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21회 - " 어린왕자 : 편견을 버리면 잘 보이는 진실 "
영광도서
0
1,710
2016.12.01 03:41
"아하! 그랬구나."
책을 읽습니다. 읽는 중에 깨달음이 옵니다. 속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뭔가의 발견, 그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특히 작가가 깔아 놓은 복선을 알아차릴 때면 무척 즐겁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복선인 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러다 나중에 뒤쪽에서 그것이 복선이었음을 알았을 때 '아하, 그랬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복선을 찾는 연습을 하면 나중엔 뒤에 까지 읽지 않아도 저것이 복선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책 읽기도 제대로 읽는 연습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제대로 쓴 소설은 복선이 잘 깔려 있습니다. 아무나 눈치 챌 수는 없지만 복선은 있습니다. 복선은 소설에 보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왕자>는 1장을 열면서 보아뱀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어서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보아뱀의 겉으로 코끼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보아뱀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모자와 흡사합니다. 그 그림을 어른들에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른들은 당연히 '모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대답이 참 이상합니다. 분명 '나'는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을 그렸는데 말입니다.
왜 어른들은 그걸 모자라고 대답할까요? 만일 어른들이 모자라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모자라는 단어조차 모른다면, 어른들은 모자라고 대답했을까요? 어른들이 그 그림을 모자라고 대답한 것은 어른들은 그와 유사한 모자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모자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전 지식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존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기존에 가진 그 지식의 편견 때문에 어른들은 그 모습을 모자라고 대답한 겁니다. 이처럼 지식이란 편리하긴 하지만 때로는 그 이상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보다 많이, 보다 넓게 보려면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정보, 이미 자리 잡은 정보는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힘이 있으며, 보다 편리하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 보다 쉽게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 사전 정보란 더 이상의 발전적인, 생산적인, 창의적인, 상상적인 정보를 새롭게 입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것을 얻으려면, 보다 넓게 보려면 기존의 정보를, 지식을 내려놓고 그 무엇을 보아야 합니다.
보다 책을 생산적으로 읽으려면 기존의 정보나 지식을 없다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 선입견이 우리의 폭넓은 생각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이 그 사람을 이미 평가해 놓고 규정해 놓고 보게 만듭니다. 혹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 이미 가진 편견으로 그 사람을 규정해 놓고 보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사람이 규정해 놓은 것처럼 그 사람이 나쁘거나 좋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를 보든 순수한 자신만의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은 사람이 새롭고, 세상이 새롭고, 사물이 새로워지는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합니다. 편견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발견하는 아침이었으면 합니다.
책을 읽습니다. 읽는 중에 깨달음이 옵니다. 속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뭔가의 발견, 그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특히 작가가 깔아 놓은 복선을 알아차릴 때면 무척 즐겁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복선인 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러다 나중에 뒤쪽에서 그것이 복선이었음을 알았을 때 '아하, 그랬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복선을 찾는 연습을 하면 나중엔 뒤에 까지 읽지 않아도 저것이 복선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책 읽기도 제대로 읽는 연습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제대로 쓴 소설은 복선이 잘 깔려 있습니다. 아무나 눈치 챌 수는 없지만 복선은 있습니다. 복선은 소설에 보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왕자>는 1장을 열면서 보아뱀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어서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보아뱀의 겉으로 코끼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보아뱀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모자와 흡사합니다. 그 그림을 어른들에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른들은 당연히 '모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대답이 참 이상합니다. 분명 '나'는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을 그렸는데 말입니다.
왜 어른들은 그걸 모자라고 대답할까요? 만일 어른들이 모자라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모자라는 단어조차 모른다면, 어른들은 모자라고 대답했을까요? 어른들이 그 그림을 모자라고 대답한 것은 어른들은 그와 유사한 모자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모자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전 지식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존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기존에 가진 그 지식의 편견 때문에 어른들은 그 모습을 모자라고 대답한 겁니다. 이처럼 지식이란 편리하긴 하지만 때로는 그 이상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보다 많이, 보다 넓게 보려면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정보, 이미 자리 잡은 정보는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힘이 있으며, 보다 편리하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 보다 쉽게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 사전 정보란 더 이상의 발전적인, 생산적인, 창의적인, 상상적인 정보를 새롭게 입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것을 얻으려면, 보다 넓게 보려면 기존의 정보를, 지식을 내려놓고 그 무엇을 보아야 합니다.
보다 책을 생산적으로 읽으려면 기존의 정보나 지식을 없다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 선입견이 우리의 폭넓은 생각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이 그 사람을 이미 평가해 놓고 규정해 놓고 보게 만듭니다. 혹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 이미 가진 편견으로 그 사람을 규정해 놓고 보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사람이 규정해 놓은 것처럼 그 사람이 나쁘거나 좋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를 보든 순수한 자신만의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은 사람이 새롭고, 세상이 새롭고, 사물이 새로워지는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합니다. 편견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발견하는 아침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