 이때부터 그는 집에 돌아가지도, 라라에게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들 빨치산 무리에 끼어 이곳저곳을 떠돈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그는 어느 날 처량한 무리들을 접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여인의 군상이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용기가 난 것일까,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들 무리를 벗어나서 말을 타고 도망친다.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을 한없이 달리다가 그만 말도 잃고 처량한 신세가 되어 걷고 걷는다. 그러다 저기 보이는 이들, 한 아이와 두 여인의 모습이다. 그의 눈에는 토냐와 라라로 보인다. 이들을 향해 토냐를 외치다 라라를 외치며 다가선다. 그러자 놀라서 도망치는 그들을 따라 잡는다. 전혀 모르는 여인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 역에 도착한 그는 라라의 집을 가까스로 찾아간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가족의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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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냐가 라라를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라라는 그녀는 참 좋은 여자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편지를 그에게 건네준다.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로 다시 갔다가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지바고는 라라에게 정착한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빅토르가 끼어든다. 이제는 볼셰비키 파의 지도자가 된 빅토르는 라라를 차지하려 한다. 그의 흉계를 아는 이들은 그의 도움을 거부하고 바리키노로 숨는다. 어느 날 라라는 넌지시 아이가 생긴다면 딸이 좋은지, 아들이 좋은지를 유리에게 묻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도 평화도 오래 가지 못한다. 행복에 겨운 유리가 그 불안 속에서도 라라를 제목으로 시를 쓰며 지내는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빅토르가 부하들을 이끌고 들이닥친다. 라라는 항상 빅토르의 감시를 당해 왔음을 그제야 안다. 파샤를 잡으려는 이들이 늘 라라를 미끼삼아 그녀를 살려두었던 것인데, 얼마 전에 파샤는 체포되어 사형 당하기 직전 자결했다는 것이다.

 

빅토르는 그녀를 유리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유리는 풀어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지바고와 헤어지지 않겠다지만, 지바고는 그녀를 설득하여 유리를 열차에 타게 한다. 그는 자기도 곧 따라갈 것이라고 한다. 그는 라라를 살리는 대신 그녀와의 이별을 택한 것이다.

 

그 후 라라는 딸을 낳았으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딸을 잃고 찾아 헤맨다. 그녀가 딸을 찾아다니다 유리 지바고의 이복동생을 만난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녀를 도와준다. 반면 그녀는 그가 유리 지바고의 이복동생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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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온 유리 지바고는 전차를 타고 가는 중에 창밖으로 라라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내리려고 하지만 전차는 멈추지 않는다. 전차가 멎은 후 그는 저만치 라라가 가고 있는 것을 소리치며 부른다. 하지만 그의 병약한 외침을 그녀는 듣지 못한다. 결국 그녀를 따라가다 그는 쓰러져 죽고 만다. 그녀는 무심하게 사라진 뒤다.

 

유리 지바고가 죽자 금서이긴 하지만 그의 시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무덤에 헌화한다. 토냐 또한 그의 무덤을 찾는다. 그녀에게 중년의 남자는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제 그는 확신한다. 이 처녀가 바로 자기 형의 딸이라는 것을. 그녀가 연인과 들고 가는 악기,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느냐는 말에 그녀의 애인이 말한다. 배우지는 않았는데 잘 연주한다고. 항상 그의 살림에 따라다니던 악기, 그것이 복선이자, 이들의 관계를 알려준 상관물이다.

 

닥터 지바고, 아주 아름다운 설원, 그리고 숲의 풍광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다. 한 번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그 만남이 두세 번 이어진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란 말이 있듯이 여러 번의 조우가 이들을 사랑이란 숙명으로 묶어 준다. 낭만적인 사랑, 그리고 그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란 걸. 그 놈의 사랑은 항상 제때에 오지 않고 뒤늦게 찾아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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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지바고와 이복동생의 삶의 모습에서 우린 두 갈래 삶의 길을 바라본다. 시대에 잘 적응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추구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이들의 관계는 집단을 더 중요시하느냐 하는 집단주의와 개인의 감정을 더 중요시하느냐 하는 예술가의 삶 또는 개인중심 주의의 관점이다.

 

또한 토냐처럼 평범한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과 질곡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 사랑을 키우며 사는 라라의 모습도 대비된다. 그럼에도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여인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결국 라라는 유리를 사랑하지만 그를 떠나 빅토르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으나 자신이 낳은 딸이 그의 딸이란 표지로, 한편으로 착한 여자 토냐에 대한 우정으로 자신의 딸의 이름을 토대로 지었던 의도에서 유리 지비고를 향한 그녀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황제 치하를 내친 볼셰비키,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평등한 사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 민중들, 하지만 권력이 바뀌었을 뿐 달라질 것은 없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모순은 존재하고 불의는 존재하며, 몰상식은 존재한다.

 

아주 아름다운 풍경화들, 그리고 애절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들, 운명적인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낭만적인 사랑을 그리워하게 하는 그림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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