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27- 결혼의 기원, 왜 인간은 결혼을 하려 할까?
프로이드의 전성시대. 프로이드가 오면 좋아하겠다. 이 영화, 시작은 호기심이 생긴다. 제목 그대로 결혼에 임하는 사람들의 심리 해부를 다루는 것 같아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영화의 시작은 금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김선애의 모습부터다. 금이 간 거울 때문에 비춰지는 모습이 조금 찌그러져 있다. 나름 복선이라고 깐 것 같다. 이 복선하고 포도주가 복선이다. 그러니까 나름 구성에 신경을 쓴 것은 맞다. 남자가 여자를 데려다줄 때 여자가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빨간 스타킹, 이 영화의 색깔은 빨간색이다. 빨간색이 지배하는 이 영화 붉은 영화다.
이제 씬은 노총각들의 성관련 상담을 해주는 성애의 사무실이다. 그녀는 직장상사 또는 사장이면서 성희롱을 일삼는 이들의 성상담을 해주는 심리치료사다. 그녀의 남자에 대한 지론은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매력이 있거나 아니면 아예 들이대지 말라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라는 것. 성애는 그렇게 성상담을 하면서 여자를 무척 밝히는 남자 고객과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 남자는 기업체 사장으로 완전 카사노바다. 여자만 보면 치근댄다. 그것 말고는 인간성은 괜찮은 남자다.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들, 이 사회는 상위 1%의 독점시대라는 것, 한 놈이 독점하고 씨를 뿌려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에 들지 못하면 거세를 하라는 거다. 결혼이냐 거세냐의 슬픈 수컷들의 세상이다.
이렇게 성에 관해 거침없는 남자들에게 성애는 특이한 여자를 소개한다. 자신의 환자 중 자연산 숫처녀가 있다는 거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애다. AIDS연구소에서 의사로 일하는 그녀는 지독하게도 남자 기피증 환자다. 그녀는 성애의 고객이다. 지나치게 결벽증인 그녀를 치료하는 성애, 최면치료를 한다. 최면 치료 중 성애는 선애의 상황을 알아낸다. 선애는 아주 지독한 기독교의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최면 중에 그녀는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부모에게 들켜서 혹독하게 혼난다. 그녀는 기도실에 갇혀서 회개를 하고야 나온다. 그런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남자를 벌레처럼 더러운 존재로 취급한다. 해서 남자의 손이라도 닿으면 물로 아주 박박 씻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녀는 엄마의 지독한 결벽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최면에서 밝혀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십자가로 남자를 짓이겨 죽인 전력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 고인의 비석을 세워두고 있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하여 의사가 된 그녀는 남자는 벌레 같은 더러운 존재이므로 청소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검사를 받으러 온 남자들을 많이 없앴다고 최면상태에서 고백한다. 남자를 검사할 때 그 피에 일부러 에이즈 혈액을 섞어서 그 남자를 에이즈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남자는 이제 격리되어야 하고, 그 결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불안해진 남자는 자살을 하거나 스스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결벽증의 여자 선애를 치료해주려고 그녀를 술집으로 데려간 성애, 남자가 선애의 술잔에 빨간 포도주를 따라준다. 빨간 색의 음료, 그리고 빨간 피로 이어지는 것, 복선이다. 그녀는 피를 다루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피를 내재하고 있다. 숫처녀라는 피.
또 다른 한 여자, 그녀는 지하 셋방에 살면서 대딸방에서 일하는 여자, 미주다. 그녀에겐 애인이 있다. 이 남자에게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집 딸 행세를 한다. 어떻게 든 그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다. 결혼은 돈이니까. 남자의 생일에 약혼하자는 그녀, 남자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 다만 그에겐 그녀의 몸이 필요할 뿐이다. 해서 이 남자 생일 파티를 그녀의 집에서 하자고 제안한다. 이 여자 문제다. 지하셋방으로 그를 부를 수도 없다. 그런데다가 그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날 판이다.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성애에게 같이 방을 쓸 것을 제안하지만 그 집도 빠진 상태란다. 해서 그녀가 의지할 대상은 하필이면 선애다. 선애의 사무실로 찾아간 그녀, 하지만 어림없다. 결벽증의 그녀가 그것을 허락할 리 없다. 거절당한 미주가 선애의 사무실에서 나간다.
