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9- 쉘위댄스?, 누구나 한두 번쯤 찾아오는 설렘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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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외롭다. 중년의 나이, 그 이전에는 그저 먹고 사는 일로, 아이들 키우는 일로, 세상에서 자기 자리 만드는 일로,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한 일로, 적어도 하늘로 난 구멍은 메워서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눈.비 맞지 않을 만큼 살 수 있는 집 마련하는 일로,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일로 정신없이 살았다. 그런데 쓸쓸하다. 인생이 외롭다. 중년이란 외로운 나이이다. 어느 정도 삶도 안정되어 있다. 그래서 좌우앞뒤가 고루 눈에 들어온다. 앞만 보며 살 때는 가족밖에 안 보였는데 두루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아내와 사랑이 완전히 사라져서 권태로운 것도 아닌데, 자식들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데, 왠지 방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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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중년 가장인 남자, 존 클라크, 그가 작은 반란, 소박한 반란을 시작한다. 그가 길을 가다 멈추어 위를 올려다본다. 퇴근길 기차선로에 접해있는 미스 ‘미찌’의 댄스 스쿨에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댄스 교사의 모습이 왠지 설레게 만든다. 왠지 공허한 눈, 어딘가 먼 곳에 시선을 던지는 그윽한 눈의 여자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그 여자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먼 곳을 응시하며 창밖을 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공허한 마음을 부채질한다. 먼 곳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한 그녀, 그녀의 이름은 폴리나, 그녀의 그윽한 눈길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는 그녀 가까운 곳으로 들어간다. 댄스교실이다. 그녀와 춤을 추고 싶다. 그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착각이라도 좋다. 존은 매일 밤마다 댄스 스쿨 앞을 지나칠 때면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찾는다. 그 여자에게 슬그머니 빠져들고 싶다. 아주 진하고 아름다운 멋진 사랑 한 번 하고 싶다. 다시 올 수 없을 내 인생, 거기에 퐁당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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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존은 마침내 전철에서 내려서 볼룸댄스 초급반에 등록한다. 첫 레슨이 있는 날, 존은 댄스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춤을 추기보다는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레슨 시간을 다 허비한다. 첫 레슨을 받은 뒤 창피하기도 하고, 수줍기도 한 존은 춤을 그만 둘까도 생각한다.

 

처음엔 여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끌림으로 시작한 댄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댄스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폴리나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 그는 폴리나에게 애정을 잔뜩 품는다. 게다가 폴리나의 각별한 권유로 시카고 최고의 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다. 춤의 매력에 빠지고, 여자의 그윽한 눈길에, 아름다운 몸매에 푹 빠진 존은 아내에게 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아내가 안다면 권태기라 오해할까봐서다. 아내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숨기기로 결심한다.

 

존의 아내 비벌리는 남편이 수상하다고 느낀다. 날마다 삶에 찌들어서 축 처져서 말을 잃고 묵묵히 일만하던 남편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얼굴이 핀다. 이상하다. 저 양반 바람난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뒤를 밟아봐야겠다. 남편의 의심스러운 변화에 위기를 느낀 비벌리는 사립탐정에게 남편한테 여자가 생긴 건 아닌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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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에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장애는 늘 있게 마련이다. 아내가 그가 춤을 추는 경연대회를 보고, 그의 실체를 알아차린다. 그와 춤을 추려고 시도하지만, 아내와 추는 춤과 다른 파트너와 추는 춤은 느낌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아내의 극성에 존은 결국 춤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러자 존은 다시 무기력에 빠진다. 보다 못한 그의 아내 비벌리는 급기야 남편에게 다시 춤을 추라고 권한다. 생기를 잃고 침울한 얼굴로 살아가는 남편을 보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존은 다시 춤으로 돌아간다. 다시 돌아가 폴리나의 손을 잡는다. 같이 춤을 추기 위해서다. 셀위댄스?, 춤 추실래요? 그렇게 그는 다시 춤을 춘다. 폴리나의 손을 잡고 그 순간은 모든 걸 잊고 춤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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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삶의 궤도를 달리하고 싶다, 내 눈에 들어온 당신의 손을 잡고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보고 싶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분명 다를 것 같은 세상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들어가 보고 싶다, 그래서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당신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설렘을 주는 세상, 뭔가 환희가 샘솟을 것 같은 세상, 당신의 손을 잡으면 그 세계가 활짝 열릴 것 같다.’ 이 생각이 그의 생각, 그의 셀위댄스의 의미 아닐까?

 

셀위댄스! 같이 춤을 춘다는 건 때로 비틀거릴 수도 있지만 같이 비틀거리며, 때로는 입술과 입술이 마주칠 만큼 가까워지기도 하고, 다리와 다리가 부대끼고, 허리와 허리가 맞닿아 묘한 흥분을 느끼는 설렘을 함께 느끼며 그 활력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살갑고 살만하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삶의 춤을 함께 추고 싶은 파트너를 찾고 싶은 마음, 어쩌다 한 번 선택했으나 가끔 권태를 느낄 때가 왜 없는 인생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자유를 누리고 싶다. 사랑하는 일에도, 삶의 전반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자유는 욕망이 있는 한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존재, 모든 걸 비울 수 없는 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욕망이 악이라면 세상은 모두 악일 것이다. 만일 신에게 ‘마음에 이는 바람, 마음에 일어나는 열정’마저 죄냐고 묻는다면, 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조용히 자아성찰을 하며 욕심의 크기, 욕망의 크기를 정하고, 그것이 짐이 되지 않을 만큼만 조정할 수 있다면, 그래 춤을 춘들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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