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19회 - " 어린왕자 : 죽음의 사막에서 만난 신의 대리인 "

영광도서 0 1,902
바다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듯이 사람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그 무엇에라도 의지하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상황을 만나면 거기서 신을 찾습니다. 두려운 상황에 처하면 신을 부릅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합니다.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으며, 대단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사람도 한계상황에서는, 두려운 상황에서는 아주 나약한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힘들 때 찾아주는 사람, 가장 갈급할 때 그 갈급함을 채워주는 사람, 때로 그런 사람이 신보다 고맙습니다.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를 구해줄 사람이 저기 가고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운이 좋게도 그 광활한 사막에서 생텍쥐페리가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원자들이 그들을 구해줄 겁니다. 한모금의 물이라도 나누어줄 겁니다.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겐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강도를 만난들, 사기꾼을 만나들 더는 잃을 것이 없으니, 그저 만나는 이들이 곧 그의 동지이며, 친구이며, 이웃이며, 부모이며, 구원자입니다. 다만 그 베두인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 그게 두려울 뿐입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 갑갑해도 달려가기는커녕 걸어갈 힘도 없습니다. 소리를 지른다고 지르고, 손을 흔든다고 흔들지만 저들은 저만치 멀어져 갑니다. 절망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다만 저들이 90도만 몸을 돌려서 우리의 생텍쥐페리를 돌아봐준다면 기적일텐데......인간이 한 바퀴 팽그르르 도는 각도 360도, 그 4분의 1만 돌아본다면, 절반은 아니라도 반의 반이라도 돌아본다면, 그 순간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체는 아니라도 상체만 살짝 돌린다면, 아니 상처도 아니라도 머리만 살짝 돌려 보아만 준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그런데 배두인들이 그냥 갈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저기 가고 있습니다. 무심하게도.



그들의 살짝 회전이 세상을 바꿉니다. 두 사람의 생명을 새로 살려내는 겁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 이들의 생명을 구해주는 생명의 구세주인 셈입니다. 그 기적을 그는 지금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기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절망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베두인들이, 거짓말같이 생텍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다가옵니다. 이번엔 아닙니다. 신기루가 아닙니다. 신기루라도 좋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이면 신기루든 그 무엇이든 잠시나마 위안이 되고 즐거움을 준다면 그게 신기루라도 좋습니다.



베두인들, 마래의 생명의 은인들이 다가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베드로 일행에게 바다 위를 걸어오던 예수처럼, 베두인들이 절망의 깊은 바다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다가옵니다. 근엄한 신의 모습으로, 아니 자애로운 신의 모습으로 이들에게 다가옵니다. 다가온 배두인들이, 아니 신들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줍니다. 향도 없고 색깔도 없는 무색무취의 그것, 하지만 지상에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것을 그들에게 줍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순간 그들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겁니다. 그 소중한 것을 주는 존재, 가장 필요한 것을 주는 존재, 그야말로 그는 신의 대리인입니다.



신의 대리인들이 전해준 물, 생명을 주는 물, 물은 그순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맛을 가졌습니다. 그 소중한 물의 봉사, 그 순간엔 종족도, 형제도, 언어도, 그 무엇도 구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순간엔 적도, 친구도 형제라는 분별이 무의미합니다. 오직 구원자와 피구원자만 있을 뿐입니다.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났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지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들을, 지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을.



그렇습니다. 가장 갈급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 그 사람은 우리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친구로, 주인으로, 신의 대리인으로 남습니다. 지독한 죽음을 넘어선 셍텍쥐페리, 그는 그로부터 6년 후 그 위대한 <어린왕자>의 집필에 들어갔고, 그 안에 이러한 소중한 체험들을 녹여 넣었습니다. 이 아침,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아침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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