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5. <고령화 가족>, 코믹에 담긴 진정한 가족의 의미

영광도서 0 1,495

"식구가 별거니. 한군데 모여 밥 먹고 울고 자고 그러면 가족이지."

 

가족의 정의다. 가족하면 혈연중심으로 생각한다. 서로 같은 피를 물려받아 끈끈한 정으로 살아가는 게 상식인 양 생각한다. 그러니 살상은 그렇지 않다. “멀리 있는 친척은 사촌만도 못해요.” 란 노랫말에서 사촌은 혈연 사촌이 아니라 이웃을 지칭한다. 이웃은 혈연은 아니지만 사촌과 같다는 의미다. 가까이 살면 그게 형제요 자매란 의미이니, 가족의 개념도 굳이 혈연으로만 이해할 건 아니다. 혈연이 아닌 인연을 맺어 서로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서로 아낄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가족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실제로 오염된 피는 전혀 쓸모가 없다. 또한 가족이란 개념에는 혈연이란 인연에다 그에 따르는 구성이 있으니, 부모와 자식의 위계다. 게다가 그에 따른 호칭으로 이룬 피상적인 개념에다, 외부에 대한 끈끈한 자기존속의 정신적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갈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다. 엄마에겐 두 형제가 있다. 한모와 인모다. 둘은 서로 피를 전혀 나눈 적 없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여 사는 형제다. 인모의 아내와 섬씽이 있는 어떤 사내를 두 형제가 합세하여 박살을 낸다. 그 폭행죄로 한모가 인모 대신 감옥에 가는 것을 암시하면서 시작이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시놉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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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야기는 엄마와 인모의 전화로 시작이다. 노래 <초우>를 좋아하는 엄마, 무더운 여름 단독가옥에서 밖에 담벼락을 내다보면서 엄마가 대책 없는 고령의 아들 인모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는 인모는 영화감독 한답시고 껍적대다가 무위도식하면서 따로 나가 옥탑방에서 생활한다.

 

“얘야, 네가 좋아하는 백숙 끓여 놓았어. 먹으러 와! 그런데 담벼락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

 

영화 한 편 못 찍고 돈만 날려먹고 옥탑방 월세도 내지 못하는 인모, 목을 매서 자살하려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거다. 놈이 그 전화에 살아나 엄마네 집으로 간다. 늘 <초우>란 노래를 즐기는 엄마, 맛있는 닭죽 끓여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엄마의 말대로 꽃 한 송이 피어 있는 담벼락을 지나 인모가 방으로 들어선다. 그 안에 뒹굴 거리는 덩치 큰 남자, 형이라고 들어앉아 무위도식하는 한모다. 큰 문제덩어리처럼 버티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한모, 두 형제는 형이란 호칭이 없다. 서로 드잡이하고 그저 막말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여동생이라고 버티는 미연이 있다. 그뿐인가, 여학생 하나, 개념 없는 애 하나 들어온다. 알고 보니 조카란다. 남편과 이혼한 미연이 딸을 앞세우고 들어온 거다. 이렇게 만난 삼남매에다 조카 하나, 그러니까 청상과부 엄마, 정식 아들 인모,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어쩌다 아들 한모, 밖에서 낳아온 딸 미연, 결혼과 이혼 거듭한 미연이 낳은 딸 민경, 이들이 가족구성원이다. 한 사람은 사회적 무능함으로, 한 사람은 경제적 실패로, 한 사람은 결혼 실패로, 한 사람은 공부 실패로, 한 사람은 자식농사 실패로, 모두 실패한 사람들, 모두 사회부적응자라면 부적응자들이다. 다양한 실패 끝에 이들이 각자의 삶을 살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엄마 품 안으로 돌아와 동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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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조합이 안 되는 총체적 난국의 가족이다. 이들 사이엔 특별한 호칭이 없다. 그냥 SIBAL이면 된다. 오빠란 호칭도, 형이란 호칭도, 삼촌이란 호칭도 없다. 서로 티격태격 막가파식 집안, 개념 없는 집안, 콩가루 집안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의 가족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하루하루를 그들은 오늘처럼 시끌벅적하게 총체적 부실로, 콩가루로 지낸다.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조용한 날이 없다. 금방이라도 박살날 것 같은 이 가족, 그런데 안 깨진다. 희한한 집안이다. 온 가족의 공통어는 SIBAL이다. 오빠, 삼촌, 형, 가족 내의 이런 호칭은 완전 실종이다. 말로만 실종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행동으로도 완전 실종이다.

