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2- 러브 픽션, 소설 쓰듯 연애하고, 연애하듯 소설쓰기

영광도서 0 1,527

연애와 연재소설은 비슷하다. 독자의 반응에 따라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는 게 연재소설이듯, 연애도 독자라 할 상대의 요구에 따라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또한 연재소설은 독자의 요구에 따라 엔딩이 달라질 수 있다. 연애도 상대의 요구에 따라 엔딩이 결정된다. 뒤에서 부터 읽는 독자는 없으니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 그럴 듯한 말이다. 사랑에 서툰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아주 예외의 사람을 빼놓고는 대부분 사랑에 서툴다. 이 영화는 사랑학 개론이라고나 할까. 등장인물들은 사랑에 능숙하기보다 한없이 서툴다. 때문에 이들이 하는 사랑과는 반대로 하면 거의 사랑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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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소설가로서의 구주월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안에 구주월의 소설 내용이 펼쳐져 있다. 소설가 구주월은 31세가 되기까지 완벽한 여자를 찾아 헤매느라 제대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실제로 사랑을 하려 한다. 진정으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으면 창작의 원천이자 삶의 빛이 되어줄 강력한 이미지가 될 거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일단 그러한 뮤즈를 찾아 헤맨다.

 

사랑을 제대로 해봐야 리얼하게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쓸 게 아니냐.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한 소설가가 이야기를 알아먹지 못하게 배배 꼬아 놓는 거 아냐. 위대한 작가들은 나름대로 이상적인 여자를 사귀었잖아. 릴케에겐 루 살로메, 단테에겐 베아트리체, 심지어 마광수에겐 사라란 여인이 있었으니까.

 

그는 아주 강력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상처 받은 영혼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인물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런데 그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그가 사랑한 여인들 중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는, 그녀의 발가락의 무좀이라도 되어 붙어 다니고 싶었는데, 그녀는 수녀가 되겠다고 수녀원으로 떠났다. 그러고도 그가 찍은 여인들은 모두 다른 누군가의 품을 찾아 떠났다.

 

그럼에도 이상적인 여인을 찾고 싶어 하는 그는 여전히 사랑엔 서툴기만 하다. 그럼에도 사랑의 체험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싶은 그에게 세상의 여자들이란 개성이 전혀 없는 수많은 여자일 뿐이다. 아이러니한 게 세상이다.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길치다. 독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독치가 많다. 사랑에 관한 소설로 명성을 떨친 작가들은 대부분 사랑을 제대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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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운영하는 후배의 부탁을 받아들인 그는 후배와 독일 북 페어에 동행한다. 그리고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후배의 아동도서 계약을 돕는다. 그러다 거기서 이상형을 발견한다. 그녀의 미소를 보자 그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그다음부터 그의 상상 속 인물이 그의 사랑의 멘토로 나타나 그에게 조언한다. 여자는 고전적인 수법인 손 편지를 좋아한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이 너무 진지하면 싫어한다. 베르테르가 이상형의 여자에게 그토록 기다리며 구애를 하지만 실패한 원인은 유머감각 부재 때문이란다.

 

귀국한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대로 고전적인 편지를 보낸다. 그녀를 웃길 수 있는 고전적인 편지, 조선시대 풍을 흉내 낸 편지를 그녀에게 보낸다. ‘당신을 보는 순간 신이 인내심을 시험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당신은 숭고한 존재다’라는 식의 편지. 그 편지로 그녀가 웃는다. 그로 인해 그가 드디어 그녀와 만난다.

 

사랑의 멘토가 그에게 조언한다. 여자를 물고기로 생각하라고.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미끼를 물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 그럴 듯한 미끼를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조언에 따라 그가 실행한다. 이를테면 그녀와의 식사 자리에서다. 그는 고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싸주는 고기를 먹는다. 그 이유는 야채에 싸여서 고기가 안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겉모습을 신봉하는데, 학창 시절 체육 선생이 자기 팀이었는데 그 선생의 운동철학이 폼생폼사 형이었던 때문이란다. 체육선생은 공을 차도 폼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구잡이 축구를 하는 상대편과 시합에서 결국 8:0으로 대패하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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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자인 그가 만난 여자는 그의 두 눈이 멀어버릴 만큼 아름다운 여인 희진이다. 그는 그녀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알래스카에서 살다 온 그녀, 그는 그녀가 좋다는 것은 다 좋다고 한다.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라 못 생긴 사람이 더 흥미롭단다. 결혼,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것처럼 결혼도 해 보면 좋을 거란다.

 

그녀는 알래스카의 인사법을 그에게 가르친다, 친한 사이에는 귀싸대기를 때리기를 한단다. 더 친하면 서로 코를 부비기 한단다. 그 코 부비기를 하면서 둘은 서로 눈을 쳐다본다. 그러다보면 서로 사랑하겠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폭발하는 화산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시작된 그녀와의 연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주월. 끓어오르는 사랑과 넘치는 창작열에 그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영혼을 울리지는 못해도 사람들이 찾을 만한 소설을 써야 한다’는 후배의 말대로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이 멀어 버렸다. 님은 내게 느낌표였고 나는 님에게 마침표였다. 님은 날씨가 좋다! 하였고 나는 차를 렌트했다. 님은 오늘은 왠지 슬퍼! 하였고 나는 바로 저질 댄스 3종 세트를 작렬시켰다. 님은 때로 물음표이기도 했다. 님은 사랑이란? 하였고 나는 당신의 부재에 따르는 공포라 답하였다. 님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책은? 하였고 나는 전 인류가 누드로 생활하는 것이라 답하였다

 

