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15. 우아한 거짓말, 칼보다 예리하게 가슴을 찌르는 무서운 말!
우아하다, 말은 참 좋다. 물론 겉으로 우아하게 사는 이들이야 얼마나 많은가? 알고 보면 우아함이란 위선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진실을 감추고 겉으로만 우아하게 살려면 병들기 십상이다. 그냥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살아야 맘이 편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제법 표정을 감출 줄 아는 동물이다. 때문에 감정을 속이는 병을 안고 산다. 이를테면 “잘 지내나요?”라고 물으면 “슬프지 않아요, 힘들지 않아요, 행복해요. 외롭지 않아요.”라고 답한다. 실제로는 어렵게 살면서 잘 지낸다고 말한다. 사실대로 말 못한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하노라니 속이 멍든다. 힘들면서도 아닌 척 위선으로 가면을 쓰고 산다. 이 얼마나 자신을 좀 먹으며 사는 것인가. 엄밀하게 따지면 너는 너고 나는 난데, 왜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슬픈 동물로 타고 난 것인지. 우아한 거짓말로 나를 감추며 산다. 우아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며 산다. 우아한 거짓말로 남을 아프게 하며 산다.
중학생 천지가 죽었다. 어린 나이에 무슨 세상 고민이 많겠다고 천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천지의 자살,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아이는 멀쩡한데, 하등의 문제가 없을 듯싶은 아이 천지의 갑작스런 자살. 보통 아이들보다 철이 빨리 들어 어른스럽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왜? 누구보다도 어른스럽고 똑똑했던 천지, 죽을 이유라고는 하등 보이지 않았던 천지, 천지가 왜 죽었을까?
천지의 언니 만지는 동생과 달리 남의 일엔 별로 관심이 없다. 가족 일에도 무덤덤하다. 그랬는데 동생이 자살하자 의아하게 생각한다. 자신보다 철도 들고 어른스러웠던 동생, 속 깊은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귀엽고 똑똑하고 어른스러웠던 천지, 천지가 죽고 나자, 언니 만지는 천지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마침 장례식이 끝난 후, 우연히 천지의 친구들을 만난 만지는 가족들이 몰랐던 숨겨진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천지와 가장 친했던 친구 화연과 천지의 죽음의 이유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하고, 그 비밀을 찾으려 한다.
천지가 죽은 자리, 천지가 죽음의 도구로 삼은 털실에서부터 시작한다. 천지는 가끔 털실로 뭔가를 짜곤 했다. 취미로 털실로 길고 넓적한 목도리나 판을 만드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그랬는데 그 털실로 긴 줄을 짜서 그 줄에 목을 매달아 천지는 자살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아무런 말없이 떠난 동생 천지, 어떤 흔적이라도 있을까 찾던 만지는 빨간 털실 뭉치 속에 천지가 남긴 메시지를 발견한다. 다섯 개의 메시지를 숨겼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 쪽지, 천지의 엄마에게 보내는 쪽지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지만 “엄마보다 먼저 가서 미안해. 천지가 없어도 씩씩하게 잘 지내.”라고 쓴 쪽지다. 천지는 살아 있을 때 엄마에게 MP3를 사 달라고 했다. 천지가 엄마 현숙과 나눈 대화, 그 속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천지: 엄마, 나 MP3사주면 안 돼?
현숙: 지금은 안 돼. 전세 보증금 올려줘야 하고......
현숙: 세대 차이 그거 별거 아냐, 주판 대 전자계산기고, 전보 대 휴대폰 메시지야.
천지: 그 차이 무시할 수 없다는 거 엄마도 알잖아. 엄마 지금 다분히 감정적이야.
현숙: 딸이랑 말하면서 까지 최신형 MP3가 내 딸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래야 돼? 괜히 세대 차이 얘기로 힘 빼지 마.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대물림 되는 현상이니까.
천지가 엄마한테 MP3를 사 달라던 말, MP3 때문에 천지가 죽은 걸까? 엄마와 마지막 나눈 대화가 그것이었다니. 그것이 천지 죽음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면, 엄마 현숙은 두고두고 얼마나 아플까.