성애와 기업체 사장이 검사를 받으러 들어온다. 검사를 받고 나가던 이 남자 감히 선애에게 수작을 건다. 그를 뿌리 친 그녀는 그 남자를 혼내준다. 그녀만의 고전적인 수법으로. 그녀는 에이즈란 재수 없어 걸리는 게 아니란다. 깨끗하게 사는데 왜 걸리냐는 거다.
선애가 성애의 사무실에서 상담을 받는다. 성애는 미주가 방 때문에 왔었다는 말을 듣고는 성애는 그녀에게 오히려 미주를 받아들이라 한다. “너는 상체형 인간이고, 미주는 하체형이야. 미주는 또 다른 너 자신이야. 네가 억누르고 있었던 반쪽 모습이 미주야.” 라면서, 미주는 선애의 또 다른 소중한 모습이니까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라 권한다. 그래서 미주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때 선애는 다시 태어날 거란다. 선애는 그 조언에 따라 미주를 자기 집에 받아들인다. 그때부터 둘의 동거가 시작된다.
미주는 연애도 공부이며,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늘 실전처럼 하긴 하지만. 미주는 어둡게 있는 것을 좋아한다. 미주는 재산과 돈을 위해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 그래서 온갖 수모도 참아낸다. 구강성교까지도 해준다. 하지만 남자는 몸 따로 마음 따로 사는 게 결혼이란다. 딴 여자와 섹스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그러니까 결혼으로 묶어두는 것이란다. 반면 선애는 사랑하니까 결혼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미주와 달리 선애는 그 넓은 집안을 항상 밝게 유지한다.
선애 집에 선애보다 먼저 들어온 미주는 남자를 데리고 와서 이층에서 섹스를 벌인다. 그리고 나서 선애가 돌아오자 아래층에서 셋은 포도주를 마신다. 핏빛의 포도주다. 그리곤 두 연인은 아래층에서 잠든다. 선애는 이층에서 잠을 자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미주가 잠든 사이 남자는 미주 몰래 이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살금살금 선애가 잠자는 이층으로 올라온다. 잠든 척하고 있는 선애의 몸을 남자는 건드려본다. 미주는 반응하지 않고 참는다. 드디어 이불 속으로 들어온 남자가 여자를 안는다. 반항하는 척 하면서 고스란히 미주는 당해준다. 피다. 그녀에게서 숫처녀의 상징인 피가 흐른다.
이제 한술 더 뜬다. 카사노바 사장, 피 검사 결과 에이즈란다. 남자는 완전 사색이 된다. 남자는 성애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한다. 그러면서 조용히 사라져서 조용히 살다가 죽겠단다. 그런 남자에게 선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애는 다시 한 번 알아보겠다고 위로한다. 선애를 공략한 남자가 연구소로 찾아온다. 연구소 안에서 여자는 그를 또 받아들이며 환희에 빠진다. 변해도 너무 급격하게 변한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는 남자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서 섹스를 한다. 당연히 집으로 들어온 미주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환장한다. 현장을 본 미주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문제의 빨간 스타킹으로 남자의 목을 조른다. 선애는 달려들어 미주를 제지한다. 벌거벗은 그녀와 미주의 레슬링, 선애는 미주의 목을 조른다. 그제야 살아난 남자가 미주를 밀어낸다.
절망한 미주는 이제 갈 곳이 없다. 그녀는 성애를 찾아가 자초지정을 이야기한다. 놀라는 성애, 성애는 미주의 딱한 상황을 알고 나름 신경 쓴다고 카사노바 남자에게 미주를 보낸다. 미주는 남자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자동차까지 받는다. 그녀는 만족해한다. 선애는 그 다음부터 완전히 남자에 집착한다. 시시 때때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체크한다. 섹스를 할 때엔 남자가 괴로울 정도로 압박하고 밝힌다.
