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34-어웨이 프롬 허, 평화로워 보이는 부부?

영광도서 0 1,683

한 남자가 질투가 강한 여자를 떠나려 한다. 떠나려 하나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치매에 걸린다. 좋은 기회일까?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미우나 고우나 44년이란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으니, 그녀를 보내기도 어렵고 그녀를 떠나기도 어렵다.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영화의 복선을 일단 읽어보자.

 

1. 스키타기: 영화는 시놉시스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의 아내를 비추어 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부부는 크로스컨트리를 좋아한다. 두 사람이 탄 스키 자국은 선명하게도 서로 평행선을 그린다. 44년을 함께 살았으나 평행선을 달려온 것임을 암시한다. 그들의 생을 설명하는 장치다. 그것이 합쳐질 수는 없을까? 그녀는 그에게 복수를 시작한 걸까?

 

2. 치매: 젊은 날의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 그녀가 치매에 걸린다. 치매라면 근래의 일은 기억 못하고 오랜 일만 기억한다. 그런데 그랜트의 아내 피오나는 이상하게도 최근의 일을 곧잘 기억한다 정말 그녀는 치매에 걸린 걸까?

 

3. 반복하는 말: 피오나는 알츠하이머에 걸렸어도 말에 뼈를 숨기고 있다. 사랑의 행위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겉멋만 부리는 바보짓을 하며, 벌레를 불러들여 살게 한단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화를 내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그때 당신이 날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는데, 당신은 날 버리고 떠나지 않았어. 떠난 사람들도 있었잖아.”

 

“어떤 생각이 사리지면 모든 게 사라지요. 내가 사라지기 시작하나 봐요.”

 

3. 제목: 그녀를 떠나기? 그는 그녀를 떠나려 시도한다. 20년 전 일이다. 그가 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외도, 그의 외도로 피오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럭저럭 20년을 보태 44년을 그런 대로 살아왔다. 이제 새삼 둘은 치매라는 이유로 드디어 헤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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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

 

피오나는 겨우 18세 나이에 그랜트에게 청혼한다. 풋풋한 아름다움에 반한, 그녀의 생명의 광채에 반한 그랜트는 즉시 그러자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늘 그녀의 첫 모습을 기억에 담고 살았다.

 

그는 아주 인기 있는 대학의 교수였다. 그는 많은 여대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것이 그의 아내에겐 상처를 주었다. 그는 별것 아닌 일로 생각했지만 그녀에겐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둘의 사이가 냉랭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부는 깊은 시골로 이사를 왔지만, 남편과 여대생들이 가까이 지내던 모습은 그녀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44년을 살았다.

 

다행이라면 두부는 함께 스키를 타곤 한다. 함께 산책을 한다. 함께 이야기한다. 서로 숨기는 것 없이 함께 차를 마신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책을 읽어준다. 잠들기 전 그는 그녀에게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읽어준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떠날지 머물지를 고민한다. 예술가와 의사는 번번이 떠났다가 돌아온다. 하지만 광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의사들은 떠나면서 계속 자신의 기술이 고통 받고 버림받는 것을 걱정한다. 거인들과 요정을 오랫동안 보아온 연인들은 자신들의 몸집이 그대로인지 의심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조용히 기도한다.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한 걸 찾게 하소서. 독특한 것을요. 이를테면 역사의 모습을 깨답게 하소서. 저의 의심이 사라지도록. 오늘과 어제가 한 몸처럼 같도록.” >

 

그럼에도 그녀에겐 그에 대한 앙금이 사리지지 않은 걸까? 젊었을 적 아픔을 간직한 피오나는 하필이면 치매에 걸렸거나 아니면 걸린 척하는 것일 터다. 그녀는 자진해서 요양원으로 들어가겠단다. 그러면 그랜트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치매에 걸린 것으로 판단한 그랜트는 그녀를 데리고 요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었는데 떠나지 않아 고마워!” 그것만은 제대로 기억하는 피오나, 그는 마음에 찔림이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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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한 달 간은 외부와 아무 연락도 할 수 없다. 둘은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얼마 후, 그랜트는 요양원으로 아내를 찾아간다.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상한 건 적어도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는 그를 기억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그녀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에겐 지극정성을 다한다. 그랜트는 묘한 질투를 느낀다.

 

그 다음부터 그랜트는 매일 아내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사서 가지고 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꼭 덧붙인다.

 

"내일도 오시리라 믿을 게요. 정말 끈질긴 분이세요."라면서 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그가 갈 때마다 “우리를 묶어둘 것이 없는데, 날 버리고 떠날 수 있었는데, 당신은 떠나지 않았어.”라고 그녀는 되뇌곤 한다. 그랜트는 그 말이 비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다른 건 다 잊는데, 그가 젊은 날 저지른 일을 기억하는 그녀, 그녀가 다른 남자와는 아주 멀쩡하게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그녀는 사랑에 빠진 걸까? 그녀는 새로운 남자의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고, 그 남자가 서툰 일엔 발 벗고 나서 도와주기까지 한다. 게다가 알듯 말듯 미묘한 말로 그를 시험한다. 꼭 전혀 모르던 남자를 대하듯 “결혼할 때는 끝까지 함께할 줄 알았죠. 뭔가를 잊어버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라고 시험하는 듯하다. 그래 그녀는 남편의 과거의 행동을 잊을 수 없었던 거다.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오늘도 어제처럼 가벼울까. 인생은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춤추는 대로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지. 이번에 피해가면 다음에 부딪힐 때 더 아플 것이다.”라며,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녀는 그가 아파할 만한 말만 골라한다. 해서 그는 그녀가 일부러 치매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한술 더 떠서 그녀는 새로 사귄 친구 크리스티를 자기 방으로 데려온다. 남편이 있어도 당연한 듯 행동한다. 그런 그녀 앞에서 질투를 느끼는 그에게 그녀는 복수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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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녀가 요양원에서 새로 사귄 크리스티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새로운 사랑을 잃은 피오나의 건강은 악화된다. 그랜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그에겐 그녀의 풋풋했던 모습이 잔영으로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젊었을 적에 아내에게 아픔을 주긴 했지만 이후 착실한 남편, 좋은 남편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그는 힘들어 하는 아내가 안타깝다.