두 번째 쪽지를 받은 사람은 화연이다. 천지에게 MP3가 필요한 이유, 천지가 MP3를 사 달라는 이유는 화연이 때문이었다. 천지는 화연에게 MP3를 선물하고, 화연은 천지에게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화연은 선의로 비싼 선물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천지와 선물교환을 해서 자신이 천지와 친하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화연은 늘 천지를 부려먹듯 했고 천지는 묵묵히 그걸 참았다. 화연은 나중에 천지를 부려먹는 아이로 소문날 것을 대비한 쇼였던 것이다. 때문에 천지는 엄마에게 MP3를 사 달라고 한 거였다.
천지가 바보처럼 화연을 따른 이유는 천지가 자주 전학을 다닌 탓이었다, 천지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이사가 잦았다. 천지가 이 학교로 전학 왔을 때, 화연은 제일 먼저 천지를 살갑게 맞아주었다. 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천지, 전학 와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천지에겐 화연은 구세주와 같았다. 그런 화연이 너무 고마워서 화연이가 괴롭혀도 천지는 모두 참아주었다. 그럴수록 화연은 천지를 종 부리듯 했고, 천지를 데리고 노는 재미를 즐겼다. 그럼에도 천지는 딱히 다른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면서도 천지는 친구가 없으니까 화연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천지가 죽은 원인 중 하나는 화연과 연관이 있었다. 때문에 천지에겐 MP3가 필요했다. 엄마는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 다음 세 번째 쪽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만지 자신의 것도 있었다. 그 실 뭉치를 가져와 풀어보니 쪽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천지의 죽음의 원인은 만지에게도 있는 셈이었다. 천지는 언니와도 어른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만지: 동생은 리폼 안 되나.
천지: 언니는 음악 저장하면 다 듣기는 해?
만지: 기분에 따라 들으려면 미리 저장해 두는 게 좋아.
천지: 그럼 언니 기분은 200개쯤 되는 거야?
만지: 용량만 받쳐주면 천 개도 될 수 있지.
천지: 그럼 공부하고 싶은 기분은 몇 개야?
천지는 만지에게 친구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만지는 그런 애들이랑 친구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천지는 “그럼 난 누구랑 놀아?”라고 반문했다. 어른스러운 천지를 보면 볼수록 믿음직스럽고 참 착한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 천지가 죽다니. 지나고 생각하니 만지는 그게 후회스러웠다. “천지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성적이 좋아야 남들이 자기 말을 신용하기 때문이라더라. 안 그러면 자기 말은 공중 분해된데.”라고 말했단다.
네 번째 쪽지는? 천지를 싫어하는 티를 낸 미라에게 보내진 쪽지, 화연과 미라, 그리고 친구들, 천지의 자살 원인은 천지의 친구들의 거짓말에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추궁하겠는가? 현숙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아이들에게 “천지 만나면 왜 그랬냐고 묻지 마. 그냥 꼭 안아줘”라고 말하면서 애써 말을 이었다. “참 예쁘다. 니들은 미리 죽지마라.” 그랬다. 친구들의 생일잔치는 2시였는데, 천지에게는 3시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니 천지는 친구의 생일잔치가 다 끝난 다음에 왔고,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했다. “내가 2시라고 적을 걸 3시라고 적었나봐. 미안” 그걸로 끝이었다.
화연과 친구들의 횡포를 참고 참던 천지는 마침 발표 수업시간에 이런 리포트를 발표했었다. 그 내용은 천지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선입견이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쓰이는 선입견 조장방법을 알아보자.
1. 칭찬을 베이스로 깔고 모함을 포인트로 주기'-사람들은 베이스보다 포인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 쟤 공부 잘하잖아. 근데 알고 보면 되게 멍청하다. 베이스: 잘하다지만 포인트는 멍청하다.
2. 과거의 단점으로 현재의 장점 흠집 내기-실습으로 만든 피자마가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경우.
예: 초등학교 때는 박음질이랑 시침질도 구분 못했어.
선입견의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에 대한 설문.
당신은 예비 살인자가 아닙니까?
