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0- 마인드 스케이프, 우리의 기억은 모두 진실일까?

영광도서 0 1,893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정말 진실일까? 나의 기억, 나 자신도 모르게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억의 왜곡, 내가 체험했으니까, 분명 목격했으니까, 당연히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말을 우겨댄다. 하지만 기억이란 이렇게 주인까지도 속일 수 있다. "기억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유일한 진실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진실을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의 말이다.

 

우리는 나의 기억을 절대로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억이 잘못된 기억일 때도 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인정할 수 없다. 분명한 나의 기억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절대로 믿는다. 남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나 역시 우기는 게 아니라 진실이디. 적어도 나에겐 진실이다. 잘못된 기억, 나의 기억이 나를 속일 수도 있다.

 

 

765556967_V4MN6WXU_ffb442ed70a276546062f 

 

 

 

 

‘마인드 스케이프’란? 기억 수사법. 특수한 장치를 통해 타인의 기억에 접속해서 사건의 단서를 찾는 수사 방법이라고 한다. 수사관은 의뢰인의 뇌 속에 저장한 특정한 기억을 마치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했던 것처럼 생생하게 보게 된다는데, 최면술하고 유사한 면이 있다. 수사관이 당사자인 상대의 손을 맞잡고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보면 최면에 빠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수사관이 그 사건 속에 함께 들어가 그 기억 속의 사건들을 함께 겪는다는 점이 다르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존은 특별수사관이다. 그는 타인의 기억에 접속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집까지 내놓을 처지에 몰린 상황에서 사건을 의뢰 받는다. 거대 부호로부터 의뢰 받은 사건인데, 자신의 딸이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유를 알아내달라는 것이다.

 

 

765556967_GPLBQKX2_8a843f679c1badcf347c1 

 

 

 

 

당사자인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 측정불가의 아이큐를 지닌 16세 천재 소녀다. 존은 앤나의 기억에 접속한다. 앤나의 기억에서 존은 뜻밖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 한다. 하지만 그가 본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린다. 그래서 존은 앤나와 그녀의 가족들이 숨기려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앤나의 기억 더 깊숙이 들어간다. 주변진술이 맞지 않거나 앤나가 잘못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깊이 들어갈수록 무엇이 진실인지 더욱 헷갈린다.

 

그쯤해서 앤나는 존에게 열쇠를 준다. 이것이 중요한 키워드, 복선이다. 열쇠? 그는 그가 알아낸 기억들, 앤나의 기억 속 충격적인 사건들, 존은 앤나의 기억 속에서 본 것들이 진실인지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그것을 현실과 대조한다. 하지만 앤나의 기억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현실에서 찾은 단서들과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앤나는 자신이 보여주는 기억은 모두 진실이란다. 그래서 존은 앤나와 기억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혼란에 빠진다.

 

 

765556967_n5f8VBPM_2dded4f0e4d9f2bdf602a 

 

 

 

 

이제 앤나의 기억을, 주장을 믿지 못하는 존은 앤나의 주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의 대답, 아니 그들은 왠지 그를 피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말은 “그 애를 믿지 마세요.”이다. 그가 의아해 하자 그녀의 동창은 앤나에게서 얻은 충격적인 상처까지 보여준다. 목 아랫부분이 구멍이 난 상처, 끔찍하다.

 

무엇이 진실일까? 존은 좀 더 앤나의 깊은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한다. 그럴수록 점점 더 현실과 다르다. 그러면서 존은 의뢰한 의뢰자의 의도를 의심한다. 앤나의 기억 속에 의뢰자가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앤나의 기억에 접속 중에 존은 갑자기 자신의 아픈 기억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남의 기억을 보러 들어갔는데 자신의 기억 속에 들어간 것이다. 원래는 상대와 함께 상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을 멈추는 것은 자신이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먼저 자기 기억을 보여주다가 존이 존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순간 앤나는 먼저 나오고 만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앤나는 그렇다면 존을 능가하는 마인드 스케이프의 달인인가?

 

 

765556967_9GceS2dO_5692a204982d153c91762 

 

 

 

 

그러면서도 존은 그녀에게 마음이 간다. 그녀를 이해하려 하고 그녀를 믿으려 하고 그녀를 보호하려 한다. 이제까지 그녀 주변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들, 그 범인은 누구일까? 그녀는 피해자일까? 그녀의 다급한 구조 신호, 그가 다급하게 소리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방에 들어간다. 순간 문이 닫히고 그는 감금당한다. 불은 꺼지고, 앤나의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그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하려고 집기를 들어 문을 부순다. 그러면서 그는 911에 구조신호를 보낸다. 이미 구조 신호가 여러 번 들어왔단다. 그리고 그는 탈출한다.

