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19- 영웅, 천하의 시작, 모든 것의 경지에는 인간애가 있다
영웅, 이전에는 주인공이란 의미를 함께 의미했던 단어 히어로, 분명 영웅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남다른 신념이 있어야 하고, 남다른 열정, 남다른 기개, 남다른 포부가 있어야 한다. 시국이 편안할 때 남다른 척 하는 사람들은 영웅이라기보다 그저 나서기 좋아하고 위세 떨기 좋아하는 위선자들이 많다. 요즘이 바로 그때다. 모두들 애국자인 양 설쳐대는 이들을 보라. 저들이 정말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제일 먼저 제 몸 보호를 위해 내달려 도망갈 사람들은 아닐까 싶다.
해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이들은 정말 자기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지 않는다. 난세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희생을 딛고 새로운 이상, 새로운 사상,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저 난형난제, 소위 잘난 사람들이 서로 각자의 세계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싸움 와중에 피터지게 희생당하는 건 소시민들이다. 중국의 춘추 시대가 그러했다. 허구 헌 날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그들의 기득권 싸움에 힘없는 백성들은 그 전쟁에 동원되어 맥없이 반항 한 번 못하고 죽어가야 했다. 난세, 서로 세력을 넓혀가려는 왕들, 그중에 그릇이 제일 큰 놈이 천하를 얻을 것이다. 그 전에는 그저 백성을 괴롭히는 전쟁광에 불과하다.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되려는 이들, 전국 7웅이라 불렸던 막강한 일곱 국가들이 지배하던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 한다. 각각의 왕국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전쟁을 일삼았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는 나라는 진나라였다.
진나라 왕 영정은 대륙 전체를 지배하여 첫 번째 황제가 되려는 야심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영정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다. 전설적인 무예를 보유하고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노리는 세 명의 자객이다. 은모장천, 파검 그리고 비설이 바로 그들이다. 이에 영정은 자신의 백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백보 금지령을 내린다. 게다가 이들 목에 현상금을 걸어, 그들을 사냥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지방에서 백부장으로 녹을 받고 있는 미천한 장수 무명이 정체 모를 세 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와 왕궁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진나라 왕을 죽이려고 노리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일반 시민들은 꿈도 못 꾼다. 적어도 그에게 접근하려는 이들은 내로라하는 불세출의 영웅들이다. 그들은 절치부심 실력을 키운다. 진 왕 영정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니 당연히 영웅이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무명이다. 그의 정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그의 이름이 무명이다. 그가 진 왕 영정을 노린다. 무명은 누구에게든 10보 거리에 접근할 수 있다면 어김없이 그를 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진 왕 영정 앞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왕을 노리는 이들이 왕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한다. 모두 출중한 영웅들이지만 그들 중 가장 확률이 높은 사람이 그 임무를 맡기로 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접근해야만 한다.
그가 왕과의 거리 100보 금지령을 넘어서기 위해 일단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왕을 죽이려는 암살자를 죽임으로써 왕의 신임을 얻어야 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데, 그 작전을 짠 것이다. 그러니까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동지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 증거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 장천과의 싸움이다. 조나라 출신이면서 진나라 인으로 신분을 만든 무명은 진나라 무사들을 이끌고 그에게 도전한다. 그와의 심내전은 검술과 음악의 만남이다. 검술도 음악도 최고의 경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다는 의미다. 둘은 몇 합의 검을 겨룬 뒤 다시 대치해 서서 눈먼 악사에게 음악을 청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결에 돌입한다. 실제로 검과 창을 맞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둘은 마음속으로 비무를 한다. 칼은 오가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칼과 칼이 실제로 부딪히는 것처럼 치열하고 격렬하다. 이 심리적인 대결에서 진다면 호흡이 흐트러져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만큼 칼은 없으나 상대를 이미 공격하는 셈이다. 생명을 걸고 하는 전투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영웅들을 물리치고 무명이 그렇게 100보를 넘는다. 이제 다음에 그를 위해, 아니 그의 대의를 위해 희생할 사람은 바로 최고를 자랑하는 무술의 고수 파검과 비설 대결이다. 한때 진나라 왕을 암살하려고 침범하여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을 죽이지 않고 돌아간 적이 있다. 무술의 최고수 파검과 그의 연인 비설을 무명이 처치하고 그것을 증명한다면 왕은 그를 거두어 쓸 것이다. 무명은 그들을 처치한 것을 왕에게 설명한다.
