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24-시절인연,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된다는 인연의 아름다운 모습!
인연은 있는 걸까, 아니면 우연일 뿐일까? 중국 영화는 인연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작위적인 것 같지만, 그 인연이 때로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영화도 제목 그대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연이란 비록 헤어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필연을 말한다.
만남, 아주 돈 많은 유부남의 아이를 밴 여자, 중국에서는 출산을 할 수 없는지라 미국으로 건너온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난 덕분에 본처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으나 무한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받았으니 그녀가 믿는 구석은 돈뿐이다. 시애틀을 찾은 그녀, 임신 중인 자자. 막무가내에 철없는 여자처럼 그녀는 행동한다. 그녀가 공항에서 처음 만난 운전기사 프랭크, 그것이 그녀와 그의 첫 만남이다.
그녀는 프랭크의 도움으로 힘겹게 산후조리원에 머물며 사람들과 부대낀다. 그녀는 그곳에 머무는 이들과 티격태격한다. 그럼에도 그 중 그곳 주인아줌마는 그녀에게 잘해준다. 그녀는 돈 많은 갑부의 정부다. 철없이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임신까지 했으나 그 남자는 유부남이다. 덕분에 돈은 얼마든 쓸 만큼 쓴다. 그녀가 돈이 많아서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려 하니까, 그녀의 돈을 보고 잘해줄 수도 있다고 의심을 가질 만하지만, 주인아줌마는 순수한 것 같다. 단순히 그녀의 돈 때문에 그녀에게 잘해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같다. 그러면서 돈만 알고, 돈을 내세워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 같던 그녀도 서서히 변한다. 그녀는 혼자 아이를 낳느라 애쓰는 임산부를 기꺼이 도와주기까지 그녀의 인간미도 살아난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인간미를 찾아간다.
그녀는 같은 집에 사는 전직 의사 프랭크와도 알고 지낸다. 또한 프랭크의 딸과도 친해지면서 프랭크와 은근히 가까워진다. 프랭크는 아주 착한 남자, 말도 별로 없는 남자다. 전직 의사인 그는 아내가 돈을 더 잘 벌기 때문에 육아를 담당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어지자, 이 착한 남자는 여자로부터 소외당하고, 무능력한 남자 취급을 받았다. 끝내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그는 자신의 딸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이 남자, 생활을 위해 운전을 하는 이 남자와 자자, 그녀의 만남이 시작된다.
성격이 쾌활한 그녀는 프랭크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녀는 프랭크에게 ‘여자에게 버림받은 것은 너무 착해서라며, 남자가 너무 착하면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며 그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프랭크가 다시 의사로 복직하기 위해 시험을 보러 뉴욕으로 간다고 하자, 명랑한 그녀는 프랭크의 딸을 데리고 뉴욕으로 함께 가겠단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서란다. 프랭크는 시험을 보러 가고, 아이는 그녀와 동행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가 그녀에게 하자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려는 대로 한다. 그러자 아이는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손바닥에 helf라는 단어를 써서 경찰에게 보여준다. 아이는 그녀를 마치 인신매매범인 양 만들어 그녀를 골탕 먹인 것이다. 경찰은 그녀가 아이를 납치한 줄 알고 그녀를 체포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그녀는 꼼짝 없이 아이와 함께 경찰서로 간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프랭크에게 혼이 그녀는 혼 날 대로 혼이 난다. 미안하다며 그녀는 멋진 숙소를 잡고 두 부녀를 데려 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카드가 결제가 되지 않는다. 정지당한 것이다. 그녀의 카드가 결제되지 않은 이유는 남자가 포탈 혐의를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제껏 부자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임신 시킨 남자가 준 카드 덕분이었는데, 카드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셋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빈털터리다. 그녀는 애인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에게 희망을 주려고 프랭크는 인디언 방식이라며 그녀의 점을 쳐준다.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도구, 사실은 자석을 이용한 눈속임이다. 비록 빈털터리가 되었으나 그녀를 따뜻하게 도와주는 주인아줌마와 프랭크, 이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근근이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꼭 낳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완전히 변한다. 돈에만 의지하며 살아가던 그녀가 조산원에 묵는 대신 거기에 궂은일을 하며 비용을 벌기로 한다. 프랭크에게도 빚을 졌으니 그를 도와 노점상을 하기도 한다. 오만하고 사람을 무시하며 천방지축이던 그녀가 완전히 변한다.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한 여자로 변한 그녀를 바라보는 조산원 주인아줌마, 그리고 프랭크의 시선은 따뜻하다.
프랭크의 아내가 재혼을 한다. 이 바보 같은 남자 전 아내를 위해 드레스 심부름을 해준다. 굳이 그 심부름에 따라가겠다는 그녀, 드레스 가게에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남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내의 재혼식에도 함께 따라간 그녀는 당당하게 나서서 프랭크의 애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못된 아내를 골려주려는 의도다. 프랭크의 아내는 내심 프랭크가 어리고 예쁜 애인, 게다가 임신한 애인을 데리고 나타났으니 그리 기분은 좋지 않다. 피로연에서 누구보다 다정하게 프랭크의 품에 안긴 자자를 보며 내심 그의 전 아내는 부러워한다. 그런데 그만 자자가 쓰러진다. 그녀를 안고 병원으로 달리는 프랭크, 황달과 혈압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녀는 프랭크를 보면서 “꼭 의사 돼요, 당신은 그게 제일 멋져요.”라고 말하며 분만실로 들어간다.
