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05- 수상한 그녀, 재미와 휴머니즘의 적절한 조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주세요 나와 둘이서 지낸 날들을 잊지 말아줘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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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있다 하면은 얼마나 좋을까
어울릴 거야 어디를 가도 반짝거릴 텐데
이 노래를 빛나게 한 영화 <수상한 그녀>, 재밌다,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문물 난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날 만큼. 그러면 충분히 성공한 영화다. 재미와 인간애가 잘 녹아든, 재미만 주는 코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휴머니즘까지 잘 담아냈으니 좋은 영화다. 나성에 가면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이 영화가 다시 떠오를 테니까.
영화의 시작은 공 이야기로 부터다. 십대: 당구공이란다. 공들의 명확한 색깔 구분처럼 개성이 뚜렷하고 또한 아무리 찌르고 쑤셔도 여간 해서는 구멍에 골인이 되지 않는다.
20대: 축구공, 이건 공이라도 굴러 갈라치면 보는 놈마다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아우성이다. 그러나 어쩌다 한 놈이 차지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또한 22명이나 되는 꽤 많은 놈이 열심히 달려들어 보지만 여간 해서는 골이 잘 터지지 않는다.
30 대: 농구공, 이젠 넘보는 놈이 12명으로 축구공보다 거의 반으로 확 줄어든다. 그러나 공을 차지하려는 놈은 적어도 의외로 골은 많이 난다. 대부분 기교와 난이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매우 다르게 매겨진다.
40 대: 골프공, 이것이 행복인지는 모르지만 오직 한 사람만의 지배로 만족한다. 그러나 잘못 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영원히 버림을 받는다.
50 대: 탁구공,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건 어떻게 된 게 어떤 놈이건 공이 저한테로 넘어오기만 하면 될 수 있는 한 상대방에게 넘기려고 안달을 한다.
60 대: 피구공, 이젠 슬픈 정도가 아니다. 어떤 놈이건 공이 제 몸에라도 닿거나 찜이라도 당하게 되는 날엔 바로 사망이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피해 다닌다.
스무 살 꽃 처녀가 된 칠순 할매의 빛나는 전성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중년의 여자는 골프공이란다. 사람 하나만 믿다가 잘못 빠지는 날엔 영원히 버림을 받으니까 말이다. 이 골프공 이야기는 이 영화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복선이다. 오말순 할머니야 말로 명 짧은 남자 만나서 죽어라하고 고생하고, 남에게 못 됐다는 소리 들으며 평생을 살았으니까, 그야말로 골프공 같은 인생이다.
이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아들 자랑이다. 그녀의 아들은 노인문제를 다루는 대학교수다. 그것도 국립대학 교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시시콜콜 잔소리가 많은 오말순 할머니, 그만 며느리가 그 까칠한 성격 때문에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며느리에겐 친정도 없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니 오말순 여사가 집을 나가야 한다. 스트레스 덩어리가 오말순 여사니까.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는 손녀, 그건 안 된다는 손자, 그들의 논쟁을 엿들은 오말순 할머니 심기가 불편하다.
마음을 달래려 거리로 나섰다가 발견한 청춘 사진관, 아주 모처럼 화장을 한다. 예쁘게 하고 사진을 찍으련다. 영정사진이라도 고와야 문상하는 이들이 기분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더 추해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련다. 영정사진을 찍으며 ‘젊어선 분칠 한 번 제대로 못했는데 화장을 한다’는 그녀의 말이 찡하다. 그 사진관이 있는 정류장의 광고판엔 수지가 있다. “태양에겐 강하게 수지에겐 순하게”란 문구가 있는 광고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나왔는데, 지나치는 사람들이 관심을 둔다. 이상하다. 거울을 비춰보니 어렸을 적 그 모습이다. 20대의 그 모습.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이십대다.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지만 이내 오말순 할머니는 오두리 양으로 변신한다.
외모 덕에 가수도 되고, 피디와 묘한 설렘이 이는 일도 생긴다. 이십대에 해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 그 행운이 그녀에게 찾아온 거다. 이십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행복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왠지 불편하다. 그럼에도 다시 골프공 신세로 전락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 잘하는 남자 만나면 행복한 것이 여자의 삶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은 그마저도 되지 못했으니까.
