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0- 플립, 아름다운 부분과 부분을 합한 온전한 전체인 사랑

영광도서 0 1,992

“풍경전체를 봐야지. 그림은 그저 풍경을 모아 놓은 게 아니란다. 소는 그 자체로 소야. 초원은 그 자체로 잔디와 꽃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그저 빛줄기일 뿐이고. 하지만 모든 게 한 데 어우러지면 마법이 되거든”

 

플립은 원래 장면전환 기법의 하나로, 장면 하나를 좌우로 회전하거나 또는 상하로 회전하면서 새로운 장면이 나오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어쩌다 한 번 텔레비전 프로에서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는 특정한 서술자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같은 장면이나 사건을 서로 다를 수 있는 입장을 보여주어 독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같은 하나의 장면을 두 번 보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장면전환 기법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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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브라이스를 처음 만난 날, 사랑에 푹 빠지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물론 브라이스에겐 그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날 이후 그를 줄기차게 가까이 하고 싶다. 그 아이를 본 순간 남다른 느낌을 주는 그의 두 눈에 반했다. 검은 속눈썹이 주변을 둘러싼 브라이스의 파란 눈, 눈부시고 찬란한 눈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의 첫 키스의 상대가 되고 싶다. 과학 시간에 진화와 관련된 내용을 배울 때 머틴스 선생님에게 귓불에 난 솜털에 관해 물어보고 싶다. 줄리는 이런 생각을 하며 늘 브라이스 뒤에 앉아서 틈만 나면 브라이스의 머리 냄새를 맡는다.

 

브라이스, 그는 “내 간절한 소원은 줄리 베이커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한테서 떨어졌으면, 숨 돌릴 틈이라도 좀 줬으면 바랄 게 없겠다.”라고 기억한다. 그는 “나는 거북함과 짜증 사이를 오가며 6학년을 보냈지만 내년은, 내년만큼은 달라질 거라고 줄곧 생각했다. 중학교에 갈 테고 반도 달라질 테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져 줄리 베이커를 다시 마주칠 걱정 따윈 할 필요도 없는 세계일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보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둘은 서로 다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산다. 마치 성은 서로 엇바뀌었지만 아폴론과 다프네처럼. 일단은 한 사람은 사랑하고 한 사람은 싫어한다. 때문에 브라이스는 어떻게든 줄리를 떼어놓으려 다른 여학생을 사귄다. 그러자 줄 리가 둘 사이를 어긋나게 만든다. 그렇게 줄리는 언제고 브라이스와 첫 키스를 할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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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줄리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한다. 그 위에서 등교를 위한 버스가 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다 두 정거장 정도 오는 걸 보면 아래에 있는 친구들을 향해 중계한다. 그리곤 버스가 가까이 오면 얼른 내려와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이쯤에서 두 아이의 환경을 살펴보면, 브라이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다. 할아버지도 계시다. 그러나 할아버지와는 거의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반면 줄리는 가난한 집 아이다. 셋집인데다 정원을 두르는 울타리도 없다. 게다가 이상한 소문이 도는데, 줄리의 삼촌은 정신이상자라는 것이다.

 

중학생이 된 줄리와 브라이스, 브라이스는 부모들과 별로 소통하지 않는다. 반면 줄리는 아버지와 잘 통한다. 줄리는 아버지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아버지는 “풍경전체를 봐야지. 그림은 그저 풍경을 모아 놓은 게 아니란다. 소는 그 자체로 소야. 초원은 그 자체로 잔디와 꽃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그저 빛줄기일 뿐이고. 하지만 모든 게 한 데 어우러지면 마법이 되거든”이라고 말한다.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다. 할아버지는 브라이스의 그릇된 마음을 고쳐 주어 정직하게 자라게 하고 싶다. 그렇다고 직접 대놓고 잔소리를 하면 싫어할 터여서, 간접적으로 교육하려 한다. 다름 아닌 줄리에게 접근하여 그녀와 친하게 지낸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와 그녀는 셋집이지만 정원을 가꾸고, 집의 울타리를 소박하게 세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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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줄리는 어느 날 나뭇가지에 걸린 연을 가지러 올라간다. 워낙 높은 곳에 걸려서 평소보다 더 높이 올라간 거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녀에게 해준 말의 의미를 그제야 깨닫는다. “높이 올라갈수록 경치가 더 아름다웠다. 바람 냄새가 향긋하게 느껴졌다. 햇살과 수풀의 냄새였다. 그 달콤한 향기로 내 폐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이후로 거기는 내 장소가 됐다. 거기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세상을 바라봤다. 어떨 땐 석양이 보라와 분홍빛인데, 어떤 땐 강렬한 오렌지색으로 지평선의 구름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석양을 보던 어느 날 부분이 모여서 아름다눈 전체를 이룬다는 아빠의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왔다. 부분이 모여서 더 나은 전체가 된다는 의미를 할아버지는 아셨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어떤 사람들은 전체가 부분보다 못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내 친구들을 보면 전체가 부분보다 나은 아이는 없다. 브라이스의 전채가 부분보다 낫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매혹적인 눈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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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그에겐 할아버지가 있으나,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를 부른다. 그러면서 그에게 지역 신문을 읽어보라고 내민다. 그러나 그는 보려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거듭 권유에 따라 신문을 읽는다. 기사 내용은 다름 아닌 줄리에 관한 기사다. 줄 리가 가끔 올라가던 나무를 소유주가 베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줄리는 그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기사였다.

