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18- 일생에 단 한번, 남자가 사랑할 때, 하류 인생의 진실한 사랑
그리스신화의 사랑의 신 에로스는 어리다. 다른 신들은 일 년 만에 완전한 어른이 되는데, 에로스는 프시케를 만나 사랑을 하고야 성인으로 변한다. 그만큼 사랑은 어리다. 어린 만큼 유치하다. 사랑은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아이처럼 유치하고 때로 어벙하다. 그래서 사랑은 쉽게 삐치기도 하고 쉽게 사과하기도 한다. 그럼 만큼 쉬운 듯 어렵다. 유치한 듯 어른스럽다. 복잡한 듯 보다 단순하다. 때문에 때로는 철없는 남자도 사랑에선 순수하고 진실하다. 어쩌면 지적인 남자보다 철없는 남자가 사랑에선 보다 믿을 만하다.
단 한 번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 이 남자의 진심, 그 여자 지켜주고 싶다. 아버지는 버스 기사, 형은 이발사, 동생은 양아치 비슷한 사채업자 심부름꾼, 불량학생 조카, 이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산다. 그나마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지만 버스 노선만큼은 잘 기억한다. 덕분에 버스 운전은 잘한다. 형은 이발사 일 잘한다. 동생은 남이 잘 못 받아 오는 돈도 잘 받아 낸다. 집안 상황을 보면 개념 없는 것 같으나, 구성원 모두 자기 일은 똑 소리 나게 잘한다.
그런데 막나가는 집안이다. 아버지랑 아들들이랑 손녀랑, 조카랑, 이들 사이엔 상하관계가 무의미하다. 가지가지 하는 집안이다. 그저 막말이다. 욕이 일상이다. 모든 말은 반말로 통한다. 소위 혀 고인 게 아니라 혀 뒤틀린 집안이다. 조카란 여자애는 입에다 욕을 달고 다닌다. 해서 삼촌이 “욕 좀 안 하면 안 되니?” 하면 “그럼 나 보고 말하지 말라는 거야.” 혀 짧은 말로 대든다. 아버지가 형하고 다투면 동생 왈 “한 살이라도 더 잡수신 아버지가 이해해.” 라고 버르장머리 없다. 동생하고 형이 드잡이를 하면 아버지는 “안 봐주고 실제로 싸우면 니가 형 이기겠더라. 걔는 좀 맞아야 돼.”라고 부추긴다.
이들 모두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니 기적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외부의 적이 생기면 진정한 가족애를 불사른다는 점이다. 위험한 듯 깨지지 않고 이 가정이 유지되는 비결일 거다. 모두 대책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럭저럭 꾸려간다. 때로 오해로 드잡이를 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한 가족이다. 형은 결혼하여 살고 있다. 그 형수와 태일이란 시동생은 학창시절부터 흉허물 없는 사이다. 그런 시동생과 형수가 한 집안에 산다. 가끔 형수가 좀 잘 챙겨주니까 형이 보기엔 좀 그렇다. 그래도 뭐 이 남자 그런 거 모른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으니까 별일 없다.
그런데 이 남자, 아주 양아치 같은 이 남자, 사채업자 돈 받아주는 심부름꾼이 사랑에 빠진다. 사랑 고백도 할 줄 모르는 이 남자, 자기 식대로 여자에게 접근한다. 그의 방식이란 게 세련될 리 없다. 양아치 식으로 접근하니 매번 실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대로 물러설 놈이 아니다. 이번 상대는 갑을 관계에서 을인 여자, 빚을 진 여자다. 결국 상황이 꼬이자 여자는 남자와 각서를 쓰고 만나주기 시작한다. 만남의 조건은 빚 대신에 만나주는 만큼 그 빚을 까주기다. 여자는 그냥 만나서 같이 밥 먹어주고 얘기 나누고 같이 걷는다.
남자는 “우리가 70대냐, 남들이 하는 그런 것도 하는 거지.”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래서 그의 의도대로 연애 비슷하게 발전할 것 같다가 만다. 그럴수록 상황은 더 꼬이니까 서로 양보해서 그냥 걷고 이야기하고 뭐 그렇다. 쉽지 않은 사랑, 드디어 찬스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는다. 혼자 외로이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야 하는 그녀 옆에 그가 상주로 앉는다. 가장 힘들 때 함께 있어주는 것, 남녀가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데는 그게 제일이다. 그런 남자를 보니 여자의 마음이 조금 열린다. 그래도 이 남자 아주 밉지는 않다. 표현은 잘 못하지만 은근히 사랑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아저씨 나 사랑해?”라고 묻자, 그는 “그래 사랑해 C발.”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게 사랑은 적극적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한 사람만 의지하면서 살아온 이 여자 사랑이 시작되지 아주 순정파다. 그렇게 사랑은 무럭무럭 자란다. 여자는 살 궁리를 하고 치킨 집을 내기로 한다. 그러자 이 남자, 그 치킨 집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만 이 남자, 무리수를 둔다. 3000만 원 때문에, 여자가 그만 손을 떼라는데도 말을 안 듣고 사채 사장하고 큰 건 하나 더 벌인다. 그러다 결국 그는 그만 감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풀려난다. 시한부 인생이기 때문에 형기를 다 안 마치고 풀려난 것이다.