 

이 개념 없는 형제에게 용돈을 대주는 건 노령의 엄마다. 삼겹살을 유독 좋아하는 무위도식하는 형제에게 매일 고기를 사다 먹이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참 성격 좋고 희생적인 엄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 역시 부실공사다. 오직 성이 없인 살지 못한다. "엄마가 여자라서 사랑이 필요했을까?" 그게 바람기 넘치는 엄마의 변명이다. 엄마가 매일 고기를 사다 줄 수 있었던 것도 구씨 아저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구씨 집 드나들면서 그 대가 덕분이다. 인모는 엄마가 화장품 장사를 해서 자신들에게 삼겹살을 사다주는 줄 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모는 그걸 목격한다. 엄마가 어느 집에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한 남자와 나온다. 그 남자가 정육점에 들어가 삼겹살을 사주는 것을 본다. 그들이 먹은 삼겹살의 정체다. 인모는 모른 척하긴 한다만.

 

그 남자가 구씨 아저씨다. 그 피를 받은 미연은 벌써 이혼을 두 번이나 했다. 그러고도 잠시 못 참고 미연은 한 남자 사귄다. 어느 날 미연은 그 남자와 카섹을 하다 하필 오빠에게 들켜서 망신당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 사귀더니 다시 재혼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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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이 못사는 미연, 그녀의 딸 민경, 얘도 나이는 어려도 대책 없는 아이다. 담배 피우지 별거 다한다. 그래도 엄마인 미연은 매주 딸에게 10만원 용돈을 준다. 용돈도 당당하게 받아내고 더 달란다. 엄마에게 "학생은 땅 팔아 삽니까?"라며 버르장머리 없다. 그래도 딸은 딸이니 어쩌랴. 미연이 오빠 인모에게 자기 딸 과외 좀 해주란다. 인모 왈, "될 애가 있고 안 될 애가 있어. 얜 아냐, 안 되는 애 시키면 부작용 생겨."라며 거절한다.

 

인모가 심심한가? 형이라면 형인 한모가 점찍어 놓고 정성들여 사귀려는 미용실 여자에게 그가 작업을 건다. 허우대 멀쩡한 인모는 형의 여자를 꾀는 데 성공한다. 둘이 여행을 떠난다. 그가 여행지에서 그녀를 넘어뜨려 제 여자 만들려고 덤벼든다. 그녀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인모는 "이 나이에 사랑이 어딨습니까? 10대도 아니고, 몸이 움직이면 사랑인 거지. 그런 거 젊었을 때 희망이 있고 할일이 있을 때나 하는 겁니다." 라고 답한다. 그렇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둘이 여행에서 돌아온다. 그걸 하필 한모가 보고 실망에 빠진다.

 

매일 미연의 돈을 훔쳐서 그녀, 즉 미용실 여자에게 그녀가 좋아한다는 만두를 사다 주곤 했는데, 그의 정성이 물 건너갔으니 열 받는다. 동생이라면 동생인 인모에게 그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기가 찬다. 실의에 빠진 한모, 조카 민경이 팬티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자위하다 인모한테 들킨다. 이때부터 콩가루 집안 증명이다. 미연인 재혼하겠다고 설친다. 그 와중에 민경은 가출한다. 죄책감 느낀 한모가 민경을 찾아 나선다. 인모도 애써 따라나선다. 온 가족이 민경이 찾기다. 온 가족이 애써 민경이 찾기에 성공한다. 큰일 날 뻔한 민경이 가까스로 구함을 얻자, 그제야 이들 형제를 삼촌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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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손실이 크다. 인모는 돈을 치르기 위해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저질 영화를 찍어야 한다. 한모는 돈을 위해 어느 업체에 바지사장으로 들어간다. 어느 날 한모는 약장수의 말을 엿듣는다. 바지사장인 자기를 희생시키려는 놈이다. 놈의 말을 엿들은 한모가 선수를 친다. 빠찡코 가게를 다른 업체에 넘겨서 돈을 받는다. 그 돈을 가지고 외국으로 날려는 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조만간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런데 하필 미연이 결혼한다니 미연의 결혼식 참석도 해야 한다. 전에는 아무 관계없이 떠날 수 있었으나, 가출한 민경이 찾기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찾은지라, 풍파를 겪고 나서 더 단단하게 굳어진 가족인지라, 그냥 외국으로 날기가 망설이다가 공항으로 간다.

