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8- 군도, 민란의 시대: 진정한 힘의 원천은 백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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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흙에서 흰 연꽃이 피어나는 것은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 영화 속 인물 조윤의 자조 섞인 한 마디, 좀 모자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조윤, 양반집 아들로 태어나긴 했으나, 서출이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세상에 나온 반쪽 자리 양반의 자조 섞인 문장이다.

 

이 한 마디가 영화의 전체적인 윤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쪽 자리 인간, 태생이 잘못된 권력, 설움 받는 이들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조윤, 세상엔 그런 놈 하나, 그런 권력은 꼭 있다.

 

힘을 잃고 용기를 잃은 백성들, 그 여린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자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의 도발이 필요하다. 군도는 바로 그런 이들이다. 잃을 것을 모두 잃을 이들이다. 가족을 잃었고 재산을 잃었고, 삶의 희망마저 잃었으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해서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고 지배층과 맞설 수 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직 잃을 게 있다. 빼앗길 것이 있다. 해서 그나마 그거라도 지키려니 몸을 사린다. 그러니 힘은 군도에게만 있다. 뭉치면 도둑이요, 흩어지면 백성이다.

 

군도, 단어만 보면 일본 사무라이의 칼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건 칼이 아니다. 좀 부정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떼도둑이다. 떼라는 것에 이 작품의 키워드다. 떼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 물론 떼라고 부정적인 뜻만 있는 건 아니다. 모이다, 모여들다, 모임이라고 모두 나쁜 모임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뭉치든 저렇게 뭉치든 뭉치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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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13년의 그 어려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니, 어린 백성들의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도살을 업으로 하는 백정인 도치와 그의 누이는 나름 기발한 재주로 아이들을 꼬드겨 먹거리를 얻어낸다. 백정은 천민이지만,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한 취급을 받는다. 몸으로 해결하는 힘보다 신분이 힘인 시대, 인간이 모인 곳 어디서든 남이 갖지 못한 재주 하나 있으면 그게 그 집단에선 힘이다. 하잘 것 없는 재주도 때로 힘이듯이, 권력이란 것도 어떤 의미에선 그렇고 그런 힘이다.

 

도치는 돌멩이로 머리로 돌을 깨는 재주가 있다. 그는 머리로 돌을 받아 돌을 깨뜨린다. 그 재주를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옆에서 입담 좋은 도치의 누이는 아이들의 주머니를 걷어낸다. 도치가 이처럼 강한 힘을 갖게 된 건 약 덕분이라며 그럴듯한 말로 그는 약을 판다. 물론 가짜 약이다. 순진한 아이들은 정말 도치처럼 힘이 세지고 싶은 마음에 그 약을 사고 싶어 한다. 이런 식으로 도치와 그의 누이는 아이들에게 약을 주고는 아이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낸다. 그 중 어떤 아이는 자기네 집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약을 얻으려 한다. 그러자 도치의 누이는 “마른 오징어라도 후벼 짜면 물이 나오는 겨, 뭣이 없으면 느그 엄마 속옷꼬챙이라도 가져와야”라며 걸걸한 입담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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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도치에게 유혹이 들어온다. 도살한 고기를 납품하는 부호 조씨 댁 아들, 조윤이 그에게 일을 맡긴 것이다. 조윤은 대단한 가문의 아들이긴 하나 서출이다. 그의 아버지 조씨가 바람을 피워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이다. 때문에 그는 집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서출은 당시에 출세 길, 소위 벼슬을 받기 위한 과거시험을 볼 수 없기에 그 설움을 무예로 푼다. 때문에 그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무예를 닦는다. 

 

조선 제일의 무술을 자랑할 만하지만 서출 출신이라 벼슬에 나가지 못한 조윤, 그는 도치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려는 걸까? 조윤은 조씨의 재산을 상속할 조카를 없애 달라 한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동생의 아들을 죽여 달란다. 쉽게 말하면 임산부를 죽이란다. 그 대가로 조윤은 거액의 돈을 도치에게 건넨다. 도치는 그냥 눈 딱 감고 짐승 죽이듯 하면 되겠지 싶어 그 일을 맡는다.

 

그는 큰맘 먹고 조윤의 사주를 받아 대상을 처리하러 간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죽이려 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본시 마음 착한 도치, 맘 단단히 먹고 갔으나 그녀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자, 차마 그 짓을 못한다. 마음으로는 백정답게 사람도 짐승이라 생각하고 칼을 휘두르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하다. 결국 그는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고 맨손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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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가는 참혹하다. 조윤은 보낸 자들이 그의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의 집은 불타고 입담 ,좋아 도치와 함께 약을 팔던 누이와 불쌍한 엄마는 불에 타서 잔인하게 죽는다. 혼자 살아남은 이 사람, 분통이 터져 그는 조윤을 찾아간다. 그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조윤의 적수가 못 된다. 머리통은 단단하지만 조윤의 무술엔 턱도 없다. 그와의 대결에서 형편없이 깨지고 그는 조윤에게 죽기 일보직전이다. 그때 다행히 일군의 무리가 들이닥쳐 그를 구한다. 

 

그를 구해준 이들, 그들이 바로 지리산 군도다. 그것을 인연으로 도치는 군도의 무리에 낀다. 거창한 통과의례를 거쳐 도치는 군도의 무리에 들어간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하늘아래 한 형제요, 한 자매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덧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니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이들의 구호다. 그는 군도 속에서 오로지 어머니와 누이의 복수를 위해 치열하게 무예를 닦고 닦는다. 하지만 아직 조윤의 적수이긴 아직 멀다.

