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8- 블랙 스완, 완벽한 두 얼굴로 연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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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천재들, 그들은 무언가 다르다. 우선 재능이 있어야 한다. 다음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열정뿐이랴 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한 누구보다 강한 집착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이들이 스타가 되는데, 스타를 꿈꾸는 이들은 완벽한 자신의 성취를 향한 강한 의지와 열정을 갖고 있다. 아니 열정과 집착의 만남, 그것은 광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완벽을 향한 광기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때문에 천재는 사회적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괴짜 또는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대부분 불행으로 끝난다. 그들의 예술로의 극적인 승화, 덕분에 관객은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도 하고 그 놀라운 작품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물론 자기 예술에 깊이 심취한 자신도 순간순간의 희열을 맛볼 수는 있다. 하지만 스타가 만족하는 순간, 위대한 예술가의 만족의 시간은 짧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그것보다 나은 작품을 위한 광기를 불태운다. 그렇다고 항상 잘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그들은 초조하고 불안해한다. 초조와 불안에서 탈출하려는 시도, 자칫 색다른 방법으로 시도한다. 순간의 희열, 마약을 한다거나 섹스에 집착하는 것이 그 방식 중 하나이다. 그 상태에 이르면 이미 심한 병적인 심리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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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발레단의 니나, 그녀의 엄마는 전직 발레리나 출신 에리카다. 그녀의 엄마는 발레리나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딸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명예나 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나는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주인공 배역에 집착한다. 딸의 결말을 예감하는 엄마는 딸이 삶을 제대로 누리며 살아가기를,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지만그녀는 오직 주인공 역을 따내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듯이 그녀의 부모 또한 어쩔 수 없다. 기왕 그 길을 갈 바엔 최선을 다해 딸을 후원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의 엄마 에리카는 딸 니나를 최고의 발레리나로 만들기 위해 열광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다. 딸을 끊임없이 훈련하게 하고, 끊임없이 채근한다.

 

니나가 맡으려는 역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이중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고 싶은 지나친 집착이 그녀를 불안에 빠지게 한다. 지나친 집착과 열정, 그녀는 광기에 이를 정도다. 그 지나침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한다. 늘 초조해한다. 극도로 긴장한다. 게다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다. 그녀는 점차 사람들과 마주하기를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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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주변에는 그녀의 성공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의 선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그녀는 사람을 피하려 들 뿐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다.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극단적인 피해의식에 빠지곤 한다. 그 늪에서 헤어날 길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현실이 아니다. 그곳에서 허우적거렸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잠시 각성할 뿐 다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강박관념,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것 같다. 자신을 밀쳐버리려는 것 같다. 그녀는 나름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극단의 발버둥 그러나 거기에 빠져든다. 빠져들면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느낀다. 잠깐의 만족한 순간들이다.

 

광기에 가까운 니나의 노력, 덕분에 예술 감독 토마스 리로이는 기존의 주인공 역을 맡은 프리마돈나 베스를 새로운 시즌의 오프닝 작품 <'백조의 호수>에서 강판시키기로 결정하고, 대신 니나를 제1후보로 올린다. 마침내 <‘백조’와 ‘흑조’>라는 상반된 성격의 1인 2역을 연기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의 프리마돈나로 니나가 발탁된다. 니나. 하지만 그녀는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 연기는 완벽하게 소화해내지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 연기는 어딘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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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새로 입단한 릴리가 예사롭지 않은 라이벌로 떠오른다. 릴리는 니나 만큼 정교한 테크닉은 없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미가 장점이다. 점차 스타덤에 대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는 니나, 그녀는 급기야 이 세상의 모두가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그녀의 성공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엄마 에리카마저 위협적인 존재로 착각한다. 극도의 불안감, 극도의 초조함, 극도의 집착으로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서서히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다. 엄마도 그렇고, 특히 릴리는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나쁜 적으로 판단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그녀는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도 자신의 냉혹성에 놀란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혼동한다. 심리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녀는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극도의 초조와 불안에 빠진 중에도 그녀는 다행히 주인공 역을 멋지게 해낸다. 가장 완벽한 주인공으로 그녀는 우뚝 선다.

 

그녀는 릴리가 자신의 배역을 노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릴리를 깨진 유리로 찌른다. 그런데 정작 니나의 배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또한 유리는 니나의 배에 꽂혀 있다. 니나는 경쟁자를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찌른 것이다. 착각한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그녀는 멋진 주인공, 훌륭한 발레리나로 인정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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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적은 외부 사람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그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럼에도 지나친 집착과 열정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보이게 했고, 적으로 착각하게 했다. 그녀의 진정한 적은 자신이었다. 스타의 피해의식, 자기망상, 정신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모든 적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특히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심리의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면 사람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역을 혼자서 해내듯이 우리는 두 얼굴로 살아간다. 그것이 잘 조화를 이루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그것이 극단으로 치우치는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부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 내 행복보다 그 행동을 지배하는 심리구조는 이처럼 무섭다. 지나친 집착이나 광기는 아주 끔찍한 불행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에 너무 집착하면 때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려는 그 일을 아주 완벽하게 해내려 한다. 자신의 육체가 피폐해지는 것도 모르고, 정상적인 정신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집착에 집착을 거듭하게 한다. 그게 예술 혼이라면 예술 혼이지만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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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니나의 꿈은 완벽한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전제로 본다면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나나의 욕망, 즉 완벽한 연기를 했으니까. 그녀는 원래 백조 역을 충분히 잘했으나, 흑조 역은 잘 못했다. 그녀 자신의 내면에 착한 면은 충분히 발전해 있었으나 악한 면은 숨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강박관념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서 그녀의 무의식에서 악한 면이 배어나오면서 드디어 그녀는 흑조 역도 충분히 잘 소화할 수 있었다. 비록 그녀의 내면은 피해망상에 빠진 정신병적 상태에 있었지만, 욕망의 측면에서 보면 그녀는 꿈을 이룬 셈이다. 완벽한 이중성 연기를 잘해냈으니까.

 

이처럼 완벽한 예술을 위해선 제정신으로는 어렵다. 때문에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렵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 마련이다. 꿈과 행복을 함께 얻기란 쉽지 않다.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천재들이 그러했듯이, 행복과 성취감은 별개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나의 밖에 있는 대상인데, 그것과 내가 물아일체로 변하여 예술의 대상과 나를 혼동한다. 완전히 그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연기와 현실을 착각한다. 배역과 현실의 나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렇게 예술과 내가 일치할 때 위대한 연기가, 완벽한 춤이, 대단한 창작품이 만들어질 수는 있다. 그게 위대한 예술가의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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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나를 피폐하고 힘든 삶으로 인도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면. 성공과 행복, 성취감과 현명한 삶과는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성공을 위해 피폐한 정신으로 살기보다는 소박한 성취감을 느끼며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주목을 받지만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보다는 그저 작은 자기 역할로 만족하거나 엑스트라로 사는 게 낫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사는 이들도 많다. 모 아니면 도처럼, 과감히 자신이 가진 예술본능에 미칠 수 있는 사람, 광기라도 좋다며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제 길을 고집스럽게 가는 사람들, 그들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긴 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남들이 볼 때는 아주 불행할 것 같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을 행복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마치고 나서 멋지게 역할에 성공하면 엄청나게 희열을 느끼는 이들, 그들도 소박하게 살아가는 나도 각자 삶의 주인공인 것만은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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