- 완벽한 뮤즈 ‘희진’에게 사로잡힌, 그녀의 포로 ‘주월’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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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겨드랑이 털에 충격을 받지만 그는 잽싸게 수습한다. 그리고 그녀를 안는다. “베르테르는 자기 연인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그는 성공했다. 이 지긋지긋한 인간들 틈에서 끌어내 달라.” 드디어 <액모부인>이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영화 속 소설 ‘액모부인’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월이 평생을 그리던 이상형 희진을 만난 뒤, 다른 여자들과 달리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독특한 취향의 그녀로부터 모티브를 얻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범인을 사랑하게 된 형사가 그녀의 숨겨진 사연에 대해 관심과 연민을 가지면서 펼쳐지는 소설 ‘액모부인’은 그 시작과 흐름이 주월과 희진의 연애 과정과 맞닿아 펼쳐진다.

 

액모부인, 처음엔 그것이 결점이었는데 사랑하니 그것은 독창적인 것으로 변한다. 특권적인 위치로 변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나와 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 둘씩 주월의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녀 자신만을 위한 편지를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둘 사이가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에게 믿지 못할 구석이 생긴다. 그녀가 그의 누드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상습적이었다나. 그러면 그녀는 자신을 이용한 것밖에 안 된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그가 쪼잔하게 별 걸 다 묻는다 생각한 그녀는 "그래 네가 31번째야."라고 화끈하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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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서로 어긋나는 사이,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함께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건 단순히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반박한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함께 죽을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들이 같은 순간에 죽은 건 서로가 오해 때문일 뿐, 우연히 시간이 맞은 것이라고 그녀는 받아친다. 그녀가 받아치는 말에 그는 왜 그렇게 까칠하냐고 따지면서 “너 왜 그렇게 까칠해. 생리하니?” 라고 그녀 마음에 상처를 준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아닌가. 그녀는 짜증을 내며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남자들이 자궁에 뇌가 달려 있다는 그런 생각이야.”라고 받아치며 “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재주가 있어.” 라고 비아냥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정말 서툴게 끝난다.

 

사랑은 끝났다 여겼는데, 그가 희진의 사진 발표회에 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었단 생각에 화를 낸다. 그것이 결정적인 그와 희진의 되돌릴 수 없는 연애의 끝이다. 그를 희진이 이용했다고 그는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희진도 할 말이 있다. 그가 써내려간 소설, 그 유명한 소설 <액모부인>은 그녀를 소재로 한 소설 아니었냐며, 자신을 먼저 이용한 것은 주얼이라고 몰아친다. 헤피 엔딩이 되지 못한 결말, 멘토가 그에게 조언한다. “그냥 저수지에 빼져 뒈져 버려라. 연애를 소설 등장인물 다루듯 하지 말라.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면서 살아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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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픽션, 제목대로 사랑은 허구이다. 허구, 우리는 소설을 허구의 세계라고 부른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이다. 해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듯한 일,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는 친구에게 '너 영화 찍냐' 라거나 '너 소설 쓰냐'고. 허구란 사실은 아니지만 그 사실 너머의 진실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은 실제로는 진실을 가장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사실의 의미는 가면 쓴 모습이다. 체면으로 보여주는 아주 약간의 진실이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나 확인 가능한 것은 사실이라면, 살실 뒤에 감춘 진실은 당사자만이 안다.

 

그런데 소설은 자기 이름 대신 남의 이름을 앞세워 쓰는 이야기다. 그렇게 자기 가면을 쓰고 가면 뒤에 숨어서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소설은 진실을 다룬다. 따라서 눈으로 보기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사실을 넘어서는 솔직한 심리의 발현이 소설이기 때문에 진실이라 할만하다.

 

연재소설을 쓰듯이 연애를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나의 것으로 삼으면 그건 나에게 특별한 작품이듯 연애도 마찬가지다. 결점이었던 모든 것이 사랑에 담기면 특권적인 것,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사랑이란 거품을 걷어내면 상황은 달라지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연애가 연재소설과 비슷하다고, 소설을 쓰듯, 인물을 다루듯 연애도 그따위로 하면 성공 못한다. 소설은 사실 너머의 진실이지만, 연애는 실제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르러야 할 최종 목적지가 진실일 수는 있어도 그건 요원하다. 지금 연애를 못하면 진실은 알 수조차 없으니까. 연애에서 그토록 진실 찾기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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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애하는 일과 소설 쓰는 일이 비슷한 면은 많다. 정말 소설을 쓰듯, 제대로 소설을 쓸 줄 아는 작가가 소설을 쓰듯 하면 연애도 잘할 수 있을 터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소설을 잘 쓰려면 등장인물을 세워 놓고 그 인물들이, 그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데 자신이 없으면 그 인물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 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소설을 쓴다. 그렇다면 연애도 그건 소설작법을 적용해야 한다. 상대를 소설의 인물 선택하듯, 자신이 선택했다고 치자. 그러면 시나리오에 맞게 움직이게 하기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고, 그 인물의 자유스러움에 진실을 담아낼 수 있듯이, 연애를 하면서 상대를 선택한 다음엔, 그 상대 자체를 사랑하고, 상대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즐겨야 자연스러운 연애, 제대로 연애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맞아. 제대로 연애하듯 소설을 쓰고, 제대로 소설을 쓰듯 연애를 하면 잘 될 것 같다. 그런 거다. 사랑도 그런 거다. 사랑엔 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 잡는 게 매라고, 상대를 사로잡는 실전이 중요하다. 폼만으로 고기를 낚을 수 없듯이, 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기를 제대로 잡으면 그 사람이 진정한 낚시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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