 

결국 그녀가 좋아하던 플라타너스 나무는 베어졌고, 날마다 올라가 새로운 세상을 보면 장소는 없다. 그녀는 침울해 한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달리 그녀를 달래줄 방법이 없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그녀가 올라가곤 하던 나무를 그린 커다란 그림을 그려준다. “그건 그냥 나무가 아니었지. 나는 네가 그 나무 위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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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는 아주 만족해한다. 올라가던 나무 대신 그 나무를 친구로 삼아 침대 옆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보곤 한다. 그녀는 울지 않고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자 “내가 울지 않고 보게 된 순간, 나무 이상의 것을 보게 되고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됐다.”그 속에서 나무 이상의 것을 본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깨닫게 되었다.”고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브라이스와 친구는 한 번은 줄리의 집 닭장을 엿본다. 수탉과 암탉을 구분하고 싶어서다. 용기가 없음인지, 그는 직접 줄리에겐 묻지 못한다. “나는 달걀이 무섭다. 닭도 무섭다. 맘껏 비웃어도 좋지만 아에겐 정말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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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는 자기 집에서 나온 달걀을 브라이스 집에 가져다준다. 그러나 브라이스는 지저분한 닭장을 보고 난 후 달걀 혐오감 때문에 그녀가 가져다주는 달걀 처리를 궁리하다 쓰레기통에 버리곤 한다. 그는 매번 그녀가 달걀을 가져올 때마다 다른 식구들보다 먼저 나가서 받아온다. 그리곤 다시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른 식구들은 그의 행위를 전혀 모른다. 그런 식으로 2년 동안이나 줄리를 속인다. 물론 그는 죄책감을 갖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미안하지만 우린 달걀을 멎지 않아. 달걀을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어. 보아뱀에게 주지 그래?'라고!” 그는 그렇게 속으로는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줄 리가 기분 나빠할까, 아니면 줄 리가 무서워서인지 모르지만 늘 그런 식이다. 결국 그의 행동은 우연한 기회에 줄리에게 딱 걸리고, 그는 그녀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냉랭하게 돌아선 줄리, 줄리는 영원히 그를 떠난 걸까? 

 

제법 성장한 아이들, 어느 날 학교에서 모금을 위한 축제가 열린다. 남자후보들을 무대에 올리고, 그들을 경매한다. 낙찰을 받은 여학생은 그와 데이트할 기회를 얻는다. 브라이스도 9번으로 출전해야 하는데, 이미 그는 최고가라는 소문이 돈다. 그를 지목할 여자는 줄리라는 소문도 돈다. 이상하게 그녀가 멀어지자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한 브라이스는 초조하다. 그녀가 그를 낙찰 받아 화해의 기회를 맞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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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이다. 줄리는 자칫 본능적으로 브라이스에게 표를 던질 것을 염려하여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학교로 간다. 그런데 도중에 달걀을 사간 이웃 아주머니가 달걀 값을 준다. 그녀가 안 받는다 해도 강제로 맡긴다. 드디어 남자들 낙찰, 줄리는 예상을 깨고 가장 인기 없는 남자를 낙찰 받는다. 바로 브라이스 앞 번호의 아이다. 그리고 브라이스는 최고가로 미모도 뛰어난 여학생의 낙찰을 받는다. 그런데 데이트 장소인 카페에서 공교롭게도 브라이스와 줄리는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모양새로 자리한다. 브라이스의 신경은 앞에 앉은 여학생이 아니라 온통 줄리에게 쏠린다. 도조히 못 참은 브라이스가 평소의 그 소심함을 버리고 과감하게 줄리를 손으로 잡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첫 키스를 하려한다. 그러나 줄리는 반항적으로 그를 뿌리친다. 때문에 데이트는 엉망이 된다. 브라이스는 달아나버린 줄리를 찾아 줄리의 집으로 가서 문들 두드리지만 줄리의 어머니는 그를 들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돌아설밖에 없다.