여자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남자 박재상. 그는 다른 여자를 또 만난다. 그러면서 선애의 전화는 무시한다. 완전히 맛이 간 선애는 자기 전화를 안 받자 박재상이 미주를 다시 만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다짜고짜 성애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한다. 성애는 남자를 너무 몰라도 문제, 너무 알아도 문제라며 혀를 찬다. 그녀의 치료 방법은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성애가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선애에게 그 남자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선애는 이전의 그 남자가 아니라 이제는 박재성이 자기 남자란다.
성애가 묻는다. 카사노바 최현성이 진짜 에이즈 맞느냐고, 성애는 그녀가 최면 중에 한 말을 이야기하며 진실을 요구한다. 그렇게 조작해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부당하다며. 그 말에 선애는 자기는 더러운 피를 묶어서 청소하는 것이란다. 그 말에 기가 찬 성애는 “남의 남자를 빼앗은 너는 그럼 어느 쪽이니, 깨끗하니 더러워?”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선애는 “난 죄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절대로 보내지 않을 거야.”라면서 밖으로 나가려 한다. 걱정스러운 성애는 다시 최현성이 에이즈 정말 맞느냐는 말에 선애는 맞단다. 그러면서 그 남자와 언제 섹스를 했느냐고 묻고는 “언니 피는 깨끗할 거예요.”란 묘한 말을 남긴다. 그녀에게 성애는 “박재상을 가지려면 방법은...........”
이란 말에 선애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단다. 그러고는 그녀는 미주가 있는 방을 급습한다. 하지만 미주의 남자는 박재상이 아니라 최현성이었다.
그녀는 맥없이 물러나와 한밤중에 연구소로 온다. 그리고는 남몰래 박재상의 혈액에 에이즈 피를 섞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거울을 향해 물건을 던져 거울을 박살낸다. 금만 갔던 거울은 깨진 거울이 되어 그녀의 모습, 지금의 모습을 비춰주듯 이리저리 일그러진 다양한 모습을 비춘다.
에이즈 통보를 받고 나타난 박재상은 그녀에게 다시 을의 신세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 주변 사람들에게 다 통보하고 격리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상대 여자도 불려온다.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를 묻는다.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단다. 필요할 때 옆에 있을 뿐이란다. 여자에게 잡힌 박재상은 그저 그녀의 성노리개로 전락한다. 그 남자를 잡아두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실제로 에이즈를 감염시키기다. 그녀는 남자를 치료하는 척하며 에이즈 혈액을 남자에게 주사한다. 그렇게 초췌해지고 힘이 빠진 그와 여자는 마당에 있는 비석 앞에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타당성이 있든 없든 무의식의 세계, 그 해석은 종잡을 수 없다. 인간심리가 아주 다양하듯 무의식의 세계는 딱히 규정하기 어렵다. 여기 등장하는 별종의 인간들, 그들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 무의식의 모습들이다. 때문에 꿈처럼 논리적이지 않다. 타당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토록 결벽증이 있던 여자가 남자를 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현실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러나 그것도 욕망의 모습,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냥 심리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라면 몰래 침입하여 들어온 남자에게 하다못해 반항이라도 적당히 하다 당해주는 척해야 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게다가 에이즈를 다루는 의사가 아무런 방지책도 없이 바람둥이 남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설정도 말이 안 된다. 여기서 이 영화는 조잡하다, 엉터리다, 라고 선언할 수 있을 테지만 꿈처럼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게 무의식의 세계라면 인정하자.
여자가 아무리 참아왔던 성의 봇물이 터졌기로 완전히 사이코 이상의 그런 괴물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무의식의 발현으로 이성을 잃은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일부러 에이즈 환자를 만들고, 실제 에이즈 주사를 놓으면서까지 남자를 잡아둘 여자가 있을까. 합리적인 의심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 속에 내재한 욕망이라면, 인간은 참 추할 때는 어아어마하게 추하다는 것, 인간은 무섭기가 괴물 이상을 넘어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참 무섭다. 현실에서 흔히 만날 수는 없지만 사이코 중의 사이코는 어딘가에 한 둘은 있으니까. 인간아, 인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