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06- 타인의 삶,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의 변화시킨 명곡 한 곡의 힘

영광도서 0 1,530

“난 당신의 관객이에요.”

 

이 영화를 보면 관객도 두 가지다. 무대에 올라 연기할 때 그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 반면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닌 그 배우의 사생활을 훔쳐보려는 관객이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얼핏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타인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주인공은 비즐러다. 비즐러의 이 대사, 고독하게 혼자 카페에 왔다가 마침 그곳에 온 크리스타에게 말한 그 한 마디는 어떤 의미일까? 이 말은 복선이다. 이를테면 “나는 당신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객이오.”'라는, 또한 그가 그녀에게 “당신은 이미 인정받는 배우”라는 말, 당신의 관객을 생각한다는 말은 그가 엿본 사생활에 대한 암시이다. 물론 무의식이건 감독의 교묘한 저의건 이건 비약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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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즐러, 그는 독일이 동서로 나뉘었던 시절 동독의 비밀경찰요원이다. 그의 임무는 남의 삶을 엿보는 일이다. 5년간이나 그는 두 사람, 즉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유명한 여배우 크리스타의 삶을 감시한다. 그들이 나누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들의 침대에서의 신음소리, 모든 소리 하나 빼놓지 않고 그는 모두 듣는다. 아니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의 일상 중에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시도 빠지지 않고 그들을 감시하는 비밀경찰 비즐러, 그는 그렇게 그것을 은근히 즐기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럴만한 줄이 있으니까. 그 유명인사를 비밀경찰이 그냥 둘 리가 없음에도 그는 그렇게 믿는다. 끝까지 믿는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감시하고 통제를 일삼는 권력, 그는 그 업무를 잘해야 한다. 비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유린해도 괜찮다. 그것을 덮으려고, 정당화하려고 협박하고 회유하는 일이 업무인 비밀요원들, 그들은 유명인사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미모의 여배우인 크리스타가 그 대상이다. 그녀의 삶을 엿보고 엿들어야 한다. 또한 그녀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드라이만도 당연히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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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감시하는 그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아가면서, 처음엔 임무지만 그는 유명인사들의 삶을 엿보는 것을 즐긴다. 남의 삶을 엿보기, 호기심이 절로 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알아갈수록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이념과 애국을 위해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진심으로 이 곡을 듣는다면 이 곡을 듣고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 명곡을 들으며 그들이 한 말처럼, 그는 더는 나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반면 크리스타는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 그런 영향력을 가진 고위층에게 몸을 연다. 거리의 여자와 다를 게 없이 몸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그녀, 단지 포장만 잘 된 거리의 여자일 뿐인 그녀, 드라이만은 그녀가 그렇게 외출을 하는 걸 원하지 않지만 그녀는 배우를 포기할 수 없다. 권력은 그 약점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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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삶에 감동받고 사랑을 느끼며 이전의 삶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보고서를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보고서를 어떻게 쓰느냐로 그들을 괴롭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방치한다. 그는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고, 그들을 오히려 보호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진다. 서독 잡지에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실린다. 그에 대해 가장 의심을 받는 건 드라이만, 그 물증을 찾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치지만 그 물증을 찾는 데 실패한다. 그 물증의 장소를 아는 사람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은 결국 드라이만을 잡기 위해 그의 애인 크리스타를 회유한다. 그들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크리스타는 결국 그 증거물인 타자기를 감춘 곳을 밝힌다. 이미 그들의 삶을 훔친 비즐러는 그 비밀을 알지만 그 비밀은 크리스타의 입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녀는 살고자 하는 욕망,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연인 드라이만을 배신을 한 것이다. 때문에 이제 드라이만은 꼼짝 없이 잡히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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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야 말로 비즐러가 나선다. 재빨리 드라이만의 집에 몰래 잠입한 그는 그 물증을 먼저 찾아서 숨겨버린다. 결국 그녀가 밝힌 그 정보는 거짓으로 취급당한다. 그러자 그 곳을 알려준 크리스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드라이만은 그제야 그녀의 배신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그녀를 이해한 그는 그녀를 따라 나온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그녀는 비즐러의 부축을 받으며 죽은 후다. 