천지가 화연을 향한 발표였다. 하지만 그것도 또 꼬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천지는 야속한 친구들에 대해 “공기청정기는 있는데 왜 마음 청정기는 없을까?”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직 다섯 번째 쪽지가 남아 있다. 누구일까? 물론 천지가 남긴 메시지는 다섯 개, 그리고 남은 하나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쪽지는 누구에게 보내졌을까? 영화에선 밝히지 않지만 선생이 아니었을까? 선생도 천지에게 슬픔을 주었으니까. 선생이 천지에게 “네가 뭔데 빌려주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찾으러 가야 되니? 구타빨하고 욕빨 언제까지 먹힐 것 같니? 딱 열아홉까지야. 줄여 입든 땡겨 입든 교복빨로 학생자격 유지하는 그때까지라고. 나중에 우연히 동창이라도 만나면 때린 너하고 맞은 애들하고 누가 더 쪽팔릴 것 같아. 졸업 앨범만 보면 알아. 노는 애들은 확 티가 나. 그런 애들일수록 자기 사진 다 오려내지. 기억해.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초짜 선생이 학교에 처음 가면 선생 머리 꼭대기 올라가는 애들 꼭 생기게 마련이다. 조용히 무시하면서 뒤로 나간 아이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도도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선생은 “태도가 그게 뭐야?” 학생은 “내가 뭘요 선생이면 단가!” 선생은 “방금 뭐라 했어?” 학생은 “C발 선생님이면 다냐고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초짜 교사는 정신 줄이 나간다. 노련한 선생은 “너 죽을래?”하면서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낸다. 또는 진짜 잘 나가는 애를 지목해서 “걔 입 다물게 해라!”라고 하면 잘 해결될 수 있지만, 잘못 지목하면 그 아이는 “선생님이 조용히 시키세요!”하면 볼 장 다 본 거란다.
추측으로는 교사에게 원인이 있을 듯하지만 영화는 그것은 밝히지 않는다. 알고 보면 화연인들 이제 후회하지 않으랴? 천지에게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화연, 화연이 그렇게 변한 데에는 화연이 엄마의 매질이 원인이었다. 화연도 어른들의 희생양인 셈이다. 만지는 마지막 쪽지를 찾을 때까지 화연을 죽을 수 없도록 지킬 거라고 화연에게 말한다. 비록 천지는 죽었으나 만지가 지켜주지 못한 동생 천지, “만일 화연이 네가 “천지의 죽음 때문에" 죽었다는 말을 천지가 듣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화연이 네가 죽지 않게 내가 지킬 거야.” 라고 말한다.
그렇게 천지를 보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천지 엄마 현숙은 씩씩하다. 모든 걸 다 털어버린 듯이 씩씩한 척한다. 현숙은 만지에게 “기집애야, 나한테는 니들이 신이었고 종교였어.”라고, 이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아이들은 알까? “울지 않기가 웃기보다, 씩씩한 척 하기가 우울한 것보다 더 힘들어. 죽은 딸년만 자식이냐, 산 딸년이라도 씩씩하게 키워야 할 것 아냐.”라는 현숙의 말에 만지는 “나 죽으면?”라고 묻자, 현숙은 “혼자 신나게 잘 살아야지.”라고 답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현숙의 마음을 만지는 이해한다. 그러면서 철이 없어 모른 척한다.
현숙이 천지를 죽게 만든 화연의 엄마를 만난다. 화연의 엄마는 위로한답시고 “속이야 아리겄지만 날 때 가지고 나온 밥그릇이 그만헌가 보다 혀야지요 뭐.” 라고 말한다. 기가 막힌 현숙은 “가지고 나온 밥그릇은 그냥 저냥 했던 모양인데 누가 자꾸 재를 뿌렸나 보더라고요.”라고 애써 답한다. 그러고는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 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 받을 생각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명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 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라고 쏘아 붙이고 나온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만지가 현숙에게 “엄마 지갑이 조속해 개방돼야 우리 집 밥상이 풍요로워질 거야.”라고 말하자 현숙은 “이건 머리는 꽉 막힌 게 주둥이만 확 개방됐어요.”라고 반박한다. 현숙은 마음이 아리기 때문에 용감한 척 하느라 만지에게 막말을 한다. 여자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쉽지 않다. 그녀는 신사한탄을 한다.
