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16회 - " 어린왕자 : 인생의 사막을 피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

영광도서 0 1,673
누군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한창 나이에 생을 달리한 고인의 상주를 대할 때, 그에게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적당한 말은 별로 없습니다. 좋은 일을 만난 이에게 축하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 많으면서도 흉한 일을 당한 이를 위로할 문장은 참 없습니다. 그때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참 어렵습니다. 표정을 어떻게 지을지도 참 어렵습니다.



사하라 사막, 습도는 40%지만, 생텍쥐페리가 생존싸움을 벌이는 리비아 사막은 습도라곤 18%랍니다. 이 사막에 잘 훈련된 배두인들, 여행자들은 19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19시간을 견딜 수 있습니다. 20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눈 속이 빛으로 환해지면서 죽음을 맞아들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상황, 동료들이 찾아오리란 기대도 접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그저 모래뻘 뿐인 열사의 사막, 이들이 가진 정보라면 3천킬로미터 반경 내에 있다는 끔찍한 절망의 정보뿐입니다. 사막에 산재한 수많은 검은 점들 중 하나에 불과한 그들, 그리고 그들이 버려둔 비행기의 잔해뿐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누군들 찾아낼 수 있을까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서로는 말을 잃습니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내자'라는 말을 꺼낸들 그건 그저 사치스러운 말이며, 아주 공허한 말일 뿐입니다. 동료는 '차라리 권총으로 자살하자'는 눈치입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하고, 그 어떤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생텍쥐페리와 프레보가 있는 그 시간, 동북풍이 불어서 이 두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끈을 버립니다. 그들을 잡고 있던 비행기의 잔해를, 그리고 그들이 있다는 표식을 버립니다. 무의미해진 지금 거기에 미련을 둘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저 죽을 때까지 걸어가는 겁니다. 앞으로 곧장 걸어갑니다. 확률 때문에 좌로 갈까, 우로 갈까 돌아갈까, 그런 선택의 고민도 없습니다. 어차피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동일하니까요. 힘에 겹지만 희망을 포기했을 때가 때로는 더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쫓기던 생쥐가 피할 굴도 없고, 그저 딱딱한 시멘트로 포장된 코너에 몰리면 그저 이빨을 내밀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수밖에 없을 때, 그 생쥐는 오히려 쫓길 때보다 그 때가 더 마음 편할지 모릅니다. 생텍쥐페리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이젠 그들은 걸어갑니다. 그의 동료 기요메가 기적적으로 안데스 사막에서 살아남았을 때 걸었던 그 방향, 살기 위해 걸었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던 그 방향으로 그들도 걷습니다. 희망이란 짐이 무겁긴 하지만 그립습니다. 이젠 희망을 놓아버렸으나 마음은 더 무겁습니다.



희망이 있어서 고민하는 밤들, 희망 때문에 고되더러도 참고 견디며 많은 모욕과 많은 고통을 참아내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 많아도 그 희망 때문에 달콤한 유혹도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 그렇게 희망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합니다. 고통도 참게 합니다. 많은 모욕도 견디게 합니다. 그저 두고 보자, 때로는 복수심으로 이를 갈면서 그 날들을 곧잘 견딥니다. 가만 생각하면 그것은 우리를 붙잡는 구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는, 가냘픈 희망이라곤 없는 완전한 무의 상황에 이르면 그래도 그 시절의 고통이, 모욕이, 견딤이 그립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