 

그는 그녀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라도 그녀에게 힘을 주고 싶다. 때문에 그는 아내를 위한 진정한 마음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어느 날 크리스티의 아내를 찾아간다. 그에게 이제까지 요양원에서 일어난 일을 크리스티의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그가 그 이야기를 한 이유는 크리스티를 다시 요양원에 가게 하여 자기 아내가 힘을 얻게 하고 싶은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랜트는 이번엔 크리스티 아내와 동병상련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환자를 거느린 사람들이란 공통점, 그들은 외롭다. 때문에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 그 덕분으로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남편을, 자신의 아내를 다시 만나게 해주려 한다.

 

한편 그랜트의 아내 피오나의 상태는 더 악화되어 중증 입원자들이 입원하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번엔 그가 정말 그녀를 떠날 수 있을까. 아내에게 새로운 친구를 데려다주고 그는 이제는 아내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가 떠나려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젊었을 적, 두 번째는 그녀를 요양원에 데려올 때,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그가 그녀의 방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그녀는 평소와는 아주 다르다. 아주 깔끔한 차림이다. 죽을 듯하던 그녀가 고운 모습으로 책을 읽는다. 그녀의 고향인 아이슬랜드의 신화,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읽는다. 그가 평소 자주 읽어주었던 책, 그가 그녀의 기억을 살려보려고 요양원에 가져다 준 책이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망설인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를 데려다주려고 왔는데,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일어나 그를 안는다. 실상은 그는 자기가 그녀를 떠나기보다, 그녀가 자기를 떠나게 하려 마음먹었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며, 그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는데, 그녀가 사랑스럽게 그에게 다가와 그를 안는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서신의 내용 “인생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세상일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는 쪽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에 늦은 때란 없다.” 그 대목이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나를 버릴 수도 있었잖아.”라고 다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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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아니 중간에라도 단추가 어긋나면, 제대로 옷을 입을 수 없듯이 결혼 역시 한 번 잘못하면 이혼하지 않는 한 끝없는 평행선을 긋는다. 나란히 이어지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자국이 겹치지 않듯이 따로 놀이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스키 타기는 서로 겹치면 서로 부딪치게 마련이고 넘어지고 만다. 그래서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고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전쟁을 끝내기란 참 어렵다.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겉으로는 서로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한다. 크로스컨트리 같은 결혼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의 에너지를 평생 낭비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평생을 그렇게 살고 나면 더는 공유한 시간 때문에 나머지 인생도 희생하고 살아야 하는 게 더 쉽다.

 

그런 보이지 않는 벽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 제공자는 그 문제를 잊고 산다. 잊지 않았다고 표면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충분히 앙갚음을 했다고 느낄 때까지. 이러 저러한 일로 그 앙갚음을 하고 살다가 언젠가는 그것을 꺼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시작하여 문제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떠날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는 사람들, 그녀의 앙금은 그걸로 씻어진 걸까? 그는 그녀를 떠날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의 남편이 아닌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궁금증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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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시도를 거듭한다. 세 번째의 시도의 결과는 미제로 남긴 채 영화는 끝난다. 그는 떠나지 못할 것이란 암시는 있는 듯하나 그건 관객 각자의 몫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떠날 것인가? 정말 그녀를 떠나려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라고.

 

그녀는 정말 치매에 걸린 걸까? 정황상 그녀는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왔듯이 그녀는 일반 치매환자들과는 다르다. 일반 치매환자는 최근 기억부터 잊는데, 그녀는 그 반대라는 점이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괴롭게 한 젊은 날에 대한 교묘한 복수를 시작한 것일 뿐, 남편으로 하여금 질투의 감정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일 뿐, 실제로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정말 사랑한 것일까? 그녀는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 남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오는 자괴감, 남편과 젊은 여자들을 향한 질투,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견디지 못했을 뿐 그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질투의 감정이란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복수한다는 의미는 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심리다. 그러므로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사귄 것은 단지 남편의 사랑을 재확인하려는 시도, 남편도 자신의 아픔을 깨달으라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그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그가 남자친구를 다시 불러다주기 까지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 가능할 것이다. 그가 그녀를 새로운 사랑을 찾도록 보내주려는 마음은 그의 사랑하는 마음이니까. 정말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편이니까. 그를 보낼 거였으면 이런 식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사랑이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더 숭고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나는 그녀가 “인생을 어떻게 이겨요."란 그녀의 말을 그랜트를 대신에서 이렇게 바꾼다.

 

“어떻게 여자를 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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