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16- 찌라시: 위험한 소문, 진실을 잃은 치명적인 살인 도구
사실과 진실, 사실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가? 사실과 진실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럼에도 이 말을 동일한 말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진실이란 말은 무조건 좋은 걸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단어 자체도 사실보다는 진실을 좋아한다. 물론 피상적으로는 진실이란 말이 좋다. 성서에도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란 구절이 있긴 하다만. 진실이라고 좋은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때로 진실은 거짓보다 추악할 때도 많다. 누군가 ‘진실을 알아 봐야겠다’ 라고 한다면 그 진실은 좋지 않은 의미다. 이럴 땐 ‘사실을 파악해야겠다’ 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쓰임새는 어떠하든 사실은 확인 가능한 그 무엇을 말하는데 반해 진실은 당사자가 아니면 확은 불가능한 것, 사실은 객관적인 데 반해 진실은 주관적인 것을 말한다. 왜곡된 사실의 실체, 그것이 진실이요.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당사자만이 아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이렇게 저렇게 왜곡된 사실이나 진실이 때로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아니 치명적인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준다.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 우곤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게다가 끈질긴 집념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성격이다. 무엇에든 열정적인 그는 자신을 믿고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여배우 미진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건다. 그녀의 메니저를 자임한 그는 어떤 밑바닥 일도 마다 않는다. 미진에게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열정과 집념, 최선의 노력 덕분에 미진은 제법 잘 나가는 배우로 성공, 어느 정도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다.
그가 키운 잘 나가는 여배우의 염문설이 터진다. 대형 염문설이다. 메니저인 우곤조차 모른 여배우 염문설, 그녀가 키운 미진과 유명 정치인 남정인 의원과의 염문설이다. 그가 그녀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지만 그녀는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사건은 커질 대로 커져서 그녀가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나 방송은 그녀의 출연을 거부한다.
우곤은 사태를 수습하러 급박하게 여기 저기 뛰어다닌다. 그렇게 수습이 되나 싶었는데, 이번엔 여배우 미진의 동영상까지 돈다. 사실이 아닌데, 진실은 그게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사실이라고, 진실이라고 점점 확산된다. 밑바닥부터 우곤은 진실을 캐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찌라시를 만드는 무리들의 짓임을 그는 알아낸다. 이놈들은 이렇게 염문설 등 다양한 설을 만들어 유포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아냈으나 수습엔 실패한 우곤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그가 미진을 찾는다. 여기도 저기도 없다. 그가 그녀의 욕실 문을 연다. 그런데 이미 그녀는 싸늘한 시체로 목을 맨 상태다.
보도는 염문설의 여배우가 자살한 것으로 나간다. 우곤이 인생 전부를 걸고 키운 미진의 자살, 분통이 그를 미칠 지경으로 만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우곤은 그녀의 복수를 다짐하고 다짐한다. 그는 일단 찌라시를 만든 업체를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알고 보니 업체에선 일을 수주 받아 인쇄한 죄밖에 없다. 다만 그 덕분에 우곤은 찌라시 사장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곤 사장의 도움을 받아 그 루머를 만든 범인을 찾으려 애쓴다. 그렇게 따라가 보니 청와대의 비서관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는 복수를 위해 분연히 나선다. 하지만 개인이 권력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 목숨의 위험을 느끼기를 여러 번 그는 그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복수를 위해 분연히 다시 일어선다.
찌라시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도움으로 우곤은 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대기업과 정부와의 연결을, 그들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남정인 의원 제거작전이 있었다는 것을, 하필 그 일에 연루된 여배우는 아무 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을 알아낸다. 우곤은 훔쳐낸 파일을 확인한다. 결과는 여배우는 자살이 아니라 추악한 놈의 강제 추행에 이은 살해라는 것, 그것을 덮으려 자살로 위장한 것임을 밝혀낸다. 한 번의 진실을 왜곡한 것이 점차 확산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건 99%가 조작에 의한 것이란다.
우곤의 노력으로 남정인 의원을 곤경에 빠뜨리려 꾸몄던 계략은 들통 난다. 덕분에 이 사건과 연루된 추악한 인물들은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사건의 소용돌이에 있던 남정인 의원은 자신의 비밀을 밝힌다. 그에겐 혼외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여배우 미진이었다는 것이다. 남정인 의원은 단지 혼외의 딸을 만났을 뿐인데, 그것이 염문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힌다.
나름 미진의 복수를 마친 우곤은 다시 매니저로 활동하며 정상을 찾아간다. 복수를 위해 현장에서 찌라시를 위한 정보를 주고받는 일에 관여한 경험으로 “짜리시가 처음부터 찌라시는 아니다. 하지만 짜라시는 진실을 잃는 순간 그건 짜리시가 된다. 숨겨진 비밀이 많을수록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어나게 마련이니까 찌라시는 계속 만들어진다.” 라고 결론을 내린다.
진실의 왜곡, 세상을 움직이는 건 99%가 조작이라니, 그렇다면 세상엔 1%의 진실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세상이 무섭다. 아니 사람이 무섭다. 조작된 사회에 우리는 산다. 나도 늘 진실을 왜곡하며 산다. 나의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며 산다. 그렇다 치자. 개인이 진실을 왜곡하며 위선적으로, 가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건 나쁜 건 아니다. 진실을 감추지 않고 진실대로 말하고, 가식적으로 살지 않고 진실대로 산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테니까. 인간이란 존재는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서 하고 싶은 그대로, 진실대로 말하고 진실대로 행동한다면 세상은 난장판이 될 테니까, 사람인 고로 진실이란 스펙트럼도 고상함에서 아주 추악함까지, 지고한 아름다움에서 지극히 추함까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 적당히 위선적이며 가식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이다.
그러나 적어도 왜곡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고, 밝혀야 하는 진실이 있다. 적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사실의 왜곡은 없어야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그만큼 모든 도구가 발달한 지금, 사이버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다중매체, 인터넷 시대에 퍼지는 정보들이 진실을 잃는 순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얼마나 어느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살인 도구로 작용하는지, 누군가를 사회에서 생매장 시킬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것이 진실을 잃은 정보라는 잘 보여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