 

남은 가족은 가족대로 그의 사연을 모르고 미연의 결혼식을 준비한다. 드디어 미연이 인모에게 오빠라 부른다. 한모를 추적하던 놈들, 때 맞춰 결혼식장에 쳐들어온다. 인모를 한모 대신 잡아간다. 한모는 막 외국으로 떠나려는 순간이다. 그가 인모가 자기 대신 잡혀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전 같으면 그냥 날을 텐데, 가족임을 확인한 조카 구출사건 이후, 가족의 의미를 안 그가 외국으로 날을 수도 없다. 해서 돌아온다.

 

잡혀간 인모는 한모가 이제껏 자기를 희생하며 자신을 지켜준 것을 깨닫는다. 때문에 엄청 얻어터지면서 형의 행방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한모 역시 모든 걸 포기하고 동생 구하러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힘으론 그들을 상대하기 역부족이다. 한모는 그만 조폭에게 칼침을 맞고 쓰러진다. 쓰러진 그에게 정신을 찾은 인모가 한모에게 욕을 퍼붓는다. “병 신 같이 돌아오지 말고 날지 왜 돌아왔냐?”고. 그렇게 욕을 퍼 대다 아무 반응 없는 한모에게 하는 말, "형" 이다. 이렇게 이 가족들 호칭을 모두 되찾는다. 그 말에 한모 살아난다.

 

이젠 엔딩이다. 이제는 집에 오지 않는 한모에게 엄마가 전화로 하는 말 "니가 잘 되는 것도 좋지만 난 니가 집에 들어오는 게 난 더 좋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인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 거나하게 음식상을 차린 그 자리에 한 사람 더 늘었다. 구씨 아저씨다. 그 자리에서 엄마는 결혼 발표를 한다. 구씨 아저씨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살겠노라고. 그러면서 그녀가 말한다.

 

“담벼락에 핀 꽃 좀 봐. 참 예쁘지. 엄마 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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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은 가족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고령화가족? 100세 시대라니 어쩌니 하는 시대, 얼핏 보면 시대를 반영한 그런 영화 이미지다. 실제로는 고연령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족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나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독립하지 않고 모여 사는 그런 영화라고 보는 게 옳다. 인생을 포기한 40세 ‘인모’, 결혼환승 전문 35세 ‘미연’, 총체적난국의 44세 ‘한모’, 개념상실 15세 조카 ‘민경’, 자식농사 대실패 69세 ‘엄마’, 가족 구성이 일하니 가히 고령화 가족이라 할 만하지 않는가. 이렇게 고연령 가족 구성인 게 다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합세한 구씨 아저씨, 그러니까 고령화가족 공고화다.

 

가족의 내력을 들여다보면 콩가루 집안이다. 서로가 어떤 피를 받았는지 서로 모른다. 처음엔 이렇게 저렇게라도 서로 피가 얽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피도 섞이지 않았다. 인모와 한모, 알고 보니 피 한 방울 안 섞인 형제다. 그럼 인모와 미연이만 오누이, 그것도 부실하다. 미연이와 인모는 엄마는 같지만 아빠는 따로 있다. 이혼과 결혼을 여러 번 거듭한 미연, 그녀의 막나가는 딸 민경, 이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여 사는 구성원, 즉 가족이다. 말이 가족이지 아주 복잡하다. 가족 아닌 듯 가족이다. 쉬운 말로 콩가루 집안이다. 이런 집안 찾기 힘들 것이다.

