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01- 엣지 오브 투모로우, 리허설이 가능한 내일이 주어진다면?
살아온 날들이 아쉬움이 남나요? 그 날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가요? 어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일은 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 그런데 만일 다가오는 날, 내일이라는 시간을 미리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정말 만족할만한 내일을 단번에 살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일명 내일을 미리 살아보기이다. 그 내일을 계속 반복한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이다. 그 대신에 주인공은 오늘이라는 틀에 갇혀 더 이상 내일로 가지 못하고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내일을 다시 살아보기이다. 주인공 케이지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전투를 꺼린다. 비록 장교이지만 요리 조리 그런 상황을 피해왔지만 이번에 제대로 걸린다. 미군 소속이지만 외계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연합군에 배속 받은 그는 그 전투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다가 현장에서 탈영병으로 체포당한 그는 강제로 그가 싫어하는 전투에 투입 당한다.
훈련이라고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그는 특별한 전사부대에 배속되어 강제로 전투에 투입 당한다. 그 전투에 나가서 그의 눈에 들어온 전사는 여전사, 그가 그 부대에 강제로 끌려왔을 때 그 부대 벽면을 장식한 위대한 전사다. 그 전투에서 그녀를 만나 싸우다 그녀와 인연으로 얽히면서 결국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 자신도 죽는다.
그리곤 깨어난다. 깨어나고 나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상황은 현실과, 이를테면 자신이 목격하지 않은 현실과 그 꿈같은 환상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벌어지는 상황들이 꿈속에서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그는 죽고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성해 나간다. 그 외계의 괴물을 완전히 박멸하는 일이 그의 임무다. 그 임무를 함께할 여전사가 바로 리타다.
누구나 다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 케이지만 내일을 리셋할 수 있다. 그러니까 군대는 그를 의지한다. 그가 내일 벌어질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리타만큼은 그가 본 세상을 헛것으로 보지 않는다. 해서 둘이 힘을 합하여 그 괴물 퇴치에 접근해 간다. 하지만 리타에겐 언제나 케이지가 새롭다. 반면 케이지는 리타를 그 내일이란 세상 속에서 미리 수없이 만나왔다. 해서 그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전투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 모든 상황들이 케이지에겐 수없이 반복되는 일들이지만 리타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겐 처음 상황들이다. 그러니까 케이지는 리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리타는 그가 낯설다. 다만 그가 그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안다는 점에서 호감을 느낄 뿐이다.
그에겐 익숙한 그녀, 그녀는 그가 낯설다. 그리고는 그 상황이 계속 반복이다. 그러면 행복할까? 그가 생각하는 만큼 그녀는 그렇지 못하다. 그에겐 익숙한 그 사랑이 그녀에겐 아주 낯선 시작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같이 가는 것이지 한 사람이 앞서간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한 사람만 애만 태울 뿐이다. 케이지는 수없는 그날을 산다. 그런데 리타에겐 늘 새로운 날이다. 수없는 오늘을 살면서 케이지는 리타에게 마음을 준다. 하지만 리타는 늘 그가 새롭다. 그럼에도 그는 수없는 반복 속에서 그녀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녀를 속속들이 알고 그녀에 맞춰줌으로써 그녀도 그에게 조금은 마음을 연다. 하지만 딱 거기서 멈춘다. 그것이 때로는 아픔을 가져다준다.
케이지는 그 내일에서 전사 리타를 만난다.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가면서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수없이 만난 리타는 매 상황 처음이다. 그러니 그녀에겐 그는 낯설 뿐이다. 한 사람은 가까우나 그녀는 그에게 멀다. 그런 균형 없는 미래는 그를 아프게 한다.
오늘을 반복하여 생판 모르는 전사로서의 생활, 그 생활에서 그는 최고의 전사, 강한 전사로 거듭 거듭 거듭난다. 그는 아주 어설픈 전사에서 최고의 전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삶에 그의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상황을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의 반복은 그 상황 안에서만 반복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어디서부터 다시 하겠다는 선택이 없다. 그가 다시 사는 내일은 그가 죽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는 수없이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죽는 것도 일상이고 사는 것도 일상이 되어 그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완벽한 삶을 완성해 나간다.
그렇게 최고의 전사, 영웅이 되는 삶이 행복할까? 그렇게 죽고 살기의 반복이 그를 행복하게 할까?
어찌 보면 예지의 꿈, 현몽의 꿈을 꾼다고나 할까? 미리 벌어질 일을 알고, 다 아는 것은 아니고 수없이 반복하면서 알게 되는 상황을 알아간다는 것이 아주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겐 낯익은 상황들이지만 모든 이들은 나에겐 낯설고, 모든 이들에겐 그 상황이 낯설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건 비생산적이다. 그래서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사랑 역시 늘 새롭다. 새로운 날의 연속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같은 싸움을 되풀이하면서 이어가는 게 사랑이다. 늘 어리석음의 반복이라고 할까? 사랑이란 누가 앞서고 누가 뒤따라가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물론 상대를 잘 파악하여 거기 맞추어주면 좀 더 빨리 가까워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니까 사랑은 언제나 새롭다. 미지의 세계다. 그 세계를 서로 보조를 맞춰 가야 한다. 그게 온전한 사랑이다. 수없이 연습하며 되뇌며 살아가는 하루란 것은 완벽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상대를 필요로 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사랑은 수없는 나 혼자의 연습으론 이룰 수 없을 터다.
내일의 반복, 우리에게 그 내일을 여러 번 연습을 하고 살게 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내일을 살 수 있을까? 그러면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나하나 익숙해져서 제대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정말 되풀이 연습하는 삶이 행복한가, 얼마나 반복하면 우리는 완전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하루라는 시간은 그렇게 보면 길어도 아주 길다.
그렇게 오늘을 넘어서지 못하고 내일을 반복하면서 다시 오늘에 사는 삶, 리허설이 없이 살아야 하는 우리 삶이 어쩌면 더 다행이란 것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어차피 우리는 미완의 존재로 태어나 그저 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존재들이니까. 그 삶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모르고 사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사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나만 아는 내일, 남들은 모르는 내일, 그건 오히려 나를 더 괴롭힐 것 같다. 또한 아무런 나의 의지 없이 수없이 반복하는 내일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내 마음대로의 선택이 아니라 죽어야만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불만스럽다. 하긴 그게 우리 삶의 부조리니까. 기왕이면 그 리허설이 한 달, 아니면 수일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단 하루는 매력이 없다. 거기다 정말 다시 살고 싶은 날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매력이 있겠다. 딱 하루만 리셋할 수 있다면 어떤 날이 나에게 리셋하고 싶은 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