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4- 페이첵, 기억은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주는 축복
물질문명의 발달, 발달이 지속될수록 인간은 이제까지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영역으로 나아간다. 사실 신의 영역을 신이 정한 적은 없다. 다만 성경은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신은 이미 모든 것을 마련해 놓고, 인간이 그것 하나하나를 찾아내도록 유도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씩 찾아내어 퍼즐을 맞추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셈이거나 카운트다운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마음이 편안하기는커녕 그와는 반대로 불안과 초조가 세상에 만연한다.
문명의 발달, 아니 인간의 기술의 발달은 편리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은 있으나 한편으로는 인간성 상실에 따른 기계와 같은 인간,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듯하여 오히려 역작용이 발생한다. 이러 저러한 면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에 너무 편안한 삶을 지양하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여기까지라는 공학이든 기술이든 그 발달의 한계를 정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페이첵,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공학기술, 그 기술의 지나친 발달에 따른 미래에의 두려움을 다룬다. 그렇다고 단순히 공학기술의 발달의 두려움만 다루는 건 아니다. 인간의 소중한 가치는 진정 무엇인가를 보다 중요하게 다룬다. 인간은 기계일 수 없다.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의 힘은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있고, 불가능할 것 같은 무엇도 넘을 수 있는 힘을 준다. 곧 사랑의 힘이다. 그 사랑의 힘은 공유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기억을 돈과 환산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 영화는 그걸 다룬다.
미래의 어느 날, 날씨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선보인다. 이 모두가 공학의 힘이다. 천재적인 공학자들의 연구결과로 인간의 피상적인 문제는 하나씩 해결되어 간다. 심각할 수 있는 환경문제쯤은 어렵지 않게 해결한다. 이를테면 날씨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
마이클 제닝스는 천재적인 공학자이다. 그는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한다. 유능함을 인정받는 그는 기술적 문제를 의뢰 받으면 그걸 해결해준다. 그리고 그에 대한 거액의 대가를 받는다. 때문에 영화제목이 <페이첵>이다.
그는 2주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는다. 대신에 그가 연구한 기간의 모든 기억을 삭제한다. 그의 머리에서 프로젝트의 시작점을 찾아서 거기서부터 프로젝트 끝까지를 찾아서 완전히 지우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2주 동안의 모든 것, 말하자면 만난 사람, 먹은 것, 연구한 것, 그 모두를 전혀 기억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 시간들은 그에겐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기간에 중요한 만남도 있었을 터, 여자를 사랑한 일도 있다. 그 모두를 삭제한다. 이 모두가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그가 이번엔 놀라운 연구를 의뢰 받는다. 문제는 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3년이다. 3년을 그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생활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가 종결되는 순간 그 기간 동안 뇌에 담긴 모든 기억을 지우는 조건이다. 그만큼 기술의 발달은 기억을 삭제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하는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3년은 너무 길다. 그는 고민한다. 조건은 9200만 달러,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금액이다. 그와 둘도 없이 친한 친구, 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면 그를 돕기도 하고,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해결책을 조언을 해주는 친구 쇼티는 그의 프로젝트 참여를 반대한다. 그도 그럴 것이 3년이란 시간의 투자,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의 공백은 두려움 자체이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약속한 날 연구소로 출근한다. 첫날 원예를 담담한 여자 레이첼을 만난다. 한눈에 반한 둘은 연구소에서 지내는 동안 연인관계로 생활한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한다. 둘은 사랑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아무런 기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자는 기억하지만 마이클은 기억을 삭제당할 것이므로 그때면 레이첼은 아무 기억에도 없는, 완전히 처음 만나는 여자일 것이다. 그가 연구소에 들어온 순간부터 연구소에서 나가는 순간까지의 기억은 완전히 삭제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3년, 마이클은 프로젝트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그렇다면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자신이 살아날 수 있을지, 살아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침 이 연구는 미래예측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 후 14일 만에 9200만 달러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물건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 조건을 바꾼다. 이를테면 연구소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물건 19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이다.