그 대결인 즉 수상비다. 물위를 걷는 절정의 신법으로 호수를 가르며 펼쳐내는 검의 기술이다. 살에 물이 닿으면 지는 대결이다. 그 대결은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르는 대결이건만 대결 장면은 극히 아름답다.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결투를 펼치는 영웅들의 모습은 자못 아름다운 산수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이들은 서로의 높은 무공을 서로 인정한다.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살에 물이 닿으면 지는 것이다. 둘은 검으로 물방울 튕겨내며 힘을 겨루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튄 물방울 하나가 파검의 연인 비설의 얼굴에 닿는다. 그러자 파검은 자신의 연인의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낸다. 이를 보고 심기가 뒤틀린 무명은 물에 빠지지만 승리는 이미 무명의 것이다.
파검과 비설의 검법은 서예와 연결되어 있다. 서예의 극단이 검술의 극단과 만난다는 의미다. 마지막 글자를 쓰기까지 진나라의 공격으로 쏟아지는 화살 아래서도 글씨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한다. 무명이 재현하듯이 그 과정을 왕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왕은 그건 하나의 몸짓일 뿐 파검과 비설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무명이 다시 뒤집는다. 무명은 자신이 왕을 암살하려는 암살자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기는 그를 죽일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럼에도 파검이 그를 죽이지 말라는 언질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가 그에게 부탁하면서 남긴 말이 "천하"라는 것이다. 그 천하의 의미란, 한 사람의 고통은 천하의 대의를 위해선 사소한 것이다. 자기를 암살하려 했던 파검이 자신의 뜻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진 왕이 감동한다. 주변에 그리 사람이 많아도, 측근이 그리 많아도 자신의 대의를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자기를 원수로 생각하는 파검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었다는 것으로 그는 만족한다. 왕이 파검이 썼다는 족자를 풀어 검자를 풀이한다.
1. 인간과 검은 하나다. 그러면 수중의 풀로도 칼을 삼을 수 있다.
2. 검은 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잡는 것이다. 즉 검술의 최고의 경지는 살생이 없는 평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왕은 무명을 믿지 않았던 건 앞에 타고 있는 촛불들에서 살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 왕은 그에게 자기 칼을 던져주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천하를 위한 결정은 무명에 맡긴다면서, 10년이란 세월을 자기를 지켜주었다는 그 칼을 기꺼이 무명에게 넘겨준다. 무명의 결정에 따라 진 왕은 마지막을 고할 수 있다.
무명이 칼을 빼어들고 단숨에 뒤돌아 서 있는 진왕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를 뒤에서 찌른다. 하지만 그건 칼등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내 선택이었소. 최고의 경지를 잊지 않기를 바라오.”라며 물러난다. 그는 결국 왕을 죽이지 않고 진나라 군사들이 에워싸인 가운데 밖으로 나온다. 같은 시간 비설과 파검은 무명의 거사가 실패했음을 신호를 통해 알아차린다.
비설은 끝까지 진 왕을 죽이려했다. 그녀의 온 가족은 진나라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검은 진 왕을 죽여선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천하를 얻어야 할 인물이 진 왕이라고 파검은 믿기 때문이다.
비록 연인 사이지만 더는 참지 못한 비설이 파검에게 다가온다. 그에게 결투를 청한다. 무명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거사를 포기하게 만들었냐면서 파검에게 칼을 뽑으라고 재촉한다. 비설의 재촉에 마지못해 칼을 뽑은 파검, 일이 끝나면 비설의 고향에 돌아가 조용히 살자던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인다. 비설이 선공에 나선다. 그녀가 칼을 겨누고 파검을 공격한다. 극히 짧은 순간 파검은 칼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여지없이 비설의 검은 파검의 가슴을 뚫는다.
