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20회 - " 어린왕자 : 지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물 "

영광도서 0 1,642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만 있으면, 혀만 재대로 움직이면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테지만, 이러한 조건 외에도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건 입에 침이 충분히 있어서 입니다. 말을 하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 폐에서 공기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 공기가 우리 기관을 통해 입이나 코로 빠져나와야만 소리가 납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말을 잘 하려면 폐도 건강해야 하고, 기관지도 건강해야 하고, 구강과 비강도 건강해야 하고, 조음을 하는 치아와 입술도 건강해야 합니다.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입이 바싹 말랐습니다. 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은 나오지 않고 갈그렁소리만 날 뿐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베두인들이 저만큼 멀어져 갑니다. 비탈진 모퉁이로 사라지려 합니다. 앞에 간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 뒤에서 가는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그가 돌아서서, 90도만 돌아서서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면 그들은 살아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베두인들이 그들을 발견한다는 것 외에 그들을 도와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심하게 사라지는 그들,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들을 구하는 생명의 신이 되어 베두인들이 그들의 생명을 가져 옵니다. 침이 없어 말을 할 수 없었던 이들, 만일 베두인들이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면 그들은 물이 없음을 얼마나 한탄했을까요? 물이 없어서 말을, 소리를 지를 수 없었으니까요.



물, 이들이 죽을 힘을 다해 생명의 신이 되어 멈춘 베두인을 향해 기고 넘어지며 다가갑니다. 베두인이 베푼 은혜, 그 은혜를 받아 마십니다. 꿀맛도, 세상 그 어느 맛으로도 그 물맛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맛있는, 가장 시원한, 가장 달콤한 맛입니다. 물, 그들이 생명을 마십니다. 꺼져가던 생명이 물로 살아납니다. 물을 그들의 생명을 구해준 물, 그들의 생명 그 자체인 물입니다. 그 물을 하사해 준 베두인, 베두인들은 바로 그들의 생명을 구해준 신, 사람이 되어 현현한 신입니다. 오 생명의 신이시여! 오 신이여!



물, 물, 참 그리운 이름, 다시 잊을 수 없는,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지상 그 어느 말보다도 소중하고 정겹고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 물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물은 우리 생명의 필수 성분입니다. 맛도 없습니다. 맛이 없으니까 그 무엇이 섞이느냐에 따라 맛이 그제야 결정됩니다. 소신이라곤 없는 것 같은 물이 우리 생명엔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맹물 같은 사람이라고 욕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물처럼 평볌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빛깔도 없습니다. 맛도 없고 빛깔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물, 해서 물은 그 무엇과도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것을 받아들여 그것의 맛을 가지며, 그것의 향을 가지며, 그것의 빛깔을 가진 물, 그 물은 개성도 없고, 특징도 없지만 우리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물 같은 사람도 참 많습니다. 물처럼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사람, 개성이라곤 없는 사람, 자기 주장이라곤 없는 사람, 적어도 그런 무색무취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색깔이 뚜렷한 사람,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이끌어가기도 하지만, 자칫 그런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물을 마시고 싶다면 아주 죽을 만큼 갈급한 순간을 만나야 합니다. 쓸모 없는 것 같으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 생명 그 자체인 물, 정말 아주 갈급하여, 아주 죽을 만큼 목이 말라본 사람만이 지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지상에서 가장 시원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물이란 걸 압니다. 빛깔도, 냄새도, 맛도 없는 물,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의 생명인 물, 이 아침엔 물처럼 아무런 개성이 없지만 정말 때로 꼭 필요한 사람, 그런 사람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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