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83- 신의 한 수, 너 스스로 삶의 묘수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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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인생을 닮았다. 가로외 세로로 19줄이 교차하는 바둑판에서 수많은 수가 나온다. 때로는 잘못 두면 패착이요, 궁지에 몰리다가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수가 있으니 묘수요. 묘수 중의 묘수는 신의 한수다. 대마불사라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대마를 한방에 잃을 수도 있다. 중간에 돌을 던지는 수도 왜 없으랴만 계가가 가능한 판이라면 판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한시라도 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바둑판에 인생의 판을 얹는다. 바둑 두기를 인생에 비유한다. 복수와 잔인한 술수,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는, 내기 바둑을 두는 이들을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 바둑판에서나 나올 법한 죽고 사는 말들, 죽는 돌이 있으며, 줄을 뻔하다 살아나는 돌도 있다. 세상에 죽었다 살아나는 건 바둑돌밖에 없다. 이 바둑에는 아주 수가 참 많다. 가로 19, 세로 19줄로 이어진 바둑판에는 아주 많은 수가 있다. 이 바둑에 내기를 걸고 사는 사람들, 이들의 언어는 금기어가 없다. 죽고 사는 문제가 상존하는 판이니까 말이다. 죽이고 살리고, 키워서 잡아먹고. 속도록 유혹하고, 인간의 사소한 문제부터 죽고 사는 문제까지 모두 들어 있는 바둑판. 우리 치열한 삶의 현장과 흡사한 용어들이 바둑판의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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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착〔敗着〕: 지게 되는 나쁜 수.

 

인생에서 패착을 두면 치명적이다. 그 하나의 패착으로 인생이란 꼬일 대로 꼬일 수 있다. 바둑이, 장난이 아니라면 일수불퇴는 엄격하다. 따라서 바둑은 인생과 유사하다. 바둑이 실전이듯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착수〔着手〕: 바둑판에 돌을 놓다.

 

인생은 하나의 승부처다. 자기와의 싸움도 싸움은 싸움이고, 다른 사람과의 싸움은 더 치열하다. 시간과의 싸움, 노년과의 싸움, 온갖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첫걸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전공도, 직업도, 습관도, 취미도, 그 무엇이든 그 시작이 일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처음 둔 돌에 그 판 전체가 영향을 받듯이, 우리 인생도 평생 동안 인생 첫걸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포석〔布石〕: 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꿈을 향하여 이것저것 갖춰야 할 것들, 우리 인생의 포석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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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行馬〕: 조화를 이루어 세력을 펴다.

 

인생이란 종결은 하나지만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바둑의 행마처럼 잡힐 듯할 때도 있고, 잡혀 망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로 바둑이 끝나는 건 아니듯 인생도 쉽게 끝나는 건 아니다. 그 판이 길든 짧든 인생은 한 판이다. 이 행마, 태석은 놈을 잡으려 하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 그만큼 놈은 수가 많다. 해서 죄를 짓고 도망치는 범죄자들 중 바둑 두는 놈은 잘 잡히지 않는단다.

 

 

 

단수〔單手〕: 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따낼 수 있는 상태.

 

얻는 것, 얻는다고 늘 좋은 건 아니다. 얻은 만큼 줘야 할 때도 있고, 하나를 잘못 얻었다가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하나를 주고 그 반대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안 될 때는 대마불사란 말에 희망이라도 걸아야 한다. 하지만 대마도 죽을 때도 있으니 늘 긴장의 연속이다. 바둑에서 고수는 항상 여유롭게 바닥을 둔다. 하지만 하수는 늘 쫓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이란 것도 고수들에겐 세상은 놀이터지만 하수들에겐 지옥과 같다. 그 와중에 인생 참 지저분하게 사는 놈도 많다. 배신으로 사는 놈도 있고, 남 팔아 사는 놈도 있고, 아수라판이다. 그 마당에 숨기는 게 많은 사람과는 동업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하수 인생. 납작 기어서 살아가는 인생. 고수처럼 인생을 살아야 할 텐데. 그렇게 망가진 하류 인생, 망가진 삶을 역전 시키려면 신의 한 수를 찾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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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도리치기〔滾打〕: 연단수로 몰아치는 공격.

 

잡을 때까지 몰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 일단 연단수 카드를 꺼냈으면 끝까지 몰아붙여 보는 거다. 하지만 중간에 아니다 싶으면 손을 놓는 방법도 묘수다. 한쪽에 행운의 여신이 있으면 한쪽엔 파멸의 여신이 있으니, 그중에 어떤 여신이 내 손을 들어줄까,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들어주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꼼수보다는 묘수를 찾아야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꼼수를 찾으려 하고, 현명한 사람은 묘수를 찾으려 한다. 바둑판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재앙은 혀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혀를 조심해야 한다.

 

 

 

곤마困馬〕: 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

 

바둑의 곤마처럼 유혹으로부터 쫓기고, 상대로부터 쫓기고, 세상 그 무엇으로부터 쫓기는 일이 인생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럴 땐 도망만 치지 말고 도망을 치면서도 제대로 도망을 치고, 그러면서도 반격의 기회를 만들면서 도망을 쳐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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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死活〕: 삶과 죽음의 갈림길.