 

그는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미 그녀의 부모가 살해당한 후다. 다급하게 그가 문 밖으로 나와 앤나를 부른다. 앤나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그가 따라간다. 하지만 그녀는 종잡을 수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처럼 그의 뒤에서 나타난다. 반갑게 다가오는 그녀가 그의 손을 잡는다. 출동한 경찰들이 그를 에워싼다. 앤나는 달아난 후다. 그는 체포당한다. 그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는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덫에 빠진 것이다. 그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 그녀와 손을 잡을 때 묻은 피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공간에 갇혀 있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것을 경찰이 믿을 리 없다. 아니 믿기지 않는다. 전에 앤나가 주었던 열쇠, 그게 그 방의 열쇠였던 곳이다. 그리고 그 열쇠는 여전히 그의 주머니에 있다.

 

 

765556967_o6cMGiaB_0c4168c05fb9db6c74f81 

 

 

 

 

그제야 존은 사건의 맥락을 알아차린다. 그는 앤나의 함정에 완벽하게 빠진 것이다. 그녀는 과연 사이코패스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런 식으로 아주 훌륭한 머리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인데, 그만 존이 그대로 걸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를 테면 앤나는 자기 부모를 살해하고, 그것을 존에게 완벽하게 뒤지어 씌운 것이다.

 

꼼짝 없이 존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고 만다. 그의 진실을 알고 있는 수사관이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존이 범인이 아님을 알아낸다. 그렇게 다행히 존은 풀려나긴 하지만, 마인드 스케이프에 유능한 수사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존은 자신의 능력이 허망함을 깨닫는다. 그를 철저히 농락한 앤나, 그녀는 뛰어난 지능으로 존의 마인드 스케이프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역이용한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가 자기 기억마저 왜곡하고, 존을 완전히 가지고 놀은 셈이다.

 

 

765556967_DV4dpcRq_71e001827d74fccd49939 

 

 

 

 

내가 어렸을 때 작은형이 분명 나의 법적다리를 인두로 지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곡이었다. 분명 내가 목격한 일임에도. 그렇게 지짐을 당한 것은 내 동생이었다. 너무 우니까 울지 말라며 작은형이 지진 것이다. 그때 나는 여섯 살, 작은형이 아홉 살, 동생이 두 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당한 줄 기억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당한 게 아니라 했다. 철저히 내가 당한 것이라는 믿음, 그런데 실제로 내 기억이 틀렸다는 것은 쉽게 확인되었다. 동생의 넓적다리엔 그때의 흔적이 여전히 있었으니까. 당연히 내 넓적다리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외부로부터 받은 충격, 그로 인해 쌓이는 것, 트라우마였을 터이다. 그때 그 끔찍한 사건으로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동일시해 기억했던 것, 즉 기억의 왜곡을 그대로 수십 년 믿어온 것이었다. 스스로 기억을 왜곡 시킨다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이식적인 기억의 왜곡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니까 무모건 나의 기억이 옳다고만 주장할 수는 없다.

 

 

765556967_GBnYLWlq_8d5128a1dae2380e4198f 

 

 

 

 

기억, 왜곡 없는 기억은 소중하다. 나는 순전히 나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 나의 기억이 너와의 관계이다. 가족과의 관계이다. 세상과의 관계이다. 기억으로 나는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나의 실체를 안다. 기억이 나의 전부이다. 나의 과거의 유의미는 나의 기억 덕분이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나의 과거의 기억의 일부다. 내가 기억하거나 남이 기억하는 나가 현재의 나다. 그 외의 나는 나가 아니다. 미래 또한 지금의 기억을 전이한다는 전제이다. 기억의 단절이 일어나는 순간 더는 그 존재는 나가 아니다. 그러니까 전생이 있다한들 내가 기억 못하는 전생의 나는 나가 아니다. 미래의 나, 아니 생전 이후의 나 역시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나만 나다. 그 외의 나는 나가 아니다. 과거란 기억 속에만 있으니 기억을 믿지 않으려면 나의 모든 과거는 없는 셈이니 그래도 기억을 믿을 수밖에 없다. 미래 역시 나의 기억에 달려 있으니, 이 기억을 소중히 잘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기억이다. 기억의 산물이다.

 

765556967_OwvlBE72_4291c2f2d323cea53a28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