 

군도, 뭉치면 도둑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다. 이를테면 백성으로 살기는 어렵다. 탐관오리들이 제 배 채우겠다고 탈탈 빈 백성들의 먹거리를 탈탈 털어간다. 그뿐이랴 조윤이란 놈 보게, 아버지에게 가진 원한을 약자에게 풀 참인가, 백성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놈은 이리 속이고 저리 속여서 그들의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러니 백성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도저히 살기 어렵다. 해서 이들은 도둑의 무리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도둑은 아무나 되는 건 아니다. 쓸 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힘깨나 써야 한다. 눈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군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백성으로 살기는 ‘너무 힘들고 더럽고 그야말로 쓰 벌’이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니 뭉쳐야 한다. 뭉치면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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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은 약자인 척하지만 지배층 중의 지배층이요, 야비한 지배층이며 백성의 적이다. 지배층이나 콤플렉스 많은 지배층, 그런 놈이 더 악랄하다. 제 서러움을 알면 다른 사람의 서러움을 알 텐데, 이런 놈은 한술 더 뜨게 되어 있다. 우선 이런 놈을 처단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하늘아래 한 형제요, 한 자매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덧 힘 있는 자, 양반들과 탐관오리들이 약한 우리들을 핍박하고 가진 자, 고을 수령들이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니,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이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탐관오리들과 양반들의 세상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이들은 “쪼깨 모자라도 된 사람이 되거라!” 그 심정으로 살아간다. 

 

군도가 조윤의 집을 턴다. 이들의 멋진 작전으로 털어서 백성들에게 그들이 착복한 먹거리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려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제대로 안 된다. 군도는 조윤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른다. 많은 동료들이 죽고 산채는 완전히 박살이 난다. 조윤에게 도전했던 도치 역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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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 기관총으로 무장한 도치가 이들을 구하러 나선다. 공포에 떨던 백성들이 동요한다. 그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썩어빠진 탐관오리들과 맞서 싸우자!” 이제는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 도적이 아닌 이제는 백성의 힘으로 그들이 일어선다. 벌써 두 번이나 다부지게 깨진 도치가 조윤을 이길 수 있을까? 날고 기는 지리산 추설 군도들은 조윤에게 당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제 믿을 구석이라고는 도치밖에 없다. 하지만 도치는 조윤에게 당하여 사경을 헤맨 적이 있지 않았던가. 

 

도치와 조윤의 피 말리는 싸움, 결국 도치가 그를 유인한다. 도치가 무예를 닦았던 대나무 밭, 무예를 닦은 환경이 다른 두 사람, 밀리고 밀리던 도치가 대나무 밭에선 유리하다. 그 대나무를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으니까. 도치는 조윤에게 상처를 입고, 그 역시 조윤에게 가까스로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도치가 밀린다. 그런데 조윤이 쓰러진다. 때를 맞추어 백성들이 조윤을 푹 찌른 것이다.

 

도치와 싸움에 몰두한 조윤의 뒤에서 그를 찌른 건 낫과 쟁기로 무장한 백성들이었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백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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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도둑이요, 흩어지면 백성으로 시작한 영화, 마지막 힘은 백성들의 힘이다. 조윤으로 비롯되는 권력의 힘, 조윤은 한 개인이 아니라 온전한 권력이 아닌 어긋난 권력, 못난 권력의 상징이다. 백성을 하나의 개돼지로 생각하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에 맞서는 백성의 상징은 도치로 백성이다. 어떤 힘이 진정한 힘이며, 어떤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어야 하는지를 영화는 말한다. 도치와 같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의 무기는 각자의 일터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무기다. 삶의 애환이 담긴 그 자체가 힘이다. 그 힘은 비뚤어진 권력의 힘을 능가한다. 그 하나 하나의 힘이 합쳐질 수 있다면 어떤 권력도 넘을 수 있다. 진정한 힘은 백성이 그 원천이다. 

 

“타고난 운명을 바꾸려 칼을 잡아본 놈만 칼을 잡으라. 그놈만 상대하리라.” 군도의 상징 도치는 앞에서 지배층 조윤을 공격하고 뒤에서 이들 뒷받침하며 백성들이 공격한다. 도둑으로는 그 무엇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배층을 골탕 먹이고, 괴롭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군도는 다만 백성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으면 된다. 이제는 백성이다. 흩어지는 것은 도둑이요. 뭉치면 백성이다. 백성은 모든 것의 대명사다. 군도도 결국 백성의 일부다. 그러니까 군도도 그 무엇도 진정 백성으로 묶여야 한다. 거기 까지다.

 

도둑은 일시적인 힘이라면 백성은 영원한 힘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러니까 이젠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둑이다. 이렇게 단결된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해서 군도로 상징되는 도치가 지배층을 상징하는 조윤을 맞아 대등하게 잡아두었다면 그 마무리는 다름 아닌 백성의 몫이다. 조윤은 백성의 죽창에 찔려 죽는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강한 힘은 백성에서 나온다.

 

다만 백성들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다는 조건이다. 해서 의로운 군도가 필요하다.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분연히 일어나게 하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저들보다 못한 이들이 분연히 나설 때 백성은 깨닫고 덩달아 일어선다. 그러니까 시대가 어려울수록 목숨을 내걸고 분연히 일어서는 영웅이 필요하다. 말로만 애국, 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영웅의 탄생,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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