 

그리고 독일은 통일 되지만 드라이만은 자신이 철저히 감시당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결국 비즐러의 고백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일로 비즐러는 좌천을 당한다. 그 비밀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비즐러를 위한 작품을 발표한다. 바로 음악에 감동을 받고 나쁜 비밀경찰이기를 포기하고 끝내 드라이만을 지키려 애썼던 비즐러를 위한 책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이다.

 

비즐러, 그는 처음에는 악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원래 악인은 아니었다. 업무만 그러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음악으로 감동을 받고, 선한 사람이 되어 하층민으로 소박하게 살아간다. 전에 지은 죄들을 뉘우치면서 그는 소박한 하층민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신작 선전 포스터를 보고 들어간다. 서점에서 만난 그 책, 그 책의 헌정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그가 그 책을 구입한다. 서점주인이 그에게 “포장해줄까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대답한다. “그건 나를 위한 책이니까 관계없어요.”라고. 비즐러를 바꾼 건 음악이었다. 비록 죄책감으로 뛰쳐나오던 크리스타나는 죽었지만,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살렸다. 비즐러는 나쁜 삶에서 선한 삶으로 변했다.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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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인 당시 1984년, 동독. 비밀경찰(스타지)은 요주의 인물을 감사했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철저히 조사당한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밀고자.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였다고 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를 일삼았던 권력자들, 지독한 통제사회의 한 단면이다. 지금은 어떨까? 방식은 바뀌고 교묘해지지만 어떻게든 권력은 국민을 통제하려 한다. 세뇌를 시키든 여론몰이를 하든 여론조작을 하든 국민의 삶을 통제한다. 다만 어떻게 교묘하게, 어떻게 불편하지 않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게 권력의 속성, 갑의 속성, 가진 자의 속성이 아닐까.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응을 보인다. 피해자 역시 정당할 수도 있고 비열할 수도 있는 방법으로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 크리스타는 자신이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 그런 영향력을 가진 고위층에게 몸을 연다. 그런 면에서 그녀도 결국 그녀가 거리의 여자와 다를 건 없다. 단지 포장만 잘 된 거리의 여자일 뿐이다. 남자는 그녀가 그렇게 외출을 하기 원하지 않지만 그녀는 배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몸을 이용한다. 또한 권력은 그런 약점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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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은 중요하다. 때로 타인의 삶은 그 삶을 접하는 사람, 엿보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 타인의 삶에는 좋은 책이 있고 좋은 음악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것들이다. 타인의 삶, 누구나 타인의 삶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관심을 갖고 산다. 그들의 내밀한 생활을 볼 수만 있다면 보고 싶어 한다. 우린 누군가를 훔쳐보고 싶어도 하고 누군가에게 훔침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관음증 환자이며, 어느 정도는 노출증 환자이니까. 적당히 나를 드러내고 싶고, 적당히 남을 들여다보고 싶다. 그게 우리를 묶어주는 심리이기도 하고 서로를 향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 이상을 넘어 그것을 빌미로 통제하고, 그것을 빌미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관심이 아닌 폭력이다. 지나치면 관음증 환자가 된다. 물론 누구나 어느 정도의 관음증은 있다. 그러니 관음증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볼 양이면 괜찮은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그것도 피해를 주지 않고 그들이 공개한 삶을 엿보기이다. 그건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예술일 수도 있다. 그건 진정한 영혼의 양식이니까. 그러면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선사할 테니까. 한 곡의 음악이, 한곡의 감성을 건드리는 음악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냉혈한 비밀경찰을 선한 사람으로 바꾼다. 명곡이 명작이 그래서 위대하다. 사람이 사람을 바꾸기보다 위대한 작품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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