그가 여자에게 찾아온다. 하지만 여자는 냉정하다. 그는 말한다. “나한테 하루하루가 어떤 건지 아냐?”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그동안 내 하루하루가 어땠는지 알아. 꺼져줄래.”라며 쌀쌀 맞다. 이 남자, 집에서도 쫓겨난다. 그를 쫒아내는 악역은 형수가 맡는다. 형만 자신을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형수가 나가란다. 죽을 날은 다가오는데 그는 집을 나가야 한다. 신세가 처량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시한부라는 걸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집에서 쫓기다시피 나오는 그를 조카가 따라온다. 조카가 그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하는 말 “이거 아빠가 삼촌 주래. 엄마한테는 절대 비밀이래. 삼촌 용돈 없을 거라고.” 그리고 “삼촌 그리고 이거 엄마가 삼촌 주래. 아빠한테 절대로 말하지 말래. 엄마랑 아빠랑은 대화를 안 하나봐.” 라고 말을 잇는다. 조카가 양쪽 심부름을 다하는 거다. 알고 보니 형수도 형도 마음이 따뜻하다. 이게 가족이다. 마음은 있으면서도 서로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이 남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치킨 집 내주고, 조카에게 조카가 그리 원하는 스마트 폰 선물하고 싶다. 이 남자는 알고 있다. 친구이자 사채업자 사장이 지난 건에서 자기 몫을 안 주려고 다른 사람을 보내 자기 것을 빼앗아 갔다는 걸. 그는 그에게 앙갚음을 한다. 친구가 차린 공장에 찾아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힘으로 안 되니까 이제 무릎을 꿇는다. 친구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고백한다. 그러니까 자기 돈 삼천만 원을 돌려달라고.
이 남자,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맞선을 보는 장면을 본다. 그리고 돌아선다. 쓰러진다. 병원에서 깨어보니, 그를 살려준 건 그녀다. 수술을 하기로 한다. 그에게 그녀가 묻는다.
“먹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 너!”
“하고 싶은 건 없어?”
“하고 싶은 거, 음 걷고 얘기하는 정도.”
그녀가 처음 그에게 제안한 말인데, 그는 수술을 받지만 결국 죽고 만다. 그가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말들이 애절하다. 그 말을 장례식에서 아버지가 그녀에게 전달한다.
“아버지 장가 갈 뻔도 했었다. 그런데 C발 내가 망쳤어. 원래 내 인생이 G랄 맞잖아. 돈이나 왕창 가져다 여자한테 안겨주려고 했는데, 나 없어도 아버지가 잘 해줘. 그 애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아버지 해줘. 아버지의 아들이 진짜 사랑하는 여자야. 미안해 아부지.”
그렇게 그의 가족은 그를 보낸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게 사랑이다. 사랑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없어도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거니까.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픈 거니까.
사랑은 모른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각자의 마음에 또아리를 튼 사랑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70억이 사랑을 한다면 그만큼의 종류의 사랑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모습을 잘 못 알아본다. 그래서 서로 오해하고 무시한다. 누구의 사랑이 진솔한지, 진실한지, 그걸 몰라서 때로 사랑의 실패를 겪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안에 담고 있는 사랑의 모습을 못 봐서 진짜 아닌 가짜 사랑, 진실한 사랑이 아닌 위선의 사랑을 만나 평생을 아리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라고? 중요한 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도 중요하지만, 보다 그의 진심을 들여다보려 애를 써야겠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겉포장으로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포장이야 어떤 모양이든 그 안에 담긴 선물의 모양을 보려 애써야겠지. 실제로 많은 이들은 포장지나 포장 박스를 사랑하지, 그 내용물을 확인하려 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이들, 후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철없는 것 같은 사람, 무식한 것 같은 사람, 어쩌면 그런 이들의 사랑이 더 진실한 것 아닐까? 사랑도 지식에 따라 진화하니까, 사랑은 늘 상황에 맞게 변신하니까, 변신하지 않는 내용을 잘 봐야겠지. 남자가 하류라고 사랑도 하류로 하지 않는다. 남자가 상류라도 사랑은 양아치처럼 할 수도 있다. 남자가 지식은 출중하여도 사랑은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사랑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