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9-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작고 귀엽고 풋풋한 삶의 철학

영광도서 0 1,479

순수한 눈으로 어른을 바라보는 것도 죄인가요?

 

나는 아이를 알 수 있을까? 아이의 내면을 알 수 있을까? 나 역시 아이였던 적이 있었으나, 아이들과 똑같은 과정을 살아왔으나 나는 모른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른인 내가 부끄럽게 만든, 얼굴이 발그레하게 만든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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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눈에 비친 대로 말하는데 아버지는 나를 때립니다. 아빠는 실직했어요. 엄마는 멀리 일하러 다녀요.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를 보살필 시간이 없어요.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그러면 아빠가 우리를 잘 보살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특기는 그저 때리는 거예요. 

 

나 제제는 악마인가 봐요. 늘 말썽만 부리니까요. 매일 맞는 걸 보니까 맞을 짓을 많이 하는 거겠죠. 그렇다면 나는 악마인 게 분명해요. 그래도 악마가 되기는 싫어요. 그래서 나는 달려요. 가차가 달리는 기찻길로 달려요. 때로는 기차가 오면 기차를 따라 함께 달리기도 해요.

 

그렇게 달려서 성당으로 가요. 그리곤 기도를 드리죠.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요. 내 동생이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만일 동생에게 선물을 주면 나는 365일 내내 착한 아이가 될 거에요.

 

 제제는 순수한 아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에게 예수는 그리 어려운 사이가 아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대로 표현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 예수는 동생에게 아무런 선물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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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는 모른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냥 남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한다. 그러다 누나한테 호되게 혼난다. 제제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 성적비하를 뜻하는 걸 그는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고 한 말이지만 어른들은 용서할 줄 모르니까. 

 

제제는 자기 아버지가 실업자고 집에서 그냥 빈둥빈둥 노는 걸 안다. 그래서 제제는 이번엔 그 이야기를 노래 삼아 흥얼거린다. 그리곤 또 혼난다. 어른들이 볼 때는 제재의 노래는 혼날 짓이지만 제재는 왜 혼나야 하는지 모른다. 그만큼 순진한 제제, 모르는 걸 어떡하나.

 

말썽장이 제제, 장난꾸러기 제제, 하루가 멀다하고 말썽을 부리는 공상가 제제는 이번엔 달리는 뽀르뚜까 아저씨의 차에 매달린다. 그 장난을 치다 제제는 또 혼난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차를 가닌 아저씨, 제제는 아저씨 차에 매달린 장난을 친 후 제제와 아저씨 사이는 서로 이를 가는 원수 사이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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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장난꾸러기 제제가 발을 다친다. 그걸 그냥 넘길 수 없어서 아저씨는 제제를 도와준다. 제제의 순수함을 알아본 아저씨, 그때부터 둘은 비밀 친구로 지낸다. 제제는 아저씨에게서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뽀르뚜까, 포르투갈이란 말을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제제에겐 그 아저씨는 뽀르뚜까다. 처음엔 무서운 아저씨, 악마 같은 아저씬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아이를 이해하는 유일한 아저씨다.

 

아저씨는 가끔 제제를 차에 태워주는 대신 조건을 건다.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이야기 들려주는 거다.”

 

아저씨와 아이의 우정아 아름답다.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제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아니 제제를 그나마 좋게 바라보는 사람은 세실리아 선생님, 뽀르뚜까 아저씨뿐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밍기뉴 나무. 제제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밍기뉴 나무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 나무는 하얀 백마가 되어 제제가 원하는 상상의 세계로 제제를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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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는 어른들의 세상에 적응 못하고 이런 상상으로 자기 삶을 펼쳐간다. 그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뽀르뚜까 아저씨를 만나는 일, 밍기뉴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뿐이다. 

 

그리고 제제의 멋진 세계가 또 있으니, 제제에겐 세계 최고의 동물원이 있다. 바로 제제 집 뒤에 있는 대나무 숲이다. 그 숲에 서면 온갖 동물들이 제제에게로 다가온다. 물론 제제의 상상의 세계이다. 제제의 순수한 마음, 뽀르뚜까 아저씨만 제제를 이해한다.