이십대의 삶을 만끽한다. 평생 하고 싶었던 꿈인 가수도 된다. 괜찮은 남자의 사랑도 받는다. 이젠 다시 냄새나는 노인으로, 무기력한 노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편하다. 그러다 그녀는 다시 노인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녀가 같이 노래하는 이들, 피디, 그리고 그녀를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박씨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발에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 그 자리, 피가 나온 자리의 피부는 노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피가 빠지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걸 그제야 그녀는 안다.
중요한 콘서트, 오말순 할머니, 그녀는 이제 오말순 여사가 아닌 오두리란 이십대다. 그녀는 손자인 반지하가 리더로 활동 중인 반지하 밴드의 보컬 가수가 된다. 이십대의 꽃다운 그녀의 인기는 대단하다. 중요한 콘서트인데 반지하가 도착하지 않는다. 급하게 달려오는 그가 차가 막히자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공연현장인 방송국으로 달린다. 거의 다 왔다 싶었는데 그만 배달 차에 치어 사경을 헤맨다. 그럼에도 오두리의 주장으로 반지하 밴드는 노래를 부른다. 위급한 상태의 반지하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대단한 인기를 얻는다.
내가 사랑하는 너는 펜트 하우스에 살고
너를 사랑하는 나는 반 지하 월세에 살지
우~ 우~ 우~ 난 난 나~
우~ 우~ 우~ 예 예 예~
38층 니네 집인 거 왜 매일 아침 쓸쓸해 손벽치고
여자 멋은 우리들 창문에 (아~) 매일 매일 달라진 말로 내일
내가 사랑하는 너는 팬트 하우스에 살고 너를 사랑하는 나는 반 지하 월세에 살지
우~ 이것이 우리들의 연결줄인데 (정말루 엿같지)
우~ 이것이 너희들이 만드는 세상 (정말루 엿같지)
비 오는 날 침대에서 저 아래로 한강이 보이고
비 오는 날 우리집 방 바닥엔 물이 넘쳐 한강에 흘르네
내가 사랑하는 너는 팬트 하우스에 살고 너를 사랑하는 나는 반 지하 월세에 살지
우~ 이것이 우리들의 엿같은 인생 (정말루 엿같지)
우~ 이것이 너희들이 만드는 세상 (정말루 엿같지)
여기서 반전이 시작된다. 오두리가 오말순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손자가 혈액이 부족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자청하여 혈액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오두리, 손자의 혈액에 맞는 피는 오두리의 피밖에 없으니 급하다. 그래서 그녀는 손자를 살리기 위해 혈액을 제공하겠다고 나선다. 그러자 오말순 여사의 아들이 그녀를 만류한다. 이제는 돌아가라고. 이젠 다시 명 짧은 남편 만나서 생선 장수나 하지도 말고, 나처럼 못난 아들을 낳지 말라면서, 다시 노인으로 돌아오지 말고 오두리로 살아가라고 한다. 어떻게든 자기 아들은 자기가 살릴 것이라며.
그럼에도 오두리는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똑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니 엄니니까, 그리고 니가 내 아들이니까”라고 한다.
한동안 오두리로 살았던 그녀는 결국 혈액을 손자에게 줌으로써 다시 오말순 할머니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엔 그 보이지 않던 청춘 사진관이 다시 보인다. 바로 박씨에게 간다. 어려서부터 주인집 아가씨 오말순을 마음에 두었던 박씨, 그가 이번엔 청춘이 된다.
여전히 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에게 다가온 오토바이, 가수 활동할 때 그녀를 태워주던 그 자리에서 오토바이의 주인공이 헬멧을 벗는다. 박씨의 어린 모습이다. 그녀가 헌혈을 해서 다시 늙은 상태로 돌아오라는 오말순 할머니의 말에 그가 말한다. 다시 노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두 바퀴로 자유롭게 세상을 주유하며 살 것이라고. 전처럼 그의 오토바이 뒤에는 오말순 여사가 타고 있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 어느새 어제로 사라져가지만
또다시 밝아올 내일의 아침처럼 빛나는 희망이 널 비출 거야
가슴속에 숨어있던 이제는 빛바랜 어릴 적 꿈들을
찾아서 향해서 꿈이 아닌 현실로 화려한 조명이 널 비출 거야
늘어진 어깨와 무거워진 발걸음 어둠속에 너를 괴롭혀
하지만 어느새 반짝이는 별들이 네가 갈 길을 알려주듯 눈부시게 너를 밝게 비춰줄 거야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때론 지쳐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아도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끝내는 이뤄낼 꿈을 가진
빛나는 널 위한 이 노래 어제는 없었던 반짝이는 별들이
내일의 기쁨을 알려주듯 눈부시게 너를 밝게 비춰줄 거야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때론 지쳐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아도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끝내는 이뤄낼 꿈을 가진
빛나는 널 위한 이 노래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내 심장이 터지도록 달려보는거야
오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샛별처럼 눈부시게 빛나보는거야
오 한 번 더 마지막 한 번 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끝내는 이뤄낼 꿈을 가진
빛나는 널 위한 이 노래
이 영화에서 읽을 수 있는 것.