그녀는 파검에게 왜 자신이 공격한 칼을 막지 않았느냐며 비통하게 외친다.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녀가 파검을 등 뒤에서 부축한다. 그리고는 그리스 신화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처럼, 세익스피어의 걸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처럼 그녀는 파검의 가슴에 꽂힌 검에 힘을 주어 더 깊이 찔러 자신의 가슴까지 찌른다. 그들의 시녀가 다가오기 전에 두 사람은 함께 절명한다. 그들 두 사람은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명은, 순순히 진나라 군사의 포위를 당한다. 진 왕은 그를 살리고 싶다. 하지만 진나라 군사들이 외친다. 왕을 암살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죽여야 한다고, 그 법을 만든 건 왕이시라고, 그러니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고. 결국 천하를 위해 아까운 영웅을 죽이라는 신호를 보내야만 하는 진 왕. 결국 진 왕을 죽일 수도 있었던 무명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무엇을 보았다, 그때 기억에 남은 것을 정보라고 한다. 이 정보는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된다. 그러니까 뭔가를 안다고 할 때 우리 기억엔 이미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 영화의 이미지 중 가장 강한 이미지는 색깔이다.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녹색, 검정색으로 각각은 영화 속에서 인물의 상징과 심리를 나타낸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다섯 가지 색깔을 상징으로 깔았다고 전한다. 우선 색깔의 이미지를 인물들에 대입하는 재미를 먼저 감상한 다음,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철학을 느끼자. 색깔이 보여주는 의미는 생략한다.
이 영화는 천하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온갖 액션으로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던 배경을 영상에 담으며 예술의 경지에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한 영화다. 검술이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검술은 예술에 이른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액션은 가히 예술이다. 마치 무용을 하는 것 같다. 마치 시를 읽는 것 같다. 한 편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며 한 곡의 음악을 듣는 듯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로 승화한 듯하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이제 검술은 상대를 살생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경지,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면 검 끝에 사랑이, 질투가, 복수가, 분노가, 존중이 머문다. 이러한 복합적인 심리가 한데 뭉치니 그것이 예술이다. 그러니까 검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예술로 승화한다. 서로 어우러져 음악이고, 마음을 한데 모으니 서예로 연결되고, 최고의 경지는 평화라는 점이다. 천하를 얻되 최고의 경지인 평화, 살생이 없는 평화여야 한다는 철학을 적절히 담은 영화다. 그러니 진의 왕은 천하를 얻을 자격을 제대로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영웅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위대한 한 나라가 탄생하려면 희생은 불가피한데, 그 희생을 어떻게 하게 하느냐가 정치의 예술이 아닐까? 자칫 그릇된 영웅심은 불필요한 희생을 가져온다. 질투에서 비롯된 소영웅심, 복수로 인한, 개인의 정렬을 위한 소영웅심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반면 최고의 고수는 감히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할 줄 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이 순결한 사랑이라면, 나라의 장래를 사랑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함은 애국이다. 파검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비설과의 사랑을 완성하고, 나라의 장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무명은 진의 왕을 살려둠으로써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초석으로 남는다. 하나의 관념, 하나의 국가의 완성에는 이러한 희생이 자리 잡는다. 그 희생을 통해 평화는 온다.
진실한 사랑에도, 위대한 애국에도 자기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희생은 자발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발적인 희생보다 희생을 강요하며, 상대를 적대시하는 게 우선이다. 때문에 늘 반목과 대립이 상시로 일어난다. 평화는 요원하다. 적을 품은 진의 왕의 위대함이 우리에겐 없다. 적에게 칼을 넘겨주는 대담함이 상대로 하여금 존경을 이끌어내고, 그 존경심은 칼끝을 스스로에게 향하게 하는데서 얻는다. 진정한 예술과 같은 칼끝은 상대를 향하지 않으며 항상 자신을 향한다. 검으로 다스리는 자 검으로 망하고, 검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자 검으로 평화를 이룬다. 그것이 최고의 검술의 경지요, 곧 예술이다. 지금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칼끝을 겨누는가? 마음에 무엇을 담았든 그 칼끝은 나를 향하여야 한다. 상대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성찰해야 나라는 왕국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나를 언제 어디서 내려놓아야 할지를 발견하는 진정한 자기희생이 최고의 검술이자 최고의 예술이다. 모든 것의 경지는 예술에서 만난다. 정치도 예술이다. 우리도 예술 한 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