“인생이 하류가 아니라 의식이 하류인 인간들이야. 자기가 쓴 잔머리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줄 알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근데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더라. 누가 누굴 지켜, 그거 웃긴 거야.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있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거야. 생명 다하는 날까지 살아.”
"피한다고 피해질 사람 없고 막는다고 막아질 사람 없어. 뭐 대단한 박애주의자라고 세상사람 다 용서하고 사랑할 필요 없어. 미우면 미운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살 거야."
"나는 팥쥐 엄마라도 콩쥐 편이야. 넘의 가심에 구녕 내고 댕기는 딸년을 우찌 편들어야."
"그 사람덜도 돈 벌려고 허는 장살 턴디, 꼬박꼬박 원비 내는 가시나를 나가라 헐 적에는 뭔 G랄을 떨어도 단단히 떤 것이여."
이렇게 아주 슬픈 두 사람, 엄마 현숙과 딸 만지, 엄마는 딸을 보낸 죄책감으로, 만지는 착한 동생을 보낸 죄책감으로, 아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가슴 아픈 엄마를 위해 만지는 애써 명랑한 척 슬픔을 감춘다. 엄마는 동생을 잃은 만지의 슬픔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써 모두를 초월한 척 한다. 그렇게 둘은 용감한 척 살아가려 한다. 그게 우아한 복수일 수 있으니까.
털실뭉치, 천지가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털실뭉치. 짜고 풀고, 짜고 풀고, 마치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처럼. 천지에겐 친구들과 지내기가 엉킨 털실처럼 안 풀렸던 거다. 풀면 또 꼬이고 풀면 또 꼬이고 그러면 또 푸는 천지. 그저 수더분하게 풀리면 풀리는 대로 꼬이면 꼬이는 대로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털실처럼 얽히고설킨 관계, 인간관계란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 품을 떠난 순간부터 이런 저런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는 여러 상황으로 종잡을 수 없게 발전한다. 그 관계에서 누군가는 아프다. 물론 누군가는 즐겁지만.
관계의 눈뜸, 그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를 보듬는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를 철든 사람이라고 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역설적으로 세상 살기 어렵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아는 만큼 더 힘들다. 그러니 무지한 채, 사는 게 낫다. 바보처럼 즐거우면 즐겁게, 슬프면 슬프게 사는 게 좋다. 이것저것 아는 게 문제다. 철든 게 문제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알면 알수록 세상살이는 더 아리고 떠 쓰리고 슬프다. 그래서 차라리 말을 감추고 표정을 감추고 산다. 그렇게 사노라니 세상 살기 참 힘들다.
겉만 당당하면 뭐하나 속도 당당해야지. 차라리 안 당당하면 기죽어서 사는 게, 속상하면 속상한 티내고 사는 게 덜 병 덜 들 텐데. 남의 마음에 맞추어 주려고 감정을 속인다. 하고 싶은 말 대신 우아한 거짓말로 속내를 감춘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이 병든다. 병든 마음은 점점 깊어 더는 세상 살기가 싫다. 우아한 거짓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들 또는 글들, 그 말들은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 힘이 되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아픔이 되기도 한다. 선의든 악의든 말과 글은 오간다. 선의로 하는 말이야 그렇다 치고 악의를 담고도 아닌 척하며, 위해주는 척하며 건네는 말들, 그 말들은 상대에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이듯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 우아하지만 결코 우아하지 않은 악의적인 거짓말, 그 때문에 사람이 아프고 세상이 아프다. 울고 싶으면 그냥 울지.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말하지. 슬프면 슬프다고. 왜 우아한 척 살아야 하냐고? 한 아이를 자살로 몰아간 상황, 거기엔 알고 한 말이든 모르고 한 말이든, 가족도, 친구도, 학교도 한 몫 하듯이,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이웃은 이웃대로 한번쯤 돌아보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