1. 이 영화의 주제곡 중 한 곡인 "한 번 더"에서 암시하듯 우리는 누구나 지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한 번 더 그 시절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이 들어갈수록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늘 이십대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꾸로다. 청춘 사진관을 다녀온 후 마음은 노인이건만 몸은 이십대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까 정체성이 문제이다. 우리는 실제로 몸 따로 마음 따로 산다. 마음은 늙지 않으니까. 잉 영화는 그 반대로 가 보았다. 우리가 되고 싶은 꿈으로, 그 좋은 꿈으로.
2. 비록 골프공 같은 삶을 살았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손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포기하는 부모의 마음 읽기다. 명 짧은 남편 만나서 남들에게 나쁜 년 소리 들으며 살았다, 자식 하나 키우느라 고생이란 고생 다 했다, 눈물과 피로 아들 하나 잘 키웠다, 이게 그녀의 인생역정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잘 나가는 가수다,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아주 꽃다운 청춘이다. 손자에게 수혈을 포기하면 젊음을 유지한 채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포기한다. 손자의 할머니로, 아들의 어머니로 돌아간다. 그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다. 자신의 젊음을 소중한 그 무엇을 과감히, 아낌없이 포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모정이다.
3. 소울, 목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 그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없다. 젊은 애들이 무슨 영혼이 있어. 오두리 말대로 "듣는 놈이 흥이 안 나는데 그게 뭔 노래요. 하는 놈만 지 랄발광인 노래가 말여." 그러면 오두리는 어떻게 영혼이 담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엔 그녀의 지난 삶이 담겨 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지난 추억을 함께 부른다. 노래와 삶이 만나고, 노래와 그녀의 과거의 일들이 함께 만난다. 눈물 나는 과거들, 뼈시린 아픔들이 노래를 부르는 중에 그대로 살아온다. 그 영상에 빠져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니 거기 영혼이 담기는 거다. 그런데 젊은 애들에게 그런 체험이 떠오르겠냐고? 이를테면 노래에 영혼을 담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담는 것이다. 노래에 사연을 담으면 영혼이 담기는 것이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 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나~) 음~ (나~ ) 음~ (나~ ) 음~ (나~ )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나~) 음~ (나~ ) 음~ (나~ ) 음~ (나~ )
4. 복숭아, 박씨는 복숭아 알러지가 있다. 그럼에도 오말순 할매는 그에게 늘 복숭아를 사다 주곤 한다. 그러면 박시 아저씨는 그 복숭아를 먹는다. 알러지가 있으면서도. 그게 박씨의 사랑법이다. 사랑이란 상대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좋아해 주어야 하는 것이란다.
5. 비록 마음은 늙었어도 사랑은 있다. 설렘은 있다. 그것은 피디가 선물해준 예쁜 머리핀이다. 그런 설렘이 다시 할머니로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포기하고 지난 할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코믹 영화인 것 같으면서 구성이 아주 빛난다. 청춘사진관의 설정이 자칫 그야말로 코믹영화로 끝나고 말 것 같은데, 휴머니티가 제법 잘 담겨 있다. 나이와 공, 오토바이, 청춘 사진관, 복숭아, OST, 우산, 머리핀 등, 복선과 소품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청춘사진관에서 오말순이 오두리로 변한 다음, 이 오두리가 어떤 장치를 통해 다시 오말순으로 변할까 궁금했는데, 그녀가 바다에서 발등에 상처를 입는다. 그 피가 나온 상처 자국은 늙은 피부라는 설정, 그걸 통해 오두리가 오말순으로 변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 기회의 설정을 손자의 교통사고로 연결한다. 혈액이 부족하지만 맞는 혈액이 없다, 그런데 그 혈액의 주인공이 오두리다, 그렇게 마무리로 진행한다. 손자에게 혈액을 제공함으로써 세대 간의 흐름은 물론 손자에 대한 사랑과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장치로 퍼즐을 맞추었으니 참 치밀한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