3년이 지난다. 그는 연구소 입소 전의 기억만 남기고 삭제 당한다. 당연히 그의 앞엔 약속한 9200만 달러가 몫으로 있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낯선 가방뿐이다. 그것도 자기 물건이 아니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담당자가 전달한 계약서를 보면 보상 대신 가방을 받기로 서약한 필체가 영락없는 자신의 필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방, 내용물을 확인하니 버스 승차권, 물품 보관증, 가는 철사 한 가닥, 가운데가 부러져 나간 포커 칩 반쪽, 스프레이, 그리고 복권 숫자 같은 숫자가 적힌 쪽지 등 19개의 물건들이다. 알고 보니 마이클이 계약 후 다시 계약 조건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물품을 받자마자 마이클은 괴한의 침입을 당한다. FBI가 그를 추적한다. 그만큼 그의 연구는 위험한 프로젝트임이 틀림없다. 연구소에선 FBI와 작당하여 그를 아예 제거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살아남는다. 가방 안에 물건이 그를 살아가가게, 도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나의 물건이 그의 위기 하나 하나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버스승차권 한 장이 있으면 즉시 버스를 타고 위기를 탈출한다. 결국 FBI에 잡혀 죽을 위기를 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거기서 살아나온다. 가방 안에 있던 물건을 이용해서다. 그는 이제는 안다.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 하나 하나가 미래를 예측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고 연구소 생활 3년을 보상 받을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들임을 안다.
간신히 살아남은 그 퍼즐들을 맞추어나간다.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가 나듯, 이번 퍼즐은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사랑하는 연인 마이클이 연구소에서 나갔음을 알아차린다. 그의 비밀을 아는 그녀는 그를 만나려 기지를 발휘한다. 사랑을 찾아야 한다. 하여 그는 연구소의 감시망을 기지를 발휘하여 빠져나온다. 미래예측대로 둘은 만남의 약속을 한다. 어느 카페이다. 이걸 알아차린 연구소에선 그를 잡기 위해 레이첼 대타를 내어보낸다. 마이클은 기억에 없기 때문에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면 연구소로 다시 잡아들이기는 간단하다. 마이클이 제일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그 다음에 가짜 레이첼이 등장하여 그와 자신이 약혼자였다고 말한다. 위기의 순간 레이첼이 도착한다. 마이클이 함정에 빠졌음을 알아챈 레이첼이 그 일을 수습한다. 다행히도 기억엔 없지만 마이클은 두 여인 중 눈에 담긴 진실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둘은 한 방향으로 살아남는 동지로 행동한다. 마이클은 자신이 한 프로젝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때문에 자신이 뿌린 씨앗을 완전히 없애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 연구소에 잠입하려 한다. 그는 “미래를 보면 미래는 사라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안다. 기계가 예언하면 인간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미래를 알려는 사람의 욕심은 자칫 인류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레이첼과의 추억을 알게 된 그는 그녀를 아낀다. 때문에 미래예측프로그램을 혼자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레이첼은 그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한다. 고집을 부리는 레치첼 둘은 연구소에 함께 침입한다. 그의 생존 전략 중 하나, 프로그램 작동 못하게 하기, 연구소에선 그의 운명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런데 작동이 오류다. 분명 마이클이 시연할 때는 되던 것인데 안 된다. 마이클이 그때를 대비해 오류가 나도록 설계한 것이다. 때문에 연구소에선 그를 제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두 사람이 연구소에 잠입하도록 적당히 방치한다.
연구소에 다시 잠입에 성공한 두 사람, 마이클'은 자신이 거대 프로젝트에서 만든 미래를 보는 기계가 사용하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위험을 감지하고 그것을 완전히 파기시키려 한다. 바로 인류를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프로그램을 작동하도록 오류 수정을 일단 해 놓고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자신은 죽도록 예정돼 있음을 본다. 그럼에도 그는 프로그램과 연구소를 완전히 폭파할 수 있도록 폭파장치를 설치하고 탈출하려 한다. 순간 그를 고용한 연구소 측이 그를 죽이려 들이 닥친다.