 

돌아선 줄리, 애타는 브라이스, 브라이스는 방법을 찾은 걸까? 때로는 침묵이 대화보다 서로를 더 친근하게 만들어준다.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조언한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광택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단 한번 무지개 같이 변하는 사람을 만난단다. 네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이상 비교할 수 있는 게 없단다.”라고 말하며, 그에게 정직의 가치를 일러준다. “정직이란 당장 불편하더라도 나중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것이란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라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비난하면 안 된단다. 지레짐작으로 원망하지 말렴!”라며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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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는 이제 정직을 되찾고, 용기를 갖고 행동할 차례다. 어느 날, 줄리의 아버지가 줄리에게 창밖을 내다보란다. 브라이스가 줄리의 정원 저 앞에 구덩이를 판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그를 내쫓으라고 한다. 그러자 줄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허락을 받은 일이라며 그냥 지켜보란다. 구덩이를 다 판 브라이스가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나무묘목을 가지고 다시 나타난다. 파란 정원, 나무라곤 없는 정원에 그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으려는 것이다. 줄리는 안다.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잎 모양만 봐도 말할 수 있었다. 줄기 종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건 무화과 나무였다.” 그제야 상한 마음을 내려놓은 그녀,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제대로 얘기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밖으로 나간다. 나무묘목을 심어놓고 흙을 덮은 다음 무릎을 꿇고 앉아 흙을 고르는 것을 그녀도 돕는다. 그녀의 손에 브라이스의 손이 우연히 얹힌다. 그렇게 둘은 화해를 한다. 잔잔하고 깊이 있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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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아름다운 영화다. 같은 사건을 한 번은 줄 리가 고백하는 식으로, 또 한 번은 브라이스가 고백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이웃에 살지만 서로가 달라도 아주 다른 두 가정, 그리고 서로 다른 성정을 가진 소년 소녀가 점차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마음으로 지내다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그린 잔잔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준다. 성장영화라고나 할까?

 

비록 가난하지만 훌륭한 인격을 가진 줄리의 아버지, 그의 잔잔하면서도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를 위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는 아이 줄리 역시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 철이 제대로 든 아이다. 반면 브라이스는 부모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위선적이며, 이기적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용기도 없다. 다만 외모만 뛰어날 뿐이다. 비록 미모는 그저 그렇지만 마음은 아름다운 줄리, 미모는 뛰어나지만 마음은 추한 브라이스, 이들은 전체보다는 부분이 나은 아이들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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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림 한 편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이 합쳐져 하나의 그림이 되듯, 부분 부분 나누어보기보다 전체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좀 더 자란 줄 리가 평소엔 버스가 오는 것이나 보다가 어느 순간 더 높이 올라가 전체 풍경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 부분보다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르듯,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부분보다 전체를 보는 눈을 가졌듯, 사람은 부분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보면 이내 실망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분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잘 못 보고 잘 못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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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전체를 봐야지. 그림은 그저 풍경을 모아 놓은 게 아니란다. 소는 그 자체로 소야. 초원은 그 자체로 잔디와 꽃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그저 빛줄기일 뿐이고. 하지만 모든 게 한 데 어우러지면 마법이 되거든”이라는 이 영화의 명제에서 보듯,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 정도 높이 오른 시점에야 서로를 제대로 바라본다. 서로의 진가를 안다. 알고 보면 완벽한 인간은 없다. 줄리의 부분과 브라이스의 부분이 합쳐져 전체가 되고, 그렇게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마법이란 진실과 진실이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직이 우선해야 한다. 때로는 정직이 불편하게 하지만 나중에 불편을 줄여준다는 걸 당장은 모르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일단 숨기고, 속이고 땜질하듯 넘어간다. 그럴수록 관계는 더 꼬이고 불편은 가중된다. 그것이 정직하지 못한, 용기 없음으로 인한 혹독한 시련이자 대가다. 그런 시련 끝에 부족하지만 하나로 합쳐진 사랑, 사랑은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이다. 서로의 부족을 서로 매워주고, 서로를 나누는 삶, 거기 사랑은 싹을 내고 사랑의 아름다운 성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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