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27회 - "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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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지금 행복한가요?
이렇게 물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의 과거는 아름다우며, 그의 미래는 빛납니다. 그는 현재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극복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과거의 일이 비록 실패로, 시행착오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그는 지금 그것을 극복했다는 의미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은 어쩌면 행복의 개념을 잘못 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나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름의 행복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나름대로 행복의 개념을 정의내려야 합니다.
행복은 무엇이다란 정의,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관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그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구할 테니까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행복을 찾을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우선 나름의 행복의 정의를 내리고 그 행복을 추구해야 그 행복에 근접할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선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요.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다를 수 있잖아요. 그 정의를 내려보란 말이지요. 자꾸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란 말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행복을 누릴 궁리를 해보란 말이지요. 스피노자는 "인간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이성은 없다. 그러나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하는 이성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 있는 오늘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될 일입니다.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내일이란, 모레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란 현재의 연장입니다. 우리에겐 오늘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누리거나 오늘을 즐기는 사람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누리는 행복은 이기적일 때는 누릴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일로 자신이 편안함을 얻었다면 그는 마음이 찔려 이미 불행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을 누리되 이기적이지 않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시대를 살든 공적인 삶 못지않게 개인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 개인의 삶을 공적인 삶, 이를테면 더불어 삶에 잘 연결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기적이지 않게 현재를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어떻게 마음 먹고 사느냐고요? 하루를 살면 하루를 마감하고 모두 내려놓는 거예요. 그냥 내려놓으란 건 아니고요.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할 건 반성하라는 의미예요. 지난 일을 반성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어도, 지난 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어요. 지난 일은 후회의 대상이 아니라 반성의 대상이에요. 반성을 통해 잘한 일은 그대로 살고, 잘못한 일은 후회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그러다 보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잘 알 수 있고, 하루에 할 일을 잘 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 하루를, 한 달 한 달을, 한 해 한 해를 잘 정리하고 넘어가면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 슬기로운 마감의 연속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조바심을 없애주고, 과거에 대한 상처를 치유해 줄 테니까요. 낮과 밤의 경계, 하루와 하루의 경계, 달과 달의 경계를 잘 마무리하면서 현재를 누리며 살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행복에 대한 개념, 그것을 스스로 내려보세요. 그리고 그 행복에 접근하세요. 거기에 행복이 있어요. 네,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물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의 과거는 아름다우며, 그의 미래는 빛납니다. 그는 현재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극복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과거의 일이 비록 실패로, 시행착오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그는 지금 그것을 극복했다는 의미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은 어쩌면 행복의 개념을 잘못 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나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름의 행복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나름대로 행복의 개념을 정의내려야 합니다.
행복은 무엇이다란 정의,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관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그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구할 테니까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행복을 찾을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우선 나름의 행복의 정의를 내리고 그 행복을 추구해야 그 행복에 근접할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선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요.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다를 수 있잖아요. 그 정의를 내려보란 말이지요. 자꾸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란 말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행복을 누릴 궁리를 해보란 말이지요. 스피노자는 "인간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이성은 없다. 그러나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하는 이성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 있는 오늘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될 일입니다.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내일이란, 모레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란 현재의 연장입니다. 우리에겐 오늘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누리거나 오늘을 즐기는 사람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누리는 행복은 이기적일 때는 누릴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일로 자신이 편안함을 얻었다면 그는 마음이 찔려 이미 불행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을 누리되 이기적이지 않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시대를 살든 공적인 삶 못지않게 개인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 개인의 삶을 공적인 삶, 이를테면 더불어 삶에 잘 연결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기적이지 않게 현재를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어떻게 마음 먹고 사느냐고요? 하루를 살면 하루를 마감하고 모두 내려놓는 거예요. 그냥 내려놓으란 건 아니고요.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할 건 반성하라는 의미예요. 지난 일을 반성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어도, 지난 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어요. 지난 일은 후회의 대상이 아니라 반성의 대상이에요. 반성을 통해 잘한 일은 그대로 살고, 잘못한 일은 후회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그러다 보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잘 알 수 있고, 하루에 할 일을 잘 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 하루를, 한 달 한 달을, 한 해 한 해를 잘 정리하고 넘어가면 매일이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 슬기로운 마감의 연속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조바심을 없애주고, 과거에 대한 상처를 치유해 줄 테니까요. 낮과 밤의 경계, 하루와 하루의 경계, 달과 달의 경계를 잘 마무리하면서 현재를 누리며 살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행복에 대한 개념, 그것을 스스로 내려보세요. 그리고 그 행복에 접근하세요. 거기에 행복이 있어요. 네,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