그를 죽이려는 연구소, 모종의 뭔가가 있음을 감지한 FBI, 위기일발의 순간들을 용케 피해 둘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 순간 모든 것은 폭발한다. 연구소는 완전히 파괴되고, 그를 고용하여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인 불행을 안길 프로젝트를 진행한 악인들도 그 안에서 종말을 고한다. 마이클과 레이첼은 가까스로 탈출한다.
FBI가 출동한 것도 거의 동시다. 탈출하다 그들이 잃어버린 황색 봉투, 담당자가 발견한다. 그리곤 그 봉투 속에서 회중시계를 발견한다. 그는 둘이 탈출했음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감추면서 다른 이들에겐 그들이 죽은 것으로 보고함으로써 그들을 탈출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이 죽은 것으로 종결한다. 덕분에 둘은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이미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그들은 다름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두 사람은 원예원을 내고 그 일로 살아간다. 물론 친구도 그들과 함께 지낸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숫자가 적힌 쪽지를 생각해낸다. 쪽지에 있는 말 “갇혀 있는 먼 곳만 바라보다가 아래의 거액을 놓칠 수도 있다.”을 발견한다. 마침 그가 앉아 있는 곳의 매어달린 바구니 밑, 거기에 일등당첨 복권이 있다니. 거금 9000만 달러 당첨금이다.
기술의 발전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이 편리를 누림으로써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철학이 없는 무모한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고통스럽지 않고, 어려움이 없이 살자고 기술을 발달시킨다. 기술의 발달로 미래의 세계를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단계를 넘어서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미래를 알아볼 수 있다는 발상이다. 미래에 대한 궁금증, 누구나 알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고 해보자. 그건 이미 미래가 아니다. 비록 나중에 일어날 일인들, 아는 것은 현재이다. "미래를 알게 되면 미래는 없는 거야... 고통과 행복 .... 모두를 빼앗아 버리는 거야 ...." 이처럼 미래를 안다면 삶은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산다.
때문에 무엇보다 기술의 진보에 있어서 인류를 위한 진정한 철학이 필요하다. 자칫 기술발달에 치중하다 보면 소홀히 하기 쉬운 진정한 인류를 위한 고민을 잊기 쉽다. 따라서 훌륭한 학자이기 이전에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인 면을 생각해야 하리라.
영화에서 보여주듯 자신의 기억은 소중하다. 그런데 그 기억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 돈과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교환한다는 것은 너무도 비윤리적이다.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때로는 감당 못할 격한 기쁨으로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애정이나 고귀한 우정을 나누는 인간관계가 가장 소중할 텐데, 기억을 지운다는 건 완전히 비인간적이다.
사실 인간에게 가중 소중한 것은 기억 아닌가. 기억이 있어야 부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그 이상의 세상 모든 일이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남이 기억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 없다.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남을 사랑하게 하고, 관계를 맺게 한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중 중요한 주제는 기억이다. 마이클은 말한다. “다시는 그 무엇도 잊고 싶지 않아요.”라고. 미래를 기억한다면 미래는 이미 과거일 뿐이다. 미래를 안다면 미래 어느 시점 이전에 있을 모든 것은 모두 무가치하다. “갈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면 그 아래 있는 것을 잃을 것이다.”란 마이클의 말처럼. 그렇다. 기억은 과거다. 미래의 어느 날을 안다면, 그것마저 이미 과거다. 미래는 속속들이 앎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예측하며 현재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다. 과거의 기억을 소중히 하며, 함께 공유한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지금 웃으면 그뿐이다. 그러면 미래의 어느 날에도 지금의 나를 기억하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기억은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주는 신의 축복이다. 신의 축복과 신의 저주인 기술을 바꾸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