 

바둑돌의 사활처럼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그 결과는 당연히 오게 마련이다. 기왕 다 살고 났을 때 희극이었으면 좋으련만 때로 결정을 내릴 때는 단호해야 하는 법이다.

 

 

 

계가〔計家〕: 바둑을 다 두고 승패를 가리다.

 

바둑 한 판은 두고 나면 마지막으로 승패를 가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 역전을 시켜줄만한 일은 없을까에 우리는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바둑에서도 인생에서도 요행이란 것 믿을 게 못된다. 그런 건 없다. 묘수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신의 한 수와 같은 묘수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게 최선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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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 인생을 건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직접 바둑을 두는 게 아니다. 고수를 포섭하고는 다른 장소에서 원격으로 고수를 조종한다. 이를테면 내기바둑을 두는 문제의 바둑판을 볼 수 있는 최첨단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외부에서 첨단장비로 바둑판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현장에 고수에게 지시를 한다. 그러니까 누가 바둑을 더 잘 두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더 고수를 편으로 삼느냐의 문제다. 이들은 내기바둑으로 심지어 목숨까지 걸고 한다.

 

내기바둑 팀에 포섭당한 프로 바둑기사 태석은 내기바둑판에 뛰어들었다가 살수팀의 음모로 형을 잃는다. 게다가 살인 누명까지 쓴다. 그는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가서 복역을 한다. 태석은 감옥에서 바둑 기술뿐 아니라 싸움 기술을 배운다. 내기와 폭력이 함께 하니 그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그렇게 징역살이를 하고 풀려난 태석은 복수를 위해 살수와 대결하려 한다. 그래서 그의 복수, 그는 살수에게 당한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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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지막 대결은 죽느냐 사느냐, 살수와의 대결이다. 복수를 위해 모인 사람들, 그들은 나름대로 사연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의 복수를 하려 한다. 각자의 복수를 위한 마지막 한판 승부를 위해 모인 태석, 주님, 꽁수, 허목수는 승부수를 띄울 판을 짠다. 단 한번이라도 지면 절대 살려두지 않는 악명 높은 살수팀을 향한 계획된 승부의 판이다.

 

살수를 도와주는 건 어려서부터 데려다 자신의 애인에게 맡긴 아이, 그 어린아이의 수에 주님이 먼저 생명을 잃는다. 그 복수는 태석이 직접 하려 한다. 문제는 아이의 수를 이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태석은 자신이 있다. 태석은 쉬우면 인생이 아니다, 쉬우면 바둑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판이 시작된다. 내기바둑판에서 진정한 꾼들의 명승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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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가 수를 쓴다. 태석이 자신의 애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협박을 넣는다. 양수겸장이다. 태석이 이기면 그 여인과 어린아이가 죽는다. 그렇지 않고 태석이 패하면 태석이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태석이 좋아하는 여자, 그녀는 아이에게 눈짓을 보내서 무승부를 유도하게 한다. 결국 바득은 무승부다. 이제는 바둑으로 승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진검승부다. 싸움으로 승부를 가린다. 결말이야 대부분 영화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우여곡절, 기사희생으로 이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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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평범한 서울에 낯익은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기원인데, 그 안에서 온갖 흉계가 펼쳐진다. 최첨단 감시망과 수십억의 판돈이 오간다. 신선놀음처럼 아주 시간 여유가 많은 이들이 즐기는 줄로만 알고 있을 바둑 두기의 이면에서 짭짤하고 무서운 인생을 만난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게임은 어느 것이든 비장미가 보이는 걸까?

 

<신의 한 수>는 내기바둑을 인생의 비유해서 보여주는 차원 높은 영화다. 바둑을 알고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더 좋을 수 있을 영화지만, 바둑을 조금만 알아도 진지하게 인생과 바둑을 견주어 볼 수 있는 잘 짜인 영화다. 바둑이든 등산이든 어떤 경기든 게임이든 모두 인생에 비유할 일들이지만, 특히 바둑은 한 수 한 수 인생을 닮았다. 그 용어 하나하나를 이 영화는 풀어낸다. 제법 신선한 아이디어로 만든 영화다. 게다가 바둑을 범죄액션 장르와 접목하여 볼만한 액션을 보여준 덕분에 한편으로 팽팽한 긴장감으로 영화 끝날 때까지 가슴이 짜르르하다. 태석의 북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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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바둑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하수면 상대는 고수, 그 순간 나에겐 지옥이지만 그에겐 여유 만만한 지점이다. 나에게 곤마는 저에겐 신나는 말달리기다. 그 바둑판같은 복잡한 인생에서는 신의 한 수를 기다릴 게 아니라 묵묵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묘수를 찾으며 살아야 한다. 그 묘수를 두기 위해 코치를 받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동업이란 서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배신이 따를 동업은 안 하니만 못하다. 또한 진실한 사람의 안내를 받는다 해도 그런 사람이 부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 묘수를 두는 법을 알아야 한다. 또한 스스로 싸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 마지막 계가에서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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