가까워진 두 사람, 그리고 프랭크의 딸, 셋은 다정하게 지낸다. 행복한 생활을 하며 보내는 그녀에게 애인으로부터 사람이 온다. 애인이 여자와 이혼을 했으니 돌아오란다. 그녀는 프랭크를 떠나 중국으로 가려 한다. 두 사람의 그윽한 눈길이 아리다. 그럼에도 그녀는 중국으로 떠난다. 떠나면서 그녀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당신의 수염 깎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이 보고 싶어요. 당신은 내 인생의 가장 머진 남자에요.” 그렇게 그녀는 떠난다.
중국으로 돌아온 자자, 하지만 남편은 밖으로 돌고 집에는 거의 없다. 2년여의 그런 세월, 그녀는 불만이 쌓인다. 그녀는 남자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온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그녀는 전에 가보고 싶었으나 가보지 못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상에 가려고 한다.
한편 프랭크는 의사 시험을 통과해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며 산다.
깔끔하게 수염을 깍은 프랭크가 딸을 데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다. 거기에 가니 그녀가 생각난다. 프랭크의 딸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자자에게 보낸다. 마침 아들과 함께 그 빌딩에 올라온 그녀, 그녀는 그 사진을 받자 부랴부랴 두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 빌딩 정상이 넓으니 빨리 발견할 수 없다.
프랭크와 딸은 그것도 모른 채 이미 빌딩을 내려간 후다. 그들을 찾다 못 찾은 자자는 급한 김에 자기도 그 사진을 찍어 그 번호로 보낸다. 집으로 돌아가다 그것을 받은 프랭크와 딸이 전화를 하려는 순간, 다른 사람과 부딪친다. 그 바람에 하필 전화기는 고장 나서 통화가 안 된다. 해서 두 사람은 급히 다시 돌아가서 빌딩으로 올라간다. 그 사이에 자자는 그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전화가 될 리가 없다. 이들이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어긋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터다. 가까스로 그들이 만난다. 이제는 제법 자란 프랭크의 딸이 자자의 아린 아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준다. 두 사람이 진하게 포옹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시절인연,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된다는 말, 만남은 우연이다. 하필이면 이든 다행이든 만남은 우연처럼 시작된다. 그런 우연은 우연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 만남이 두 번 이어지면 인연이 되고 다시 헤어졌다 세 번 만나면 숙명이다. 우연을 만남으로 잇는 것, 그것 참 묘하다. 그게 시절인연이다. 타당성과도 인과관계와도 관계없이 묘한 게 인연이다.
프랭크와 자자의 첫 만남, 그녀는 어쩌다 갑부의 아내도 아닌 정부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왔을까. 프랭크는 하필 이혼 당하고 택시운전을 할까, 그 많고 많은 직업 중에 하필이면. 게다가 그 시간에 공항에서 사람을 태울까.
한 집에 살면서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녀에게 남자가 있으니 둘이 인연일 수 없으나, 그녀의 애인에게 일이 생겼으니, 죽었는지도 모르니, 두 사람이 결합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럼 참 쉬운 인연인데, 너무 쉬우면 인연도 아니지. 가깝다고 다 인연은 아니니까.
행복하게 새로운 출발을 할 듯싶은데 다시 헤어져야 하는 심술궂음, 행복한 생활을 하며 보내는 그녀에게 애인으로부터 사람이 온다. 애인이 여자와 이혼을 했으니 돌아오란다. 그녀는 남자를 떠나 중국으로 가려 한다. 두 사람의 그윽한 눈길이 아리다. 그럼에도 그녀는 떠난다. 떠나면서 그녀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당신의 수염 깎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이 보고 싶어요.” 이 말, 다시 이어질 거란 암시다. 꼭 의사 되라는 말과 함께 다시 만날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당신은 내 인생의 가장 머진 남자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떠나야 할까, 그건 감독의 의도다. 그리 헤어졌다 다시 만나야 진정한 인연일 테니.
여기서 만남이 끝나면 인연이 아니지.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남자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남자도 그 자리를 비우면 만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둘 중에 하나는 늘 자리를 고수해야 인연이다. 다시 쉽게 만난다. 그러면 재미없다. 가까스로 만나야 한다. 재회는 아슬아슬하게 끝났다 싶을 때 이루어져야 스릴 있다. 양편이 묘하게 어긋난다. 전혀 가능성이 없이 지나면 인연이 아니다. 바로 곁을 스치듯이 지나도 서로 못 알아보거나 서로 살짝 엇갈려야 인연이다. 하필이면 전화기를 고장 내고, 한 쪽은 오르고 한쪽은 내려간다. 이들이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어긋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터다. 가까스로 그들이 만난다. 요 대목에서 관람객들은 애가 탄다. 하지만 못 만날 리 없다. 가까스로 이들이 만난다. 서로가 그리워하면 언젠가는 만난다. 짝사랑은 아니다. 외사랑도 아니다. 서로 사랑이 아름답다.
이제 인연이다. 두 사람이 진한 포옹,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각자의 몫이다. 행운의 여신은 거기까지만 인연을 이어준다. 나머지는 인간들의 몫이다. 아름다운 여운이 남는다. 그래,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가 어디에서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믿음, 그 믿음이 아름답다. 한번쯤 결혼에 실패한 이들, 그래서 보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늘었을 이들이니, 이들의 앞으로의 삶은 보다 행복할 터다.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