 

우선 말투도 콩가루다. 형은 있으나 호칭으로는 형은 없다. 오빠는 있으나 호칭으로 오빠는 없다. 삼촌은 있으나 호칭으로는 삼촌은 없다. 뭐 그냥 SIBAL이면 다 통한다. 입이 걸대로 건 이 집안, 말투만 봐도 콩가루 집안이다. 가족의 구성도 가족이랄 수 없지, 그러면 호칭은 온전한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우선 가족의 위계질서가 잡혀서 서로 어울리는 호칭을 찾아간다. 사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나씩이다. 그렇게 피상적인 가족의 정의를 얼추 채워야 한다.

 

다음엔 가족의 정신적 개념이다. 이들은 행동으로 가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외부로부터 가족이 어떤 공격을 받는다면, 온 가족이 합심하고 나서서 함께 싸우고,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한다. 평소에는 각기 놀고 서로 다투고, 콩가루 집안 같은데, 외부와의 문제가 생기면 어느 가족보다 합심하고 합세하는 대단한 가족이다. 실종 민경 찾기 사건이 그렇고, 미연이 결혼식 사건, 민경 찾기로 야기된 형제의 사건, 이 사건들로 이들은 끈끈한 가족애를 찾는다. 잘 구성된 여느 가족보다 더 가족스럽다. 제목에 가족이란 말이 들어가 있으니, 혈연이 아닌 다른 정의가 있어야 고령화 가족이란 이름이 걸맞을 테니까. 이들이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정의, 가족에 대한 끈끈한 그 무엇, 온 가족이 하나로 살 수 있는 구성원들, 그게 가족일 것이다. 엄마가 영화 대사 중에 정의를 내려준다.

 

"식구가 별거니. 한군데 모여 밥 먹고 울고 자고 그러면 가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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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내렸으면, 가족 간에 호칭을 사용해야 하니까 이 영화는 가족 간에 가족으로서의 서로 간의 호칭을 되찾는다. 가족의 새로운 정의, 가족 간의 제대로의 호칭 사용, 형을 형이라 부르는 때, 오빠를 오빠라 부르는 때, 삼촌을 삼촌이라 부르는 때, 그때쯤 이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의 복선이다.

 

가족, 아무런 격의 없이 있는 말 없는 말다하며 살아야 가족다운 가족일 텐데, 실제로 가족 간엔 숨기고 싶은 게 더 많다. 오히려 서로 마음을 숨기고 말을 숨기고 태연을 가장하며 사는 게 대부분 가족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들 가족,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내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막 말하고, 서로 불편하면 불편한 속내를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이들, 이들이 진정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가족이라고 같은 지붕 아래 있지만 각자 아픔을 부여안고 서로 끙끙 앓으며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우리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은 외부와의 사건, 즉 민경이 가출 사건, 그로 인해 유발된 미연의 결혼식 날의 한모 납치당한 사건, 그 두 사건을 통해 힘을 합친, 마음을 합친, 모두 합세한 가족 구하기로 가족다운 가족으로 산다. 가족의 개념을 새로 하고, 아예 없던 가족의 호칭을 얻는다. 형과 아우, 오빠와 동생, 삼촌과 조카,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까지, 가족으로 있어야 할 존재와 호칭을 모두 갖춘 완벽한 가족 아닌가.

 

이렇게 콩가루 집안, 총체적 난국의 집안, 완전 부실공사 같은 집안을 하나로 이어준 힘은 엄마의 힘이다. 우연한 말 한 마디인 것 같으나 우연한 말이 아닌 담벼락의 꽃, 그건 복선이자 소품이요, 엄마의 상징이다. 담벼락의 꽃은 얼마나 힘들랴. 엄마의 삶이 그러하다. 영화 중간 중간 담벼락을 영상으로 비춘 그 꽃은 각박한 상황에서 자기 삶을 꽃피우며 살아가는 엄마의 삶의 모습으로 여러 번 비춰준다. 엄마의 지난한 삶은 담벼락의 꽃과 같다. 그 지난한 삶 속에서도 끝내 이겨내고 콩가루 가족을 가족답게 만든 엄마야 말로 담벼락에 핀 꽃에 다름 아니랴! 이 영화 그래도 해피엔딩이다.

 

"담벼락에 꽃이 예쁘게 폈지. 엄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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