 

제제는 참 기특한 아이다. 아파도 힘들어도 늘 싱글벙글 웃는다. 그 모습을 뽀르뚜까 아저씨는 좋아한다. 그래서 둘은 좋은 친구사이다.

 

제제가 말한다.

 

“아빠를 죽일 거예요. 마음으로 죽이면, 누군가를 미워하면 마음에서 죽어가니까요.”

 

아저씨가 누나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 제제는 “내가 작으니까 말로 복수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아저씨의 말에 따른 제제는 “오늘 안 죽으면 맹세코 다신 안 할게요. 그리곤 꼭 기차에 올라탈 거예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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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뛰어난 아이, 아주 순수한 아이, 해서 무엇이 잘못인지, 어른들이 왜 자기를 때리는지 모르는 아이, 그런 그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 뽀르뚜까 아저씬 제제의 진정한 친구다. 제제는 그 뽀르뚜까 아저씨가 자신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단다. 제제에게 아저씨는 아끼던 만년필을 선물로 준다. 그것으로 무엇이든 써 보라고. 

 

그런데 뽀르뚜까가 망가라치바에 치어 죽었단다. 그 충격에 제제는 절망을 느끼며 시름시름 앓는다. 그만큼 제제에겐 아저씨는 아픔이고 절망이고 모든 것이다. 뽀루뚜까 아저씨는 곧 제제였으니까.

 

다행히 제제는 점차 회복이 된다. 그가 회복되면서 밍기뉴도 꽃을 피운다.

 

제제는 두 차례 슬픈 이별을 한다. 아버지는 다음 이사 가는 집에 더 많은 오렌지 나무를 심고 일찍 잘리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제제는 슬프게 속삭인다. “전 이미 잘라버렸어요, 아빠. 내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자른 지 일주일도 훨씬 지난 걸요.”

 

모두에게 악마 취급을 받던 아이, 늘 혼자였던 아이, 늘 말썽꾸러기 취급 받던 아이, 해서 신들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아이, 제제에게 필요했던 건 어른들의 이해와 사랑인데, 어른들은 그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전 이미 잘라버렸어요, 아빠. 내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자른 지 일주일도 훨씬 지난 걸요.”

 

제제의 순수시대의 끝과 함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야기도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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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미 잘라버렸어요, 아빠. 내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자른 지 일주일도 훨씬 지난 걸요.” 라는 말을 제제의 아버지는 그걸 이해할까? 어른들은 그걸 알 리가 없지. 생텍쥐페리의 말대로 어른들은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니까. 

 

다행히 제제는 뽀루뚜까 아저씨를 만나면서 사랑을 배웠는데 그 아저씨가 죽었다. 그러자 세상도, 그의 세상도 죽었다. 제제에게 필요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사랑이었다. 제제를 이해해주는 사랑, 그런데 그 사랑이 멀어져 갔다. 그러니 그의 세계는 죽었다. 밍기뉴 나무는 잘렸고, 그와 함께 그의 어린 시절도 끝났다.

 

때문에 “전 이미 잘라버렸어요, 아빠. 내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자른 지 일주일도 훨씬 지난 걸요.”라는 제제의 말이 아프게 가슴에 다가온다. 이젠 밍기뉴 나무와 이별을 하듯 풋풋한 상상력과도 이별이다. 그를 알아주던 아저씨와 이별하듯 동심의 세계와도 이별이다. 그리고 이제 제제도 우리와 같은 어른이 될 게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어른, 이젠 말썽꾸리기도 아니고, 악마처럼 굴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있는 그대로 하지도 않는 가면을 쓴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와 함께 순수도 사라지고 동심의 세계도 사라지고, 상상의 동물원도, 백마를 타고 놀던 그 세계도 사라질 것이다.

 

어린아이, 다섯 살 제제의 눈을 통해 본 세상, 그 세상 속에 녹아 있는 우정, 사랑, 그리고 각양의 인생, 이